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갑자기 불어온 세찬 바람을 맞고 사정없이 닫혀버린 아파트 현관문에 딸 아이의 손가락이 끼는 바람에 엄지 손가락이 거의 절단될 정도로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네 살밖에 안되었던 딸 아이는 말로만 듣던 접합수술이란 걸 받느라고 병원에 며칠 동안 입원을 해야 했다.

나까지도 때를 맞춘 듯 오랫만에 찾아온 ‘위경련’과 감기로 고생하느라고 딸 아이 병치레를 안해가 열흘쯤 혼자 도맡아야 했다.

안해가 매일 밤마다 병원에서 쪼그리고 자면 나는 아침 일찍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안해를 데리고 오는 게 고작이었다.

내 몸도 온전치 못하니 안해와 함께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다시 잠자리에 누워 버려, 안해는 병원에서 딸 아이한테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는 아침밥 차린 후에 날더러 “일어나라 일어나라.”고 여러번 외치는 수고까지 해야 했다. 서둘러 출근을 해야 하는 안해의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어느날, 아침에 안해가 날더러 뭐라 말을 했는데 내가 잘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안해는 양말 신는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혼잣말처럼,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개는 같은 소리로 두번씩 짖지는 못해. 알어?”

나는 “표현이 절묘하다.”고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으로 그 위기를 넘겼다.

잠시 후, 밤 새 기침을 하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잤던 나는 따뜻한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고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았다. 안해는 주전자를 살피고 오더니 내게 묻는다.

“당신이 물 올려놨어?”

“응, 따듯한 물이라도 한 잔 마시려고…”

안해는 대뜸 따지듯 물었다.

“목욕할 일 있냐?”

으, 두 컵 분량밖에 안되었는데…

마침 어버이날이라고 국민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이 기특하게도 카네이션 두 송이를 내밀었다. 그런데 모양이 서로 달랐다.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내 것은 티가 날 정도로 많이 못생겼다. 내가 아들 녀석에게 물어 보았다.

“왜 아빠 꺼는 엄마 꺼보다 밉게 생겼냐?”

아들 녀석이 답했다.

“엄마 꺼는 제가 산 거구요. 아빠 꺼는 오다가 길에서 주운 거라서 그래요.”

세상에… 이렇게라도 살어? 말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

아들 녀석 지운이가 6학년이 되자, 어버이날에 꽃 한 송이조차 없었다. 점심시간에 사무실 직원들이 모여 앉아 자기 아이들이 아침에 가슴에 달아 준 꽃 이야기로 그야말로 ‘이야기 꽃’을 피웠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이가 달아 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채 자랑스럽게 전철을 탔노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아, 가슴을 스치는 비애…

퇴근하면서 집에 있는 지운이를 굳이 무전기로 불러내어

물어보았다. (딸을 제외한 우리 가족은 모두 아마추어무선사이다.)

“어째서 올해 어버이날에는 꽃 한 송이조차 없는지, 오늘 아빠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오버.”

지운이 녀석은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쏜살처럼 답했다.

“길에 떨어진 꽃이 없더라구요. 오버.”

아, 자식은 다 소용 없다더니…

저녁 밥상을 물린 후, 안해도 아들 녀석에게 섭섭하다고 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마다 카네이션 이야기를 할 때, 아무 할 말이 없었던 엄마는 참 슬펐다고 했다.

그날 늦은 밤, 잠 들기 직전, 지운이는 색종이로 제법 복잡하게 접은 꽃 한 송이를 안해와 내 머리맡에 놓고 갔다. 천만다행이었다.

안해와 나는 그날 밤 편히 잤다. 아무 행복한 일도 없이 그냥

잤냐구요? 그건 상상에 맡기지요.

<오늘날…>

아들 녀석 지운이는 이제 얼굴에 여드름이 툭툭 돋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툭툭 돋은 정도가 아니라 수국 꽃무더기처럼 여드름이 온통 만발하기도 한다.

아파트 윗층에 동갑나기 여학생이 한 명 사는데 그 아이의 엄마가 “아랫층 남학생 어떻디?” 그렇게 물었을 때, 그 여학생은 단박에 이렇게 반문하더란다.

“그 ‘포도밭’ 말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당장 지운이를 동네 피부과에 보냈다. 요즘은 여드름이 거의 없어져서 내가 보기에도 ‘너무’ 잘 생겨서 걱정이다.

후후…

내 생일은 4월말쯤에 있다. 지운이는 내 생일에 아무런 성의 표시가 없었다. 예전처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카드 한 장도 없었다.

내 생일 다음날, 지운이는 아침 밥상머리에서 말했다.

“올해부터 아빠 생일은 ‘어버이날’하고 합치기로 했어요.”

짜식, 그런 머리를 공부하는 데 좀 써라.

어린이날, 이제는 나와 거의 같은 높이로 키가 훌쩍 자란 아들 녀석에게 말했다.

“너는 키가 나보다 커지는 그 순간부터 ‘어린이날’ 하고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지는 거야.”

지운이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지지 않고 답했다.

“음, 그때부터는 ‘학생의 날’이 기다리고 있지요. 에헴.”

어버이날 하루 전, 나는 일이 있어서 광주와 전주에 다녀왔다. 밤 늦은 시간의 비 내리는 호남고속도로가 적당히 고즈녁해서 그랬는지 잠이 쏟아졌다. 옥산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막 새우잠을 자려고 하는데 지운이가 전화를 했다.

“아빠, 어버이날 선물을 결정하기는 했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요.

아빠 수준에 맞는 아케이드 게임 CD를 한 장 사 드릴께요. 제가 하는 시물레이션 게임들을 아빠는 너무 어려워서 못하시잖아요. 후후.”

나는 고마워서 “돈 모자라면 보태 주겠다.”는 쓸 데 없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두어 시간 후,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지운이가 다시 전화를 했다.

“아빠, 제가 요즘 시험 기간이잖아요. 그 게임 CD, 시험 기간 다 지난 다음에 사 드리면 안될까요?”

짜식, 게임 CD 사는데 30분이 걸리냐, 한 시간이 걸리냐…

이러다가 금년부터는 어버이날 선물도 그냥 날아가 버리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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