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품위있게 산다는 것

어렸을 때다. 나이가 들수록 점잖아 보이는 아저씨나 아줌마들을 TV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보면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하고 생각했다. 나이들어서 목소리 높여 외쳐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새 나도 시쳇말로 아줌마가 되었다. 부모님연세도 꽤 되었고 조카들도 꽤 많고 시부모님들을 비롯한 새로운 사람들과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한마디로 제 얼굴은 제가 책임져야하는 나이다.

얼마전 삼성해고자 원직복직 투쟁위원회, 전국철거민연합과 오트론해고자 연대투쟁위원회과 공동주최로 계속된 공권력 만행을 규탄하는 항의집회를 하기 위해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러 갔다 생긴 일이었다. 그런데 집시법을 담당하는 정보과 형사는 시내중심가 도로행진은 안된다며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게 아니겠는가? 아니 엄연히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인데 왜 이러느냐고 따졌다. 그래도 형사는 잘 모르는가 본 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며 같은 말만 늘어놓길래 꼬치꼬치 조항을 따지며 옥신각신하기를 2시간. 너무 화가나 목청을 높여 “더 이상 얘기하기 싫으니 집시법대로 신고만 받고 신고확인서나 달라”고 했다. 그러자 정보과사무실에 있던 형사들 “도대체 누가 공무를 보는 남의 사무실에서 떠드는 거야” 차례로 짜증내는 말 한마디씩 한다. 급기야는 “저 여자 누구야? 젊은 사람이 위아래 못 알아보고 나

이많은 사람들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세상 좋아졌어” 라더니 저 구석쪽에서 쌍소리까지 하는게 아닌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여자라고, 해고자라고 무시하는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욕을 한 사람이 보이는 곳으로 가 삿대질을 해 가며 소리를 질렀다. “누가 소리지르게 해놓고 쌍욕이야. 욕한 놈 나와. 내가 법 어기면 니들 하던 대로 집어넣으면 될 것 아니야.” 그러자 담당형사 “ 해고자가 그렇게 법을 잘 알아. 광장히 똑똑하군” 하며 비꼬길래 사무실을 완전 뒤집어 놓기를 30분. 겨우 차도 행진을 받아내고 나오는 데 힘이 쭉빠져 버렸다.

소리를 지르느라 에너지소비가 많았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밖에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더 힘빠지게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런 나의 모습을 우리 시어머니가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정말 품위 없구나 하실까? 그래 정말 자본주의하에서 품위란 지킬 수 없구나!’나도 품위있게 따지지 않고 조용 조용 애기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면 조용히 차도행진을 내줘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지 않은가. 겉만 번지르한 품위와 바꿀 순 없지 않은가. 자본주의하에서 품위가 침묵과 같은 말이라면 품위를 박차고 과감하게 나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저들이 만들어놓은 품위가 순종과 겉모습 뿐이라면 우리같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투쟁하는 모습이 정말 품위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며칠 후 경찰청 집회를 마친 뒤에 한 동지의 말.

“대단했다던데, 동지였군요. 집회신고를 하러간 사회보험노조 조합원이 많이 배웠답니다.” 그 말에 다시 힘을 얻는다. 그래 우리의 품위는 이런 거야.

<최명숙/서울노동자운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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