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2004년 파리에서 함께 찍은 사진에 등장한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23년 네그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동 작업을 이어갔다.

몇 달 전, 내 파트너와 나는 40대의 한 자유주의 성향 역사학 교수를 만났다. 그는 다음 책을 쓰기 위해 1990년대 후반의 대안세계화 운동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천년이 다가오던 당시 세계 자본주의에는 도전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민주주의자와 옛 공산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을 찬양했고,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기구들은 러시아와 중국 지도부를 세계 자본주의 질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가 살펴보니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런 엘리트 회의가 열릴 때마다 대안적인 세계 공동체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맞섰다. 이 다채로운 연합은 자신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교수는 오늘날 좌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세계를 바꾸겠다는 야심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시기를 마치 사라진 아틀란티스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렸다. 내가 2000년대 후반 런던 동부의 빈 건물 점거공간에 들어가 살았을 때만 해도 이 운동은 분명한 과거가 아니었다. 그 운동의 활동가와 미디어, 모임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고, 계속되는 이라크 전쟁에 맞선 대규모 반대운동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정치 지도자들의 회의에 항의하려고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는 ‘정상회의 순회 시위’를 비꼬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었고, 일부 활동가들은 이 말을 역설적으로 스스로에게 붙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에게 이런 행동은 큰 영감을 준 대중 동원이었다. 2001년 제노바에서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경찰 탄압은 젊은 활동가 카를로 줄리아니(Carlo Giuliani)를 경찰이 총으로 쏴 숨지게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가 2009년 런던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항의했을 때는 경찰관이 시위 현장을 지나가던 신문 판매원 이언 톰린슨(Ian Tomlinson)을 숨지게 했고, 이후 당국은 사건에 대해 거짓말했다.

비슷한 정상회의 반대 시위가 25주년을 맞으면서 많은 회고는 단일한 전략적 지도부 없이 분출했던 통제하기 힘든 에너지를 강조했다. 노동조합도 참여했지만, 조직된 노동운동이나 정당, 각국 정부가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시위와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같은 대항 정상회의에는 농민과 원주민 단체, 비정부기구(NGO), 조세정의 운동, 흰 작업복을 입고 복면을 쓴 활동가 등 다양한 세력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친화집단이 모였다. ‘사회주의’라는 말이 수십 년 동안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그런 막연한 미래에 대한 포부마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부 사람에게 이는 낡은 범주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했다. 이런 열망은 듀크대 문학 교수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쓴 2000년 저서 《제국》(Empire)이 큰 화제를 모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제국》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도구를 이용해 포스트모던한 현실을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자처했다. 이 책은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쟁 프로젝트가 아니라 훨씬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권력의 결합이 지구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이 승리한 듯 보이고 오래된 좌파 정당들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적 조정에 맞서는 다성적인 저항이라는 희망적인 대항서사를 제시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제국》은 출간 초기 몇 년 동안 찍는 족족 매진됐다. 이 상업적 성공을 지켜본 많은 사람은 《뉴욕타임스》 같은 주류 매체가 이 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구심을 품었다. 좌파 서평가들은 《뉴욕타임스》가 이 책을 ‘차세대 거대 담론(Next Big Idea)’이라고 선언했다는 사실을 냉소적으로 거론했고, 이런 관심이 네그리의 ‘래디컬 시크’ 이미지 때문이라고 봤다. 당시 네그리는 수십 년 전 테러를 선동했다는 과장된 혐의로 로마에서 수감돼 있었다. 이 책을 비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안세계화 운동 안에서 《제국》이 일으킨 열풍을 인정하면서도 독자들이 하트와 네그리의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설득하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타임스》에 글을 쓴 에밀리 이킨(Emily Eakin)은 자신의 글을 언급한 많은 사람보다 《제국》을 더 유물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의 기사는 하버드대출판부가 거둔 출판 성공에 초점을 맞췄다. 이 성공은 “영문학과 역사학, 철학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거대 이론을 필요로 하는 요구”에 부응했다. 하트와 네그리가 ‘뜨거운’ 인물이 된 이유는 문학이론 같은 학문이 세계화를 해석하는 데 왜 유용한지 새롭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킨은 《제국》이 로마제국에서 카를 마르크스, 바뤼흐 스피노자,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이르는 모든 것을 다루며 “오래된 유럽 전통의 거대 이론이 갖춰야 할 형식적 외양”을 갖춘 방대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었다. 동유럽과 중국이 시장경제로 역사적인 전환을 하는 상황에서 많은 반스탈린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조차 코민테른 이전의 오래된 사상으로 눈을 돌렸다. 일부 사람들이 하트와 네그리의 체계에서 매력을 느낀 것은 이 책이 새로움을 약속하고 1989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세계와 씨름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블라디미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시한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 집중됐던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 이론 분석의 첫 번째 주요 물결”을 넘어선다고 주장했다. 하트와 네그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반제국주의가 민족해방, 즉 주권과 근대성에 편입되는 것을 추구했지만 이제 그 모델은 패배를 거치며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제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족국가 사이의 오래된 제국주의 경쟁을 대체한 새로운 세계적 주권체였다. 제국은 1970년대 자본주의 위기와 동서 양 진영 노동계급 반란의 자발적인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맞선 규율적 대응으로 등장했다. 이는 단순히 미국 제국주의의 지리적 범위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제1세계와 제2세계, 제3세계가 서로 얽히는 ‘국제적 규율 질서’를 만들어냈다. 제국의 ‘혼성적 헌정구조’는 국제기구와 국가, 다국적기업, 비정부기구, 미디어를 결합했다. G8과 WTO 같은 기구가 세계화된 경제를 조정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런 권력 형태는 탈영토적이며 어디에나 존재했다. 이제는 그곳에서 빠져나가 피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없었다.

