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진짜 사용자다. 온전한 원청교섭 보장하라.”
24일 오후 서울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 철도와 공항, 지하철, 병원, 학교,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이 모였다.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정부와 원청이 정작 교섭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총궐기대회를 열고 노정·원청교섭 보장과 총인건비 제도 전면 개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이번 총궐기는 지난 21일부터 이어진 공동파업과 현장 투쟁을 한데 모은 자리였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원청은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관은 정부 지침 탓을 하고, 지자체는 예산 탓을 하고, 정부는 기관 자율이라고 한다”며 “결정하는 자는 어딘가 있는데, 책임지는 자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에 따르면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한 사업장은 70곳이지만 실제 교섭이 열린 곳은 18곳에 그쳤다. 교섭이 시작되더라도 원청이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교섭 의제를 제한하면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의 발언에는 교섭을 요구해 온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안석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은 지난 3월 원청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10월 7일 결국 교섭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그는 공사가 교대제 개선 요구를 두고 산업안전 의제가 아니라거나 자회사 경영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인천공항 노동자들은 전날 하루 경고파업을 벌였으며, 오는 27일 국토교통부와 면담할 예정이다.
6년간의 투쟁 끝에 소속기관 전환을 확정한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도 여전히 원청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김금영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은 “6년을 싸워 소속기관으로 간다는데 정작 얼마의 임금을 받을지, 어떤 복지가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공단의 사용자성을 인정받았지만, 공단이 교섭을 간담회로 부르며 임금 등 주요 의제를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LG유플러스 하청노동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제유곤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장은 원청교섭을 다섯 차례 진행했지만 임금과 복지, 작업환경 등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다툼으로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진짜 사장 나오라고 했더니 일부 의제만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반의반의 반쪽 사장이 나왔다”며 정부의 시행규칙과 해석지침이 원청의 책임 회피를 가능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정부의 총인건비 제도가 인력 충원과 임금 인상을 가로막고 있다고 호소했다.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은 “임금도, 인력도, 안전도 기관이 정하지 못한다. 재정경제부의 지침이 정한다”며 정부가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지하철의 경우 파업 직전까지 가서야 인력 증원에 합의했다. 오문제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은 22일 밤 총파업을 선언한 뒤 23일 새벽 35명 증원과 공무직 4조 2교대 전환을 포함한 잠정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가 자체 연구를 통해 산출한 부족 인력은 755명에 이른다. 오 위원장은 “755명이 모자란 현장에 35명이다. 파업 직전까지 가야 겨우 이만큼 움직인다”며 인력 부족이 시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 현장에서도 총인건비 제도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박나래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남은 노동자들이 늘어난 업무를 감당했지만, 병원은 올해 임금인상안으로 3.5%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육아휴직급여까지 총인건비 한도에 포함해 동료의 육아휴직이 다른 노동자의 임금 인상 여력을 줄이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박 분회장은 “현장에서 감당한 책임과 희생을 지침 한 장으로 지워도 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학교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 해소를 위한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이정민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행정분과장은 교육행정 지원 노동자들이 1인당 평균 41개가 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수당과 휴가, 교육훈련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무직위원회 출범만으로는 노동조건을 바꿀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예산과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오는 11월 27일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투쟁결의문에서 “결정하는 자는 있는데 책임지는 자는 없다”며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정부와 원청이 교섭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노조법 시행령과 해석지침 폐기, 노정교섭 제도화, 공공기관 보수위원회 설치, 총인건비 제도 개선, 공무직 차별 해소 예산 확보, 현장 인력 충원과 2인 1조 안전인력 배치 법제화 등을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총궐기를 시작으로 11월과 12월에도 파업과 집중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특히 12월 정기국회까지 노정·원청교섭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 예산 확보에 힘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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