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이 통합방송법을 둘러 싸고 기약없는 `공놀이’를 하며 통과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방송사 노조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크게 양보한데 힘입어 이뤄진 노-정 합의에 따라 지난달 27일 끝낸 15일간의연대총파업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다만 이번에는 정치권이 아닌 한국방송공사 사용자쪽에서 통합방송법 통과 에 먼저 `딴지’를 걸고 나선 점만이 다를 뿐이다.

박권상 사장 등 방송공사 경영진은 지난 4일 국민대표성이 있는`방송공사 경영위원회’가 도입돼야 한다는 통합방송법 개정 검토의견을 냈다. 지금의 법안대로 “방송위원회가 정부의 방송 정책·행정권 등을 넘겨받아 권한이 막강해지면 방송공사는 그 직할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방송공사의 자율성·독립성을 위해경영위원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송위로 방송 정 책·행정권을일원화하기로 한 그동안의 합의를 한순간에 뒤집어버리며 `임 시국회 회기 안 통합방송법 통과’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하지만 정작 경영진과 함께 방송공사 이해당사자의 한축인 방송공사 노조 는 여기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경영위원회 도입이 통합방송법 통과 를 늦추는 구실이라는 판단 아래 그동안 수신료를 부담하는 시민 대표의 이 사 선임 등 `방송공사 이사회의 국민대표성 강화’를 대안으로 내세워 왔다.

언론·시민단체들 역시방송공사쪽의 경영위원회 도입 주장에 대해 “방송인 을 위한 방송공사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못마땅한 눈치다.

그런데 공동여당의 한축인 자민련이 방송공사쪽의 주장을 느닷없이 전면 받아들이고 나섰다. 지난 4일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방송공사에 경 영위원회를 도입하고 방송정책권을 문화관광부가 갖도록 하자고 한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 의석비율에 따른 방송위원회 방송위원 배정과 정부의 방송정 책권 보유를 연계시켜온한나라당이 동조했음은 물론이다. 한나라당은 “방 송사 노조들의연대파업은 불법파업이었고, 사용자쪽이 빠진 노-정 합의는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게다가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까지 이를 거들고 나섰다. 이를 두고 언론 계에서는 “방송정책·행정권을 방송위에 `빼앗긴다’고 생각한 모양”이라 며 박 장관의 무책임함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론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아 온 박 장관으로서는더욱 구설수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회의 신기남·최기준 의원, 자민련 정상구 의원 ,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 등이 참여중인 문과관광위원회 `6인 소위’에서 타 협안이나올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이에 따라 전국의 언론학자 80여명이 임시국회 회기 안 통합방송법 통과 를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교육방송 노조 등이파업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등 정치권의 직무유기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저 자] 조준상 기자

[출 처]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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