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잠수함사업을 둘러싼 현대와 대우 두 재벌그룹의 격렬한 수주 전쟁이 2년여 이상 계속되면서, 국방부가 관련 업체들에 지나치게 끌려다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차기 중형잠수함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수의계약 방식을 폐기하고, 현대중공업쪽이 끈질기게 요구해온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력한 수의계약 대상업체였 던 대우중공업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자 최근 사업자 선정방식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방식은 현대와 대우 두업체에 건조물량을 배분하는 물량배분제가 가장 유력하다는게 국방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우의 초강경 반발 의식한 결과

척당 3천억∼4천억원, 전체로는 2조원이 넘는 중형잠수함사업을 둘러싼 현대-국방부-대우의 삼각줄다리기는 김영삼 정권 말기인 지난 97년부터 시작했다. 당시 국방부는 “(대우중공업과 제휴한) 독일의 HDW사가 프랑스와 스웨덴의 회사보다 성능과 기술이전 조건에서 가장 유리하다”며 HDW사와 수의계약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후발업체인 현대중공업은 “국방부의 수의계약방식은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려는 것”이라며 소송제기 등 수의계약 저지를 위한 총력전을 폈다. 현대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도 호응을 얻었다 . 그러자 국방부는 지난 97년 말 사업착수를 미루고 현대와 대우 두업체에 대한 실사를 먼저 하겠다고 물러섰다. 하지만 이때까지 도 국방부는 대우의 사업자선정 가능성이 가장 높은 수의계약방식 을 여전히 고수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서면서 국방부의 태도는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야당시절 수의계약방침을 비판했던 천용택 의원은 국방 장관으로 입각한 뒤 잠수함사업과 관련한 특혜의혹을 해소할 것을 지시했다. 게다가 국방부는 지난해 6월 중형잠수함사업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에서 “국방부의 차기중형잠수함 사업추진방식이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둔 편파적인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국방부는 지난해 12월22일 기존 수의계약을 통한 사업자 선정 방침을 철회하고 경쟁입찰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이날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 특혜시비를 없애고 가격인하 가능성, 성능·운용 및 후속 군수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경쟁입찰 방식으로 차기잠수함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잠수함생산지정업체인 현대와 대우를 대상으로 범정부차원으로 실사를 한 결과, 기존업체인 대우의 능력으로는 물량을 적기에 생산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독점 우려가 있으며, 잠수함생산을 위한 현대의 추가투자는 300억원 가량에 불과해 과잉투자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런 발주방침 변경은 그동안 잠수함사업을 사실상 독점해온 대우중공업의 초강경 대응을 야기했다. 대우는 국방부의 경쟁입찰 방침 발표 일주일 뒤인 지난해 12월29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방부의 잠수함사업 정책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며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대 신규투자 허용 특혜 아닌가?

대우는 이날 “현대의 신규투자와 경쟁입찰방식 결정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 국방부의 현대·대우중공업 실사결과가 최종결론과정 에서 의도적으로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대우에 따르면 국방부는 업체실사에서 대우중공업의 잠수함건조능력을 연간 발주예상물량 0.94척에 크게 못미치는 0.67척으로 평가해 현대의 신규진입을 정당화하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사실과 다를뿐더러 실사 뒤 평가위원간 결과 토의, 청문회 실시, 평가보고서 작성 등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우쪽은 “국방부 실사에선 대우중공업이 지난 87년 이후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8척을 건조했으며, 지금도 설비일부를 놀리면서 2척의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 실상이 왜곡됐다”며 “실사에 나선 정부 평가위원과 평가팀장 도 대우의 설비능력을 연간 1.5척으로 제시했는데 최종결론과정에서 수치가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번 실사에서 신규투자 자금 규모와 기술인력 양성기간 등 현대쪽 주장은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대조적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도 생산능력실사결과는 특정업체(현대중공업)의 신규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기존업체인 대우의 생산능력을 축소평가하고 현대쪽은 상당히 우호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우가 ‘결사항전’의 자세를 보이는 가운데, 실사결과가 조작·왜곡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여론의 향배도 불투명해 지자 국방부는 일종의 타협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가 법적대응에 나설 경우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데다, 산업계 전반에 구조조정분위기와는 달리 유독 ‘현대’와 ‘잠수함 사업’에만 신규투자를 허용한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국방부 한 관계자는 “현대와 대우 모두에게 잠수함건조물량을 나눠주는 물량배분방식이 본격 검토되고 있다”며 “복수업체를 유지하면서도 경쟁입찰 대신 물량을 나눠 수주하는 일본의 잠수함사업방식이 모델”이라고 전했다. 그는 물량배분방식이 도입될 경우 앞으로 발주할 3척은 대우 2척, 현대 1척으로 배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확실한 기준 없는 국방부가 문제

그러나 국방부의 이런 해결책 모색은 또 한번 정부정책의 권위와 신뢰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게 업계와 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 물량배분 방식은 사실상 경쟁을 배제하는 것으로 경쟁입찰과는 거리가 멀다. 또 과잉투자논란 속에서 복수업체 유지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어서 과잉투자논란도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국방부의 잠수함사업 정책이 기준과 원칙없이 시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군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잠수함 사업이 군 자체적으로 착실하게 준비되지 못하고, 관련 업체나 정치권의 논리에 휘둘리다 생긴 일”이라며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재벌들은 필사 적으로 달려드는데 반해, 이에 대처하는 국방부는 확고한 방산정책의 원칙과 기준이 없어 여론과 정치논리에 휘말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양상우 기자 yswma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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