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섭 논설위원(―):현 정부 출범 뒤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쪽은 대북3원칙(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교류협력 추진)과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제시하며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해왔다. 북한도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개정된 헌법에서 최고실권자인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는 변화가 있었다. 정부는 몇차례 잠수정 침투사건에도 대북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고나가 금강산관광사업이 이뤄지는 등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올해 대북정책의 성과에 대해 자평해달라.

강인덕 장관(=):안보와 교류협력 병행 원칙을 유지하며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전개했다. 그 결과 초보적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단초가 마련됐다. 금강산관광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9월5일 최고 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면서 부분적으로 개방을 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대남기본노선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의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동·서·남해안에 각각 잠수정을 보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시인과 사과, 재발 방지 약속 등 받지도 않고), 미봉해 버렸다는 비판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기본원칙이 뭐냐를 생각해야 한다. 북한은 대남전략을 단시간에 수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남북의 긴장을 대내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개혁·개방·타협 등 수정주의를 공식적으로 보여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안보태세 확립이 중요하다. 잠수정 침투 등 과거와 같은 방법을 쓰면 남쪽에서 비판을 받아 의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남북관계 개선도 요원하다는 것을 북한에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이 계속 잠수정을 보내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나올 수 있다. 햇볕정책에 위협을 느껴 이를 흔들고 무산시키기 위해서라는 분석, 수직사회이기 때문에 수평적 의사소통이 잘 안돼 북한 지도부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분석, 군부세력 등 남북화해 기류에 반대하는 세력의 도발이라는 분석, 첩보용 첨단설비가 없어 인적 첩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 등이 그것이다. 장관의 생각은.

=북한의 잠수정 침투에는 복합적 요인이 있다. 북한의 국방위원장이 김정일이고 핵심부분을 군부가 장악하고 있다. 북한은 전쟁 준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간첩선을 보낸다고 보지는 않는다. 도발을 하려면 휴전선에서 하지 뭐하러 간첩선을 침투시키겠나. 북한으로서는 일상적인 활동이다. 둘째, 북한은 최근 경제난과 권력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체제가 이완된 것 같다. 군부와 당 등 수평적 조정이 잘 안되는 등 체계적 조정이 원활하지 못한 것 같다.

―정부의 대북정책 가운데 가장 획기적 성과로 금강산관광사업성사를 꼽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적을 것이다. 남북관계사에서 ‘금강산관광’의 의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금강산은 북한의 군사지역이다. 여기를 개방한 것이다. 북한 당국이 주민과 관광객의 접촉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치긴 했지만, 많은 인원이 들어가면 이런 사실이 북한 사회에 알게 모르게 퍼질 수밖에 없다. 금강산관광은 남북이 서로 어떻게 접근할지 연구하고 경험하는 좋은 계기이다. 이 작은 시작을 잘 지속시켜 확대해야 한다. 남북간 신뢰 축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지금껏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북한과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지 못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바라는 것이 첫번째로 꼽히고 있다. 북한이 꺼리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무슨 특단의 대책, 유도책이 없겠는가.

=99년에는 당국간 교섭 재개의 계기를 조성할 것이다. 비료 등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주어서라도 이산가족문제는 풀 것이다. 정부는 북한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북쪽이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한다는 약속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북한은 약속을 안하고 자기들 성의에 맡기라는 식이다. 당국회담이 안되면, 제3국을 통한 비공식접촉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다. 북한도 이산가족 생사확인·면회 등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챙길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북한이 면회소 설치에 동의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할 것이다. 동서독도 그렇게 했다.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면서, 특히 미국에서 공화당 중심의 강경세력들이 대북강경책을 주문하고 있다. 현장접근이 안되면 북미제네바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지원예산이 중단되는 등 한반도에 먹구름이 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금창리 지하시설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가.

=금창리 시설은 규모가 대단히 크다. 군사시설이 될지 민수용이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핵시설로 옮아갈 의혹은 있다. 문제는 그게 언제 완성되느냐다. 5~6년은 지나야 한다. 금창리 시설을 아직 핵시설이라고 단정내릴 정보가 없다. 이게 현실이다. 끝까지 교섭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물론 금창리시설이 핵시설로 확인되면 폐쇄돼야 한다. 미국이 중유비용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99년 5월까지 금창리 지하 의혹시설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 중유비용을 안주면 제네바합의는 깨진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할 것이다. 금창리보다 이게 더 큰 문제다.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어서 이익 볼 나라가 없다. 미국이 긴장고조를 통해 자국의 이익 챙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협상과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북한은 금창리 지하의혹시설 현장 접근과 관련해 현금이 아닌 다른 지원도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섭의 여지가 있다.

―미국의 중유공급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한 대책이 있나.

=끊어질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중유비용을 대신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을 만났을 때 ‘일괄타결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일괄타결안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반응은 어떠한가.

