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 여성근로기준법 ‘개악안’ 국회 통과

‘노동자’는 버리고 ‘여성’만 가져라?

‘여성 근로기준법 개악안 통과 저지대회’.

7월 18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열린 집회 명칭은 이랬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환경노동위원회의 모성보호 관련 조항 개정안에 대해 ‘여성 근로기준법 개악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6월 26일, 여야 3당의 합의 속에 ‘모성보호 관련 조항 개정안’이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주요 일간지들은 ‘일하는 여성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며 반겼고,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 소속 여성단체들도 ‘여성의 고용평등에 새 전기가 마련됐다(6.21 중앙일보)’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그것이 이날 집회에서는 ‘여성 근로기준법 개악안’으로 둔갑해 있었다.

‘임신한 여성노동자의 산전·산후 휴가일을 현행 60일에서 90일로 연장하고 연장된 30일 분에 대해 휴가급여를 지불하겠다’는 내용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인데, 이날 개정안 통과를 저지시키겠다는 집회가 열렸던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민주노총은 환경노동위원회 개정안을 찬성한 ‘여성노동법 개정 연대회의’에 속해 있으면서도 개정안 통과 저지대회를 소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성보호를 빙자한 여성노동법 개악

우리 당, 서울여성노조, 민주노총, 파견철폐공대위, 지역노조연대회의, 사회진보연대 등 집회 참가자들은 환경노동위원회 개정안은 여성노동자의 모성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법적 장치들마저 삭제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악 시도를 규탄했다.

이날 집회 사회자로 나선 민주노총 공공연맹 심재옥 여성국장은 “여성노동자 가운데 80% 정도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가사와 육아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 야간노동을 규제해도 부족한 판에 야간·휴일 연장 근로 규제를 축소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는 모성보호를 빙자한 여성노동법 개악이며 여성노동자를 우롱하는 처사이다. 또한 전체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초래하여 노동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전체가 싸워야 할 문제다”라며 집회를 시작했다.

‘모성권’도 인식하지 못하는 대회사

그러나 마이크를 이어 받아 대회사를 했던 민주노총 이기재 부위원장은 심재옥 여성국장의 선명한 주장을 이어받지 못했다. 이 부위원장은 “모성이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여성들이 훌륭한 2세를 키워내지 못할 때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여성은 어쩔 수 없이 여성이기 때문에 갖는 약점이 있다. 육체적인 힘의 한계가 그렇다. 따라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 휴가 30일 연장이라는 미끼를 던져 여성노동권 악화를 시도하고 있는 국회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집회에서 그는 ‘노동자 여성’이 아니라 ‘아이 키우는 어머니’를 강조하고 있었다. ‘여성노동자로부터 시작되는 노동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여성들의 보호막 상실’을 걱정하고 있었다. 모성은 보호대상이 아니라 누려야 할 권리임을 깨달아 ‘모성보호’를 버리고 ‘모성권’이라는 표현을 새롭게 가진 사람들은 이날 이기재 부위원장의 대회사를 민주노총의 시각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여성만의 문제로 끝날 것인가?

대회사가 끝날 무렵 경총 집회를 마친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 30여 명의 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석했다. 여성관련 근로기준법 개악은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 악화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주장이 계속됐지만, 이날 집회는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결합하기 전까지 왜소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고 다수가 여성이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 속에 국민의 기본권이, 노동자의 노동권이 위협받고 있었지만 여전히 이 사안이 노동자 일반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한편, 이날 집회에서 11곳의 영세사업장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노조 연대회의 김정호 의장은 “영세 사업장 대부분에서 현행 근로 기준법 조차 지켜지지 않고 하루 11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아무런 사회 보장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 오히려 근로기준법을 더욱 개악하려고 한다”며 노동환경을 악화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환경노동위원회를 비난했다.

근로기준법 개악안 국회 본회의 통과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환경노동위원회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출산휴가연장과 근로기준법 개악을 맞바꿀 수 없다며 ‘여성노동법개정 연대회의’를 탈퇴하고, ‘개정안’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해 싸워왔던 참가자들에게 그것은 지금까지의 싸움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정규직이나 5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앞으로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고통받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11월부터 시행령에 따라 법이 집행될 것을 우려하며 ‘개악안 저지투쟁’의 선봉에 섰던 서울여성노조 김혜선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7월 18일 집회는 “하반기에 있을 노동시간 단축 투쟁, 생리휴가 폐지 반대 투쟁과 함께 재개정을 쟁취하는 투쟁을 전개하자”는 사회자의 결의에 찬 목소리로 끝났다.

계급적인 여성운동, 차별없는 노동운동

그러나 결의에 찬 목소리만큼 승리를 낙관할 수 있는 것인가? ‘얻으려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수세적인 계산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여성단체들이 ‘여성노동법 개정 연대회의’라는 이름 하에 모여 ‘여성일반의 목소리’를 자처하고 그들이 여성계의 다수로 존재하고 있다. 그들 곁에 여성노동권은 어떤 조건에서도 포기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분열’에 대한 비난을 두려워하며 ‘전체’에 안주하는 소심한 사람들이 함께 한다. 물론, 그들과 달리 ‘자본가의 논리는 노동자의 논리로만 싸울 수 있다’며, 어떠한 권리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수가 되지 못했다. 뜻은 같다지만 ‘전체’이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여전히 소수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약한 고리부터 부숴 버리겠다’는 자본가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정부가 호시탐탐 법개정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지금 그들이 선택한 것은 ‘여성노동자’다. ‘노동자’인데다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맞서려면 ‘여성노동자’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 힘은 ‘여성 일반’이라는 허구의 틀을 깨고 ‘여성노동’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는 여성들로부터, ‘여성’이라는 현상적 차이에 주목하지 않고 ‘노동자’ 일반의 문제임을 깨닫는 남성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모든 차별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연대와 명확한 계급성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7월 18일, ‘근로기준법 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던 집회현장은 이것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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