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안해는 어떤 행사장에 가서 상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별 생각 없이 따라갔었는데 가서 보니 제법 큰 행사가 아닌가. 아무 준비도 없이 따라온 사람은 나밖에 없어 보였다. 모두들 한껏 좋은 옷으로 차려 입고 꽃다발과 꽃바구니들을 한 아름 씩 준비해서 온 모습을 보며 나는 ‘아차’ 싶었다.

‘안해만 오늘 유일하게 꽃다발도 못 받는 신세가 되겠구나.’

난감해하고 있는데 다행히 안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선생님 두 분이 꽃다발과 카메라를 들고 들어섰다.

그런 공식 행사에 참석할 때 입는 의상이 따로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수수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학부형들 중의 몇 사람은 아주 화려해 뵈는 한복을 갖추어 입고 있었다. ‘당의’라고 하던가. 옛날에 궁궐의 중전마마가 입었을 법한 치렁치렁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올린 머리에는 예쁜 악세사리들이 반짝거리기도 했다.

상을 받으러 올라간 사람들 중에 유독 허름한 옷을 입은 여자가 한 사람 눈에 띄었다. 마치 허드렛일을 하다가 연락을 받고 급하게 뛰어나온 듯한 차림이었는데, 번쩍거리는 화려한 옷들 사이에서 주눅 든 몸짓으로 상을 받고 악수를 나누는 그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시려지는 코끝. 으이구, 나는 못 말린다니까…

시상식이 끝나고 안해는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잔다면서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날더러 먼저 가라고 했다.

현관에 나서니, 아까 그 허름한 옷을 입은 여자가 카메라를 멘 어떤 남자와 얘기를 하면서 쩔쩔 매고 있었다. 남자는 “시상식 장면을 찍었으니 그 비용으로 4만원을 내라.”고 요구했고, 여자는 “사진을 안 사면 안되느냐?”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가서 여자를

거들었다.

“아주머니, 그 사진 사기 싫으면 안 사도 되는 거에요.”

사진사는 결국 험한 얼굴이 되어 4만원을 포기하고 갔다.

빠져나가는 자가용 행렬을 보며 망연히 서 있는 여자에게 내가 물었다.

“혹시, 차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 아니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서울 쪽인데…”

“저도 서울 사무실로 가는 길인데 제 차로 모셔다 드려도 될까요? 차를 먼 곳에 세워 놔서 좀 걸으셔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여자는 내 차를 탔다. 한참 갔는데, 여자가 갑자기 말했다.

“제가 생각을 잘 못했나 봐요. 오늘이 스승의 날인데…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 잠깐이라도 들렸다 가야 하는 건데 그랬나봐요. 어떻게 하나…”

“그럼 학교로 가시지요. 뭐.”

방향을 훽 바꿔서 한참 갔는데 여자는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살며시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얼마인지 세어보는 눈치다. 얼핏 훔쳐보니 만원 짜리 석 장이 보였다. 여자는 결심한 듯 말했다.

“여기서 내려 주셔요. 잠깐 들려야 할 곳이 있는 걸 깜박

잊었어요.”

나는 망설이다가 그냥 솔직히 ‘톡 까놓고’ 말했다.

“돈 빌리려고 그러시지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제 안해도

교사거든요. 오늘 아주머니랑 같이 상 받았거든요. 박카스 서너 박스만 사 가지고 가셔요. 그게 제일 좋다고 안해가 그러더군요. 교무실에서 그거 한 병 씩 나누어 마시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어떻게, 오늘이 스승의 날인데… 선생님들 점심 값이라도 가져 가야되지 않겠어요? 선생님들 덕에 이렇게 큰 상도 받았는데…”

“선생님 주머니에 돈 봉투 찔러넣어 주실 생각일랑 절대로 하지 마셔요. 박카스 갖고 좀 부족하다 싶으면 떡을 좀 사 갖고 가시는 것도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한 쪽씩만 먹을 수 있으면 될 거에요. 제 안해가 그러더라구요. 가끔 떡을 사다가 교무실에서 한 쪽 씩 나누어 먹는데 그게 그렇게 좋다구.”

“정말 그렇게만 해도 될까요?”

“그럼요. 그리고, 오늘 집에 가시거든요. 식구들이 담임 선생님 앞으로 편지를 하나 씩 쓰는 거에요. 우리집도 오늘 아침에 그렇게 했거든요. 스승의 날이라고 꼭 무슨 선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선생님도 아주 흐뭇해하실 거에요.”

여자는 많이 망설이더니 결국 “아무래도 돈을 좀 빌려야겠다.”면서 도중에 내렸다. 그 이가 그날 학교에 박카스와 떡을 사 가지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뱀발 : 그날 아침, 내가 아들 아이 담임선생님께 쓴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언제 시간 있으면 차라도 한 잔 하실까요? 이렇게

쓴다고 하니까 지운이가 옆에서 안된다고 펄쩍

뛰는군요. “에이. 우리 아빠는 바보인가 봐.”라고

소리를 지르는군요. 그래도, 예쁜 처녀 선생님을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운운”

나중에 그 편지 얘기를 듣고, 한 후배 녀석이 말했다.

“이제는 아들 아이 담임 선생님까지 넘보는 거유?”

짜식, 내가 언제 누구는 넘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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