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3살 된 아이가 있다. 이제 겨우 부모와의 의사소통이 좀 되는 정도이지만 아이는 자신이 싫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거부의 몸짓을 한다. 고개를 가로 젖는 것으로 충분치 않으면 좀 더 분명히 거부의사를 나타내고 한다.
때를 쓰는 아이를 보고 ‘고집이 세다’ 거나 ‘버릇이 없을까’ 걱정 할 수도 있으나 자신의 좋고 싫음을 분명히 표현할 줄 알고 이를 배워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지금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들을 보면 무엇이든 ‘시키면 시키는 데로만 하지’ 싫다고 말 한마디 못하기가 다반사다.
어떤 라인은 작업시간 5분전에 아침조회를 한다. 처음에는 ‘한번 해보자’에서 시작했다가 지금은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변해 버렸다. 작업시작 전 아침조회가 사실 전달사항 몇 마디 전하고 작업을 1분이라도 빨리 시키는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는데도 작업자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불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5분전 아침 조회가 근무 시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작업자들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거부하는 말 한마디 없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5분간의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5분씩 300명이면 1,500분, 즉 26시간의 공짜 노동이 제공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임금교섭만 끝나면 라인에선 생산량 때문에 난리다. ‘임금이 올랐으니 일을 더해야 한다’,
‘작업능률이 얼마인데 얼마까지 올려야 한다’ 라며 사측은 현장을 조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불만은 있을지언정 거부의 몸짓’을 전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회사의 현장 통제는 소낙비처럼 거세게 들어오지 않는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라는 속담처럼 알게 모르게 현장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우리도 이제는 ‘안돼’, ‘못해’ 라고 말해보자. 세 살박이 아이도 정확히 표현하는 거부의 몸짓을 한번만이라도 표현해보자. 이러한 말과 행동이 회사의 현장 통제에 상당한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캄코 교선국장 이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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