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00.07.26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움직임에 대해 일부 언론들이 이를 기정사실화 하거나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은 지난 20일자 신문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신현확 회장과 권노갑 부회장이 19일 청와대에서 최인기 행정자치부장관, 고건 서울시장, 남궁진 청와대정무수석과 만나 서울 상암공원 안에 2000∼3000평 규모(연건평)의 기념관을 세우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보도한 언론들은 이날 가급적 논평을 자제하는 한편 기념사업회의 구상을 상세히 설명하며 ‘헌정사상 첫 대통령 기념관’이라는 점에 크게 무게를 두는 보도를 내보내 결국 각 일간지의 온라인 독자란에는 이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글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들 네티즌들은 “아직 역사적인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아 양비론이 제기되고 있는 인물에 대해 현 정부가 국고는 물론 국민후원금을 모아, 그것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예정인 상암지역에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그런데도 언론은 정부에 국민들의 입장을 전달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함에도 스스로가 혼란에 빠져 비판을 주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미화작업을 해왔다고 비판한 바 있는 조선일보가 이날 가십란인 <팔면봉>에서 “박정희 기념관, 상암동에 짓기로. 월드컵 대표선수들에게도 ‘하면 된다’는 정신무장을…”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언론계 일부에서는 또, 대부분의 일간지들이 기념관 건립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 일부 일간지들마저도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혼선을 빚고 있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21일 <사설>을 통해 기념관 건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장기집권을 해온 독재자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가 하면, 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경제개발의 기수로서의 긍정적 평가가 있다”고 밝히며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입장은 국민일보 이진곤 논설위원이 21일자 <한마당> 칼럼에서 “우리가 민족사상 처음으로 선진국 진입을 운위할 만큼 된 데는 그의 지도력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하는 가정은 설득력이 없다”고 밝힌 부분에서도 반복됐다.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양면적 평가가 엇갈리는 시점에 다른 전직 대통령을 제쳐 놓고 유독 그에 대해서만 국고지원의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고 밝히면서 마치 형평성 차원에서 전직 대통령 모두에 대한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논란의 소지를 주고 있다.

이는 언론계 내부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이 곧바로 ‘전직 대통령들의 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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