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서산으로 민중연대현장활동을 하러 들어갔다. 그 지역은 군 비행기 소음으로 전화나 대화가 불가능하고, 임산부가 아이를 낳기 힘든 곳이다. 98년 7월부터 소음피해 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책위가 꾸려졌다. 대책위에 가입된 마을은 현재 24개. 하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대책위 투쟁에 비관적이셨다.

우리는 귀밀리라는 마을로 들어갔다. 투쟁 의지도 있고, 인정도 좋은 마을이었다. 가구수가 40가구밖에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음피해가 심각한 것도 그 이유였다.

주민 분들은 현장활동을 수행하는 대원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밤마다 잠도 안주무시고, 회관에 들려 이야기하길 즐겼고, 같이 투쟁가도 배우면서 친목과 결의를 다졌다. 하루는 모두가 근처에 냇가로 낚시를 갔었다. 주민 분들이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와 뱀장어로 어죽을 만들어 주셨는데, 국수와 그 속에 그대로 있는 고기를 보고, 당황스러워 하던 대원들의 얼굴엔 먹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억지로 맛있다고

하면서 먹을 수밖에.

7월 3일 비행장 앞에서 주민-학생 공동집회가 열렸다. 땡볕 속에서 나이 많은 분들이 꿋꿋이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났다. 하지만 결의대회는 힘없이 전개됐다. 대책위의 의지가 별로 없었던 탓이었다. 한 할머니는 “투쟁하려면 밀고 땡기고 싸워야지, 발언만 듣고 말만 하면 뭐하냐”며 불평하셨다.

다음날 우리는 마을 분위기를 살리고자 설문 작업을 했다. 한분 한분 만나면서 설문지 작성을 했다. 한 할머니는 비행장이 들어서기 전 11개 마을이 철거됐고, 계속해서 싸우시다가 결국 쫓겨난 분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보상을 받더라도 오랫동안 정든 일터와 논밭을 떠나야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현장활동을 수행하면서 주민 분들과 유대도 쌓고, 매향리 주민 분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비록 다른 지역이지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음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듣게 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가끔 멍멍해진다.

투쟁이 촉발된 작년보다 좋은 결과를 보여준 현장활동은 되지 못했지만 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사실 주민 분들이나 대책위에서 현장활동대가 열심히 투쟁해서 무언가 해주길 바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름 방학기간 동안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연대 활동으로 자리 매김 하길 바라셨을 것이다.

<김상희/강남대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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