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현대양행 입사 후 24년동안 한국중공업, 만도기계 안양공장, 안양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다시 익산으로 오는 동안 두 번의 부도(?)를 겪으며 만도맨 18년째를 맞는다는 유태우 조합원을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기로 한 4월 19일은 가뭄 끝에 시원한 봄비가 내렸다.
“내가 현대양행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현대양행에 다닌다고 하면 딸도 그냥 준다는 소리가 있었을 만큼 잘나가던 회사였는데 말이야” “어느 날부턴가 월급이 나오지 않더라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지금 생각 해보면 그때가 지난 IMF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것 같아” “2만원씩 가불해서 쌀팔아 먹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였냐면 군포시내 쌀가게에서 우리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쌀도 안줄 정도였으니까”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엔 왠지 많은 회한이 서려 보였다. 좀더 말씀을 청하자. 현대양행이 한국중공업이라는 국영기업으로 바뀌고 83년 퇴사 후, 다시 그해 6월에 지금의 만도기계 전신인 안양공장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후 96년 다시 대전공장으로 이전하게 되었다며 “난 대전공장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이 앞으로 평생 있어야 할 곳이구나 했어” “그래서 빚도 내서 집도 장만하고, 애들 학교까지 전학시켜놨는데” “글쎄! 대전 온지 1년만에 잘나간다던 이놈의 회사가 흑자 부도가 났다는 거야.” “글쎄! 나한테는 사실 두 번째 맞는 부도나 마찬가지지 뭐야” “월급은 안나오지, 거기다가 이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나지 다들 힘들었겠지만 나도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지” “하지만 후회를 한다거나 회사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아. 왜냐하면 그런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면서 내가 더 강해졌거든” “99년 익산으로 다시 이전하면서 현재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취재가 끝날 무렵 장기근속자로서 노동조합이 없었을 때와 지금처럼 노조가 있을 때와의 차이점이 무어냐고 물어보았다. “지금은 할말은 하고 살수가 있다는 것이지” “예전엔 정당한 말을 하더라도 찍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찍히게 되면 월급도 오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거든” “실제로 내가 조장한테 찍혀서 2년동안 남들 500원 오를 때 난 180원만 오른 적이 있었다니까”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24년 공장 생활동안 단 한 번의 안전사고도 없었다는 거야” “한국중공업에 있을 때 1년에 몇 명씩 죽어가는 것을 본적도 있는데도 말이야” 어느덧 일터로 부르는 종소리가 울리고 취재가 끝이 났다. “아직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만큼 체력에는 자신 있어!” 하며 일어서는 모습은 노동자 형님의 당당함과 꿋꿋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또 “또다시 구조조정이 닥친다면 세 번째 만큼은 못 참을 것 같다.”며 힘주어 말하던 형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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