미국이 ‘제국의 피라미드’ 꼭대기 가까이에 있었다면, 과거 적대했던 국가들이 협력하는 조짐도 나타났다. 특히 1990년대는 워싱턴이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행동한 시기의 정점이었다. 소련 지도부를 포함한 유엔은 1991년 조지 H. W. 부시가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을 격퇴하기 위해 벌인 걸프전을 지지했다. 르완다와 스레브레니차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은 평화유지군으로서 유엔이 가진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정치적 수렴을 보여주는 다른 징후도 있었다. 1997년 러시아는 주요 7개국(G7)의 여덟 번째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져 G8이 만들어졌고, 블라디미르 푸틴 집권 초기 서방 지도자들은 그를 ‘테러와의 전쟁’에서 동맹으로 여겼다.

우리는 다시 지도에 색을 칠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은 자본주의의 전개를 물질적으로 분석한 저작이라기보다 과거의 여러 마르크스주의에 맞서 하나의 철학 체계를 펼친 책에 가까웠다. 사미르 아민(Samir Amin)이 지적했듯 이 책은 미국 국가가 맡은 핵심적 역할을 축소해 다루면서, 예컨대 민주당이나 공화당 행정부가 세계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독점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를 어떻게 말했는지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소련식 공산주의와 제3세계 민족주의 프로젝트가 몰락한 상황에서도 하트와 네그리는 그 지역에서 등장한 새로운 국가들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은 중국과 소련의 ‘사회주의적 근대화’가 결국 자본을 위해 숙련된 노동력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옛 사회주의 국가들은 제국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 책은 이 국가들의 1991년 이후 역사에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오늘날 보면 이 책이 내세운 새로움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도널드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를 비롯한 인사들은 미국 군사력을 이용해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자원을 통제하겠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유럽이 더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미국 지도자들은 이를 국제평화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중국 역시 석유와 해상로를 장악하려 한다고 지적할 뿐이다. 인공지능 같은 분야에서도 경쟁하는 민족국가들은 자국 기술기업을 보호하고 다른 나라 기업을 규제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물론 하트와 네그리의 체계에는 반론을 피해 갈 여지가 있다. 글이 너무 모호하고 시적이며 주제가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언제든 모순과 혼성구조에 대한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론으로 물러설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체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21세기에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 데 그다지 유용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트럼프의 이례적인 행동이 기존 예측을 뒤흔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최근 그린란드를 둘러싼 소동이 정말 북대서양 지도의 큰 부분에 어린아이처럼 다시 색칠하고 싶어 하는 그의 욕망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트와 네그리가 말한 세계화가 구체적으로 미국 국가를 축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세계화를 1970년대 수익성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본 것은 옳았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단일한 제국 질서를 만들어낸다고 상상한 것은 유토피아적이었다. 이를 이해하는 데는 벤야민 뷔르바우머(Benjamin Bürbaumer)의 훌륭한 최근 저서가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제국》만큼 방대한 범위를 다룬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제국》의 여러 한계를 보여준다.

뷔르바우머의 《중국/미국: 세계화에 맞서는 자본주의》(Chine/États-Unis, le capitalisme contre la mondialisation)는 자본주의 세계화 시대에 워싱턴과 베이징이 수행한 역할을 유물론적으로 분석한다. 여기에서도 출발점은 미국과 중국 지도부 모두 위기에 대응하고 노동계급의 경제적 요구를 억누르는 전략으로 세계화를 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트와 네그리와 달리 뷔르바우머는 이런 전략이 특정한 자본 분파의 이해관계와 국가 자체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특히 초국적 활동을 지향하는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이를 통해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를 다룬다. 지배계급은 자본 축적을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

뷔르바우머의 설명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초국적 자본을 옹호한 미국 지도자들은 중국과 동유럽을 종속적인 위치에서 세계화에 편입할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 지역은 훨씬 값싼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했고, 이는 미국 노동자들을 규율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중국 공산당 안에서 부상하던 친시장 분파에는 이것이 국가 발전을 가속하고 기술 이전을 가능하게 하며 내부 갈등의 압력을 빼는 안전판을 만들고, 추가적인 자유화를 지지할 새로운 중산층을 형성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부상하는 중국 자본주의가 종속적 지위의 한계와 맞닥뜨리면서 새로운 긴장도 생겨났다. 2008년 위기 이후 기술 특허에서 달러 패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 갈등이 심화했다. 이제 경쟁하는 무역로를 지키려는 움직임은 군사력 증강과 함께 진행된다.

