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노동자 고영기 씨가 8일, 고공농성을 마무리한다. 고용노동부가 택시업종의 실제 노동시간과 노동환경을 조사하고 간주근로시간제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노·사·정·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면서다. 노동·시민사회는 이번 TF 출범을 고 씨의 장기 고공농성이 만들어낸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간주근로시간제 개선을 위한 “첫발”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날 오전 9시 정부와 노동계, 택시사업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택시업종 근로시간 등 노동환경 실태조사 TF’를 출범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TF는 전자장비를 이용한 실제 노동시간 산정 가능 여부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노동하는지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시행령과 지침 등 제도 개선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 씨는 이날 오후 5시 인천 남동구 길병원 사거리 인근 통신탑에서 농성을 해산한다. 고 씨가 택시월급제 정착과 간주근로시간제 개선을 요구하며 통신탑에 오른 지 194일 만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고 씨의 투쟁은 택시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는 구조를 바꾸라는 요구에서 시작했다. 택시업종에는 사업장 밖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간주근로시간제가 적용돼 왔고, 노동계는 이를 과거 사납금제가 ‘기준금’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구조와 결합한 장시간·저임금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해 왔다.

택시지부는 실제로 하루 10~12시간 일해도 임금 산정에서는 2~3시간만 노동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례가 있다며 근로기준법 제58조에 따른 간주근로시간제가 사실상의 ‘공짜노동’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도 택시회사가 과거 사납금제를 기준금 등의 형태로 유지하면서 택시노동자를 사실상 자영업자처럼 취급해 왔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2015년 이미 택시업종에는 간주근로시간제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10년 넘게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시민사회지원대책위는 이날 입장문에서 “택시 사업주가 소정근로시간을 3시간 수준으로 정하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은 기준금을 채우고 월 200만 원 안팎의 임금을 벌기 위해 하루 12~13시간씩 운전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장시간 노동이 과로뿐 아니라 신호위반과 과속, 난폭운전으로 이어져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까지 위협해 왔다는 주장이다.

대책위는 특히 “택시가 사업장 밖에서 운행되더라도 주행거리와 운행시간, 속도, 승하차 정보 등이 전자장비에 기록되는 만큼 실제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간주근로시간제의 전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택시노동자가 194일 동안이나 하늘감옥에서 울부짖어야만 제도 개선을 위한 첫발을 떼게 된 것이 분노스러울 뿐”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그동안 택시업계의 임금 미지급 구조를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노동·시민사회의 연대도 확대됐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은 고 씨의 농성을 개인의 고공농성을 넘어 택시업계의 장시간·저임금 구조와 간주근로시간제를 바꾸기 위한 투쟁으로 규정하고 정부의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농성 200일을 앞두고는 오는 14일 전국에서 인천 농성장으로 향하는 ‘희망택시’를 조직하며 투쟁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196일 동안 고공농성을 한 고영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부장. 출처: 공공운수노조

정부의 TF 출범 결정으로 고 씨는 농성 200일을 엿새 앞두고 통신탑에서 내려오게 됐다. 택시지부는 “당연히 했어야 할 정부의 의무였음에도 194일간 0.25평 하늘 감옥에서 투쟁해야만 움직이는 정부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늦었지만 정부의 결정을 수용하고 이후 진행되는 TF가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역시 이번 TF 출범을 “일한 만큼 월급 받자”는 택시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가 만든 성과로 평가하면서도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노조는 실태조사가 업계의 주장이나 노사 간 합의에만 기대어 형식적으로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의 삶과 권리 보호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지원대책위도 “TF 구성과 실태조사는 제도 개선의 시작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정확하고 신속한 실태조사를 토대로 택시업종에서 간주근로시간제를 제외할 수 있도록 시행령과 지침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일한 만큼 월급 받자”, “공짜노동 근절하자”는 요구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때까지 정부를 감시하고 택시노동자들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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