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작가 황석영이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적어도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안티조선일보’ 운동은, 자신의 입장이 찬성이건 반대이건 지나칠 수 없는 현상이 됐다. 정과리 교수, 작가 이문열, 양귀자 등이 반대 주장을 펴는 가운데 8월7일, 154명의 ‘조선일보 기고·인터뷰 거부를 위한 지식인 1차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조선일보> 반대 운동은 본 궤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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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얘기하는 건 새삼스럽다.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을 유일하게 보도하지 않은 신문, 86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에 ‘급진세력, 혁명위해 ‘성’까지 도구화’ 제목을 붙이고, 숱한 젊은이들이 죽어가던 91년 5월 민주화투쟁 당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 했던 신문이 <조선일보>다. 그 신문에게 파업하는 노동자, 집회하는 운동권은 모두 ‘폭력과격집단, 국가전복세력’이고, 누구나 ‘빨갱이’인지 아닌지 사상검증을 받아야 한다.
지식인들의 ‘품위있는’ 선언
그런 신문이 최근 몇 년 사이, 교양면을 중심으로 ‘생각있는’ 이름난 지식인들에게 지면을 열어 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다양하고 진보적인 소재를 첨가해 다른 지면의 우익성을 감소시킨다는 비판이 일었고, 그에 대해 한쪽에서는 많이 읽는 신문에 그나마라도 우리의 뜻을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대응했다. 요즘은 지식인들에게 어디에 동참할 것인지 입장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안티조선일보’ 운동은 이러저러해서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일어난다.
어쨌든 좋은 일이다. 내노라 하는 당대 지식인들이 조직적으로 선언 운동을 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건, 참 간단한얘기를 그토록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주장하고 논쟁을 벌이고 설득한 끝에 ‘선언’한 한국 ‘지식인’들의 ‘품위있는’ 행동이다.
새삼스러운 ‘안티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 기고 거부라… 사실 나는 예전부터 그런 사례를 많이 알고 있다. 대학신문사에 있을 때 <조선일보> 수습기자가 취재를 오면 신문사 안에 있던 기자들이 하나씩 둘씩 자리를 비우고 도망갔다. 신촌 지역 대학가가 취재처였던 그는 학생회, 동아리, 대학 언론사 어디에 가도 ‘왕따’ 취급이라며 사정을 하소연했지만 우리에게는 그게 왜곡보도를 막는 최소한의 조치였다.
96년 8월, 범민족대회에 참가한 한총련 학생들이 연세대에 10여 일 넘게 갇혀 있었을 때는 어땠는가. <월간 말>이며 지금은 안 나오는 월간지 <길>에는 갇혀 있는 학생들의 사진과 생활이 취재기사로 실렸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들은 소속을 밝히는 순간 학생 사수대에게 돌팔매질을 당했고 취재도 거부당했다. 1면 머릿기사에 ‘한총련, 연대과학관 ‘볼모’ 대치, “산소통 터뜨리겠다” 협박’ 따위의 제목을 뽑아대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해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도, 더 오래 전에 한국통신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며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 때도, 그게 어디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에서 <조선일보> 기자는 일단 취재거부에, 찬밥 신세다. 그뿐인가, 큰 투쟁이 있을 때마다 <조선일보>는 언제나 항의전화 대상 1호였다. 투쟁하는 약자이라면 누구나 자신들의 상황과 생각을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어한다. 그 욕망이 <조선일보>에라도 자신의 생각을 싣고 싶다는 지식인들의 바램보다 결코 덜 할 리 없다. 그러나 현실의 투쟁에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언제나 자신을 칼날같이 세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누가 우리편인지, 누가 적인지가 분명하다.
머리 속으로 곰곰히 생각해보고 다른 동료들이 하는 거 봐 가면서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지금 그가 싸우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뿐이다.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이쪽 면에서는 자기들더러 ‘빨갱이’라고 하다가, 저쪽 면에서는 1950년대 미국의 메카시 선풍을 비판하는 글을 실어도 절대 헷갈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빨갱이’라고 욕하는 지면에는 글을 못 싣지만 그렇지 않은 지면에는 글도 싣고 취재도 해주는 사람에 대해서도 결코 헷갈리지 않는다. 사람 좋아 보여도 결국은 판에 박힌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조선일보> 기자와 그 신문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듯이 말이다.
뭐가 그리 복잡한가
그런데 지식인들은 그 당연한 일을 이제서야 호들갑을 떨며 ‘선언’한다(!). 글도 써 보다가, 인터뷰에도 응했다가, 논쟁도 벌이다가 말이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논쟁은 또 얼마나 오래되고 길고도 복잡한가.그렇게 조직적으로 선언하지 않아도 내게는 그저 아무 말없이 이제까지 안 썼고 앞으로도 안 쓴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 이상 행동하지 않겠다면 말이다.지난 봄, 선배가 일하는 출판사에 놀러갔다가 들은 짤막한 에피소드가이 글의 끝이다.
한 일본인 학자가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월간조선>이 어떤 성향의 잡지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거부하는 일본인 여성학자의 책을 출판했는데 그게 우익 민족주의자인 <월간조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보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일본 학계에서는 진보적이라고 알려졌으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의 입장에 반대되는 견해를 가졌다고 했다. 어찌 알았는지 <월간조선>이 그에게 반박글을 청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글을 싣고는 싶은데 잡지 성향이 어떤지 알고 싶어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어차피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출판사 쪽에서도 더듬더듬 짧게 몇 마디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월간조선>에 그의 글이 실리지 않은 것을 보면 청탁을 거절한 것 같다고 선배는 말했다. 그에게는 그 몇 분의 설명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이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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