뷔르바우머의 접근법이 성공적인 이유는 체계가 수없이 많은 요소로 구성돼 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요소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오늘날 권력이 어떤 모습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도록 돕는다.

제국의 시대

국가들이 투자를 이끌고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며 심지어 전쟁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점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국가는 여전히 투쟁의 핵심 무대이며, 진정으로 세계적인 운동이 이를 대체하지 못했다. 대안세계화 시위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도 많은 활동가는 자본주의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노동과 환경 기준 등에 관한 국가 차원의 법률과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약화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이런 영역은 반동적인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여전히 노동운동이 쟁취한 핵심 성과이며 오늘날 많은 투쟁의 중심에 놓여 있다. 역사적인 노동자 정당들은 쇠퇴했지만, 이들이 과거에 쟁취한 성과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국》을 집필하던 1994년,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를 출간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소련 붕괴까지를 ‘짧은 20세기’로 규정했다. 재앙이 이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희망찬 투쟁과 끔찍한 투쟁이 함께 벌어진 시대였다. 그 시대의 종말은 평화로운 새 질서를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자유주의 자본주의에 개혁을 강제했던 대항세력을 없앴다. 홉스봄의 주요 저작 가운데 이 책은 그의 삶과 긴밀히 얽혀 있던 공산주의 운동의 실패가 가장 짙게 드러난 책이었다. 그러나 홉스봄은 민주주의가 속부터 비어가고 국가 차원의 사회보호가 해체되는 과정이 어떻게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여전히 위협하는지를 묻는 적절한 질문을 던지며 책을 마쳤다. 반면 《제국》은 20세기 개량주의가 남긴 제도적 유산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네그리가 활동했던 1970년대 자율주의 좌파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솔직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제국》은 과거의 투쟁보다 더 나은 투쟁을 위한 틀을 제시하려 하면서 삶과 노동 자체에서 솟아날 의지에 기대를 걸었다. 저자들은 과거 반식민지 전쟁과 반파시즘 운동을 거론하며 민중의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면서도 이 운동들이 내린 선택과 그 결과는 일축했다. 역사적인 공산당의 활동가들은 이 책에서 오직 ‘의무와 규율’에 얽매인 “슬프고 금욕적인 행위자”로 등장했다. 네그리가 자신에게 부여한 “억누를 수 없는 가벼움과 기쁨”과는 대조적이었다. 민족해방에 희망을 건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실패할 운명에 놓인 것으로 묘사됐다. 장 주네(Jean Genet)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제도화되는 날, 나는 더 이상 그들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분석 대신 이 말을 인용했다. 하트와 네그리는 “민족국가가 건설되면” “근대 주권이 가진 모든 억압적 기능이 필연적으로 완전하게 꽃핀다”고 설명했다.

하트와 네그리의 저작은 제국 안에서, 그리고 제국에 맞서 벌이는 동원을 찬양했지만, 피지배층이 무엇을 요구하고 기대하는지는 다루지 않았다. 산업 노동계급은 소멸해 가는 행위자로만 등장한다. 정체성과 지역성을 지키려는 모든 움직임, 그리고 국가 안에서 쟁취한 권리까지도 과거지향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듯하다. 이 책은 자본주의 세계화 내부에서 싸우지 않고 그 ‘외부’를 찾으려는 모든 전략이 “제국 안에 존재하는 진정한 대안과 해방의 가능성을 흐리게 하고 심지어 부정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후 《다중》(Multitude)과 《공통체》 (Commonwealth) 같은 저작에서 하트와 네그리는 제국 자체가 무수한 형태의 저항과 거부를 촉발하며, 이런 움직임들이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했더라도 결국 서로 평행한 길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고 제안하는 데 머문다.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 이후 등장한 《제국》은 ‘짧은 20세기’의 환상이 패배한 것을 그동안 앞길을 가로막았던 국가주의 프로젝트가 제거된 것으로 봤다.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이 수많은 실패를 겪고 최근 역사적인 패배까지 당한 상황에서, 국가를 개혁하는 프로젝트가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믿는 데 별다른 설득이 필요 없는 독자층이 《제국》 앞에 있었다. 그러나 《제국》이 예고했던 21세기, 즉 제국주의를 넘어 통합된 자본주의적 제국으로 나아가는 시대는 거의 시작하자마자 좌초했고, 위기에서 국제분쟁으로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2000년 대학가를 사로잡은 ‘차세대 거대 담론’은 좌파의 패배와 약속했던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세계화가 낳은 산물이었다.

[출처] Hardt and Negri’s Empire Got Everything Wrong

[번역] 하주영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