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이 모금운동을 통해 북한에 비료를 무상지원키로 한 것은 그것이 인도주의 단체이고 파종기를 앞두고 북한에 비료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해할만은 하다. 그러나 정부가 여기에 참여해 한적이 1차로 북에 주기로 한 10만t 가운데 5만t을 부담하는 등 사실상 주도하기로 한 것은 석연치 않다. 단순히 형식논리로 보면 정부가 한적의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 대북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며 정부가 국민과 한마디 상의없이 지금까지의 원칙을 포기하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당국자 회담이나 심지어 적십자회담 한번 거침이 없이 적십자사를 통해 직접 대북 비료지원을 하는 것은 분명한 기존원칙의 포기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북 비료지원은 이산가족 문제와 연계되어있었다. 상호주의 원칙하에 당장의 맞교환이 어려우면 최소한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신통한 반응이 없자 정부는 새해들면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요구하기만 하면 주는 방향으로 원칙을 후퇴시켰고, 그래도 북한의 응답이 없자 이같이 쉽게 납득하기 곤란한 기묘한 편법지원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전면에서 비료지원에 나서면 여론의 반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또 국내에선 실업문제가 심각한 쟁점이 되고 있는데 거액의 국민세금으로 비료를 구입해 북한에 지원하면 명분도 서지 않기 때문에 적십자사의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정부는적십자사의 모금이 신통치 않으면 정부 책임하에 우선 5만t을 외상으로 구입해 북에 무상지원할 계획이다. 파종기인 4월에서 6월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정부가 원칙을 포기하면서까지 북한에 비료를 지원한다고 해서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 등에 응할 것같지는 않다. 또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북한과의 물밑교섭에서나온 결론인 것도 아닌 듯 싶다. 정부가 요즘 이와 관련해 묘한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른바 선공후득(먼저주고 나중에 얻는다)이라는 논리로 북한에 줄 것을 먼저 주면 북한도 장차는 우리의 선의를 믿고 태도를 바꿀 것이란 희망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주어도 소용없을 때]를 고려하지 않은 취약점을 안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봐도우리의 일방적 생각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한 감상적인 기대는또한번 북한의 콧대만 높여줄 가능성이 높으며 [주고 받는 것]이 분명한 미국의 대북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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