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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진단]신규 수급 막고, 수급 탈락 정당화하는 기초법 시행령 개정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지난 9월 24일 보건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공고했다. 7월부터 시행된 ‘맞춤형개별급여’ 개정기초생활보장제도의 목적이 사각지대 해소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급자 권리 쪼개기였다면, 이번 개정령안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려는 비수급 빈곤층들의 신규접근을 막고 현 수급자들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려는 악랄한 목적의 개정으로 보인다.

  올해 2월 12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초법 시행령 개정안 의견 제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민생보위 [출처: 빈곤사회연대]
5년 전 재산까지 조사범위 확대, 사각지대를 확대하는 발판
개정령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증여한 재산 및 처분한 재산에 대해 5년의 범위 내에서 조사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말인즉,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 시 재산조사에서 신청자의 5년 전 재산까지 조사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에도 증여 및 처분한 재산에 대한 규정은 있다. 수급자가 수급을 받던 중 증여 및 처분한 재산이 발생할 경우 재산가액에서 부채상환이나 의료비 등의 증빙 가능한 특정항목을 공제한 금액에서 매달 일정액(최저생계비 150%)을 자연감소분으로 차감한다. 예를 들어 증여·상속 재산이나 처분한 재산이 1억 원이고 이 중 증빙할 수 있는 금액이 5000만 원일 경우 나머지 5000만 원에서 매달 일정액을 차감한다. 이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 차감하고 남은 금액이 수급선정기준에 부합하는 금액이 되었을 때 다시 수급을 신청할 수 있다. 기존에도 이것에 대한 많은 문제점이 제기됐다. 실제 수급자가 아닌 타인이 사용한 것임에도 공제항목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와 증빙 가능한 부채의 범위가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채의 경우 상대적으로 금융권 접근성이 떨어지는 빈곤층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인 간의 대출과 사채와 같은 부채상환에 대해서는 공제항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수급자 통장에 들어왔지만 수급자가 아닌 형제·자매 및 친척이나 사촌들이 사용한 경우에 대해서도 공제항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공적자료에는 잡히지만 실제로는 만져보지도 못한 돈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됐던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제도의 불합리한 모순으로 발생된 수많은 수급탈락자들에 대한 대책은 고사하고 이것을 신규수급자에게도 적용하며 그 기간을 5년으로 명기하겠다고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재 빈곤에 처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생계비와 주거비 등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현재성과 긴급성을 충족해야 한다. 빈곤은 개인에 따라 천천히 또는 급격히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재산과 소득이 어찌 됐던 현재 소득과 재산이 최저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태로 빈곤에 처해 있다면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시대적 상황 1997년 IMF 금융/외환위기를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빈곤한 사람에게 5년 전 재산이 있었다는 이유로 또는 신청당시 5년 전 재산에 대한 자연감소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수급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성, 긴급성과 충돌하며 사회·시대적 요구인 사각지대 해소에도 반하는 행위이다. 결국 이는 사각지대를 더욱 확대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5년 전 재산의 유무를 떠나서라도 수급자에게 더 많은 서류의 제출을 요구하는 행위는 현재에도 수급신청과정에서의 절차와 서류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수급신청을 하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들의 수급신청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다.

자활소득공제 폐지, 근로능력자들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발판
개정령안의 두 번째 내용은 자활소득공제의 폐지와 자활장려금을 EITC(근로장려금)와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는 빈곤층에게는 자활사업단에서 제공하는 일자리교육 및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수급권을 보장한다. 이를 ‘조건부수급’이라고 하는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 중 하나인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근로의욕을 고취하고, 탈빈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자활사업에 참여하면 일반수급으로 받을 수 있는 수급비보다 조금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탈수급 즉,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의 급여가 아니다. 자활사업에 참여한 경우 한 달 70-80만 원의 자활급여를 받는다. 국가에서 정한 최저생계비보다는 많은 돈이지만 이 금액으로 당장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조건부수급자의 자활참여 의욕을 높이기 위한 취지로 일정 기간 동안 자활소득의 30%를 소득공제 항목으로 지정했다. 그렇게 되면 생계급여는 받지 못하게 되지만 일정정도의 주거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으며 수급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인 가구 조건부수급자로 자활소득 70만 원을 급여로 받는 사람의 소득인정액은 소득의 30%를 공제한 49만 원이 된다. 이 경우 주거급여와 의료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령안의 내용과 같이 자활사업소득에 30% 공제를 없애고 EITC로 통합하게 되면 소득인정액이 70만 원 그대로 인정돼 주거급여와 의료급여를 모두 박탈당하게 된다. 이는 위에 언급했다시피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탈빈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와는 반대되는 조치이다. 개정령안에는 자활소득공제를 없애는 대신 EITC에 대한 소득공제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이는 매달이 아닌 연 1회 산정될 뿐이다. EITC에 대한 소득공제가 없는 나머지 달에 대해서는 결국 자활소득 전체가 소득인정액으로 포함돼 수급탈락 통보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EITC로 지급되는 금액이 이와 같이 수급권을 박탈할 정도로 탈수급,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금액으로 합당한가를 생각해 봤을 때, 전혀 그렇지 않다. 먼저 EITC는 지급 대상을 부양가족이 있는 자 등으로 정하고 있다.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제도이다. 1인 가구의 경우 받을 수 있는 EITC급여는 최대 연 70만 원 정도이다. 1인 가구가 아닌 맞벌이 가족 가구의 경우라 해도 연 20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이를 월로 계산했을 때 2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일 뿐이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금액으로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이다. 살펴봤던 것과 같이 이번 개정으로 자활소득공제가 폐지되고 EITC가 도입된다면 자활사업이 갖추고 있는 최소한의 공공성과 유인요인이 해체될 것이며 근로능력자들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발판이 될 것이다. 이는 전 국민에게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후퇴이며 한국사회 빈곤사각지대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개정기초생활보장제도, 남은 것은 실망과 분노뿐
7월 ‘송파 세 모녀 법’, ‘맞춤형 개별급여’ 등 이름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개정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됐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빈곤,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개정이라며 거리 곳곳에는 개정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라는 플래카드가 즐비했다. 하지만 시행 후 내 삶이 조금은 살만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많은 수급자와 비수급 빈곤층에게 남은 것은 실망과 분노뿐이었다. 그리고 이 실망과 분노의 상처가 채 가시지도 않은 때 보건복지부는 신규수급을 막고 조건부수급자들의 수급탈락을 정당화하는 개정령안, 복지축소를 예고했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일해도 가난을 피하지 못하는 한국사회 마지막 안전망이라는 기초생활보장법이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아닌 수급자와 비수급 빈곤층의 요구가 반영되어야 한다. 법으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삶의 영향을 받는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