=대통령의 일괄타결안은 금창리 지하의혹시설 해결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미간의 전반적 관계개선을 위한 것이다. 북한이 피해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즉 경제재제 등을 풀어주고 또 북한에는 미국과 관계개선 위해 이런 것 풀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부 당국자들은 일괄타결안이 옳다는 점을 인정한다. 한반도문제는 우리쪽에만 유리하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개혁·개방해도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북한이 갖게 하는 게 필요하다. 체제가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는 그들 자신의 몫이다. 우리의 몫은 남북교류협력에서 변화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의 경수로사업비의 70%(32억2천만달러)를 우리가 부담하기로 돼있는데, 재원조달 방안을 놓고 고심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의 방안은 무엇이고 언제쯤 확정되는가.

=야단났다. 분담금 지불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공채발행, 목적세 신설 등 재정에서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현실성이 없다. 어떤 방안을 택하든 결국 국민의 부담이다. 담배·전화·수도료 등에 부담금을 얹는 방안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전기료에 부과금을 얹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전기료에 특별부과금을 얹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면제하고 산업부문에 부담이 가지 않게 할 것이다. 경수로비용은 경제협력비가 아니고 안보비용, 평화유지비용이라는 점을 국민이 납득해야 한다.

―우리와 한 핏줄인 북녘땅의 어린이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다.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와는 별도로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 나서서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일부에서는 정부가 국내 보수세력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북한은 99년에 150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그중 절반을 사들인다고 해도 최소한 70만~80만t이 부족하다. 한세대가 공백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간과해서는 안될 민족의 비극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WFP) 등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게 좋은지,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게 좋은지 검토중이다. 정부차원에서 안되면 민간기구를 통해서라도 △봄에 식량생산에 필요한 기자재를 북한에 제공하고 가을에 수확한 것으로 돌려받는 계약영농 △북한 땅을 임차해서 생산하는 방안 △비료 등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마련할 수도 있다.

―사태가 급박한데 식량지원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북한이 무엇이 얼마나 부족하다고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알려만 주면 즉각 지원할 뜻이 있다. 과거처럼 주고받기식 협상을 하자는 게 아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우리 민간단체에는 요청하면서 우리 정부에는 요청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국민정서도 있는데, 북한의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식은 곤란하다. 우리가 먼저 이런 것 주겠다고 제시하고 북한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정부는 정부차원의 대북지원에 대해 ‘상호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에서 3년9개월만에 남북 당국자 회담이 열리고, 차관이 참석해 비료지원 문제를 협의했는데, 결렬됐다. 어렵사리 열린 차관회의에서 ‘밀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북한을 너무 몰아세웠던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다.

=지난 4월 베이징회담은 새 정부 출범 뒤 1개월여만에 열린 것이다. 당국간 첫 회담이니 만큼 우리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유연한 전술을 썼더라면 국민들이 그같은 정부정책을 지지했겠는가. 반발이 컸을 거다. 지난 1년간 햇볕정책을 알리고 나름의 성과를 거뒀는데도 보수세력의 반발이 있다. 이를 막을 수 없으면 햇볕정책을 추진할 힘을 잃게 된다. 상호주의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대단히 융통성 있는 정책이다. 비등가성 비동시성 비대칭성 등을 고려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 변화다.

―난마처럼 얽힌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정상회담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혹시 막후접촉은 없었는가.

=막후접촉으로 불리는 당국간 비공개회담은 반드시 필요하다. 채널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러나 민간인이 나서는 비선접촉은 아무 소용이 없다. 정상회담과 관련해 ‘만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남북관계를 풀어갈 준비가 되어있어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이 준비가 돼 있는지가 문제다. 북한이 준비가 안돼있는데 무리하게 요구하면 일종의 평화공세로 받아들일 것이다. 차분하게 추진할 것이다.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밀고 당기는 한편에서는 인적·경제적 교류가 이뤄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군사적 긴장관계는 때때로 생기는 그런 형태로 가리라는 분석이 많다. 이는 동북아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해야 할 미국의 전략적 필요성과 체제유지를 우선으로 하는 북한의 전략이 맞물려 돌아갈 것이란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장관은 우리가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할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반도 주변 4강국간에 핵·환경오염·무역·마약 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자는데 ‘전략적 파트너십’이 형성돼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한반도 평화안정에 직결된다. 남북관계는 전략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낙관적이다. 그러나 남북한은 아직 냉전적 관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탈냉전 노력이 있어야 한다. 6·25라는 피어린 비극이 남긴 과거의 증오를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다. 그 길은 교류협력 밖에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전략적 낙관주의와 전술적 신중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99년 남북관계는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올해보다는 조금 나아질 것이다. 지하 핵의혹 시설 등 문제 등으로 미국과 일본의 여론이 경직되고 있는데, 앞으로 3~4개월을 잘 넘기면 후반기부터는 잘 풀릴 것이다.

정리/이제훈, 사진 손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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