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른바 모범적인 시민이나 수형자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일반적’인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의 `일반적’인 규범을 깨뜨린 `죄인’이라는 이유로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접어두지는 않은가. 이런 일반적 인식을 거부하고 수감자에 대한 처우개선과 인권보장을 위한 활동을 펼치며 수형제도 자체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대안을 찾는 이들이 있다.

`감옥행동지원센터(http://www.prisonactivist.org/parc/)’는 수형자의 인권보장활동과 미국의 교도체계를 비판하고 감옥에 대한 대안을 찾는 단체다. 이 단체는 미국 정부가 범죄 예방보다 감옥과 경찰력을 늘리는 데 점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비판하고 교육, 보건, 주거개선 등 범죄를 줄일 근본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30년동안 5배가 늘어 수감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선 것도 범죄의 증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유색인종, 빈곤층, 청소년들을 범죄시하는 사회분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여기에는 범죄에 대한 과도한 담론을 형성해 `공포의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는 정부와 언론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민정의연합(http://home.vicnet.net.au/~pjan/)’도 비슷한 활동을 한다. 이 단체는 감옥의 민영화에 반대하며 교도체계안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 특히 여성의 권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감옥이 사회적 관계에서 떨어져 있는 제도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통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들은 여성범죄 가운데 상당수가 성적 학대, 폭력, 구조적 빈곤 등과 관련이 있으며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의해 사회규범을 깨뜨리는 것으로 규정된 측면이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13일에는 20대 한 청년이 출소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 다시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 인형을 훔치고 구속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회의 무관심이 가져다 준 삶의 고단함은 그 청년처럼 쇠창살 뒤의 거짓 휴식을 찾게 만든다. 쇠창살 뒤의 삶에 대한 무관심, 쇠창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삶에 대한 무관심. `한 사회의 문명화의 정도는 감옥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그래서 감옥 내 인권 상황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교도체계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picis.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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