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보기에도 아주 단정한 느낌을 주는 30대 초반의 여자가 후배의 소개로 찾아 왔다. 남편이 갑자기 죽었는데 어떻게 보상을 받을 길이 없겠느냐고 했다.

그 후 2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던히 애를 쓰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처음에 일을 처리한 공무원이 제대로 하기만 했다면 너무나 쉬운 일이었는데…

첫날, 상담을 마치고 문까지 따라 나선 나에게 그 이가 말했다.

“남편 죽고나서 처음엔 눈앞이 캄캄해서… 살고 싶은 맘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렸어요. 아이 생각도 해야겠고…”

이런 말도 했다.

“참 이상해요. 남편이 전에부터 그랬어요. 자기는 우리 아이 대학 가는 것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고… 그런 말을 자꾸 하면서 날더러 뭘 시작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작은 장사를 하기는 해요.”

나는 무슨 장사냐고 굳이 묻지는 않았다.

두어 달 후에는 이런 전화가 왔다.

“하던 장사를 그만두었어요.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 키우는 여자가 하기엔 적당한 일이 아니었어요. 새 일을 구해 보기로 했어요. 이 나이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무슨 장사냐고 묻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내 아들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우리 사무실에 왔었다.

“몇살이야? 이름은 뭐지?” 이런 상투적인 질문을 몇 개 하고나서, 컴퓨터 게임을 가르쳐 주면서 잘 데리고 놀았는데, 문득 분위기가 이상해서 보니, 그 이가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 나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참 경솔했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이의 인상은 한 마디로 ‘참하다’는 표현이 썩 어울리는 것이었다. 가끔은 파마기 전혀 없는 단발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마치 북에이레의 도시 게릴라처럼 강한 인상을 보이기도 했고, 거슬리지 않을 만큼 적당히 화장을 하고 와서 한결 도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날도 있었다.

막 추워지기 시작하는 초겨울 어느날 전화가 왔다.

“제가 욕 먹을 짓을 하나 했어요. 하 선생님 드리려고 마음대로 뭘 하나 샀어요. 부인과 상의하지 않고는 양말 한 짝도 사지 않는 분이란 걸 알면서도… 괜찮지요?”

고맙다고 할밖에… 다음날 그 이가 와서는, 언더우드 상표의 얇은 스웨터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지나다 보니, 가격 인하 판매를 한다고 써 붙인 가게에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서 들어갔어요. 옷을 고르다가 문득 생각해보니, 그 옷을 입을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걸 제가 깜빡 잊었던 거에요. 허둥지둥 내 몸에 맞는 칫수를 찾았는데 없다더군요. 그냥 나오려다가… 지난번에 뵈었을 때 얇은 남방만 입고 계신 게 추워 보여서… 별로 비싸지 않은 거예요.”

옷을 사주고 싶은 사람이 어찌 나였을까… 길을 지나다 마음에 드는 남자 옷을 보면 누구 생각이 났을까… 나는 감히 그 옷 입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맙게 받았다.

집에 들어가, 웬 옷이냐고 묻는 안해에게 그 사연을 설명하니, 눈물 많은 안해는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그만 이야기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 후 참으로 오랫만에 전화가 왔다. 매번 “저 ○○ 엄만데요.”라고 말했었는데, 그날은 “저 ○○○이예요.”라고 자기 이름을 말하는 바람에, 잠시 누군지 생각을 해 보고서야 알았다. 자신을 부르는 말이 그렇게 달라진 것이, 마치 이제는 세상을 혼자서도 살아갈 만큼 되었다는 말처럼 들려서 참 좋았다.

“사실은… 제가 그동안 교원 임용고사 준비를 했어요. 얼마 전에 시험을 보았는데 붙었어요. 지금 새로 발령 받은 학교 복도에 있는 공중전화예요. 교무실에 있는 전화를 쓰기에는 눈치가 좀 보여서… 전화 상태가 별로 안 좋지요? 날씨가 꽤 좋아서요. 그냥 해 보았어요.”

잠시 침묵… 좋은 선생님이 꼭 될 수 있을 거라는… 참 용하시다는… 인사 치레만 몇 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제가 오늘 저녁 살까요?”라는 말 한 마디쯤이라도 했어야 옳은 건 아니었는지 두고두고 생각했다.

1년여에 걸친 우리의 노력이 법의 심판으로 물거품이 되던 날, 적당한 할 말을 찾고 있는 나에게 그 이가 먼저 말했다.

“위로하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동안 느껴야했던 절망감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셔요. 정말이예요…”

입술을 깨무느라고 마지막 말은 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우리는 발끝만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었다. 햇빛은 어찌나 서럽게 눈부시던지…

그 이가 먼저 말했다.

“이제 다시는 뵐 일이 없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는 헤어져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만 2년이 지난, 크리스마스 하루 전 날이었다. 며칠 후 급히 울산에 내려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교통편을 알아보러 나가느라고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는데 길 건너에서 누가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정말 큰 목소리였다. 바로 그 이였다. 횡단보도를 급히 달려 건너 오더니 “하마트면 못 만날 뻔했다.”며 활짝 웃었다.

나는 발길을 돌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우리 사무실의 직원들이 많이 바뀌어 다시 돌아가며 소개를 했다.

헤어질 무렵, 그 이가 “이거 꼭 받으셔야 해요.”라고 다짐을 하더니 내 책상 위에 꽤 두툼한 도서상품권 봉투를 내 놓고는 재빨리 일어서서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봉투를 들고 얼른 따라 나섰다. 큰 길까지 따라간 나에게 “고맙게 받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에야 그 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이가 말했다.

“저희 시댁 어른들은 참 좋은 분들이예요. 어디 좋은 신랑자리 없는지 알아보라고… 요즘도 뵙기만 하면 매일 그러셔요.”

나는 별로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 이가 계속 말했다.

“혼자 사니까 힘든 게 많아요. 다른 여자들은 여가로나 하는 일들을 나는 생활로 해 내야 하니까… 그래서, 이제는 못하는 게 없어요.”

그 이가 떠난 후, 나는 찬 바람을 맞으며, 울산까지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러 터미널까지 뉘엿뉘엿 걸어서 갔다 왔다.

SBS 개국 무렵 ‘박봉숙 변호사’라는 연속극에서 그 이의 이야기가 한번 다루어졌다. 방송작가가 우리 사무실에 며칠씩이나 와서 대본을 준비했는데, 그 회 방영 분의 소제목은 ‘아빠의 업무일지’였고 그 제목은 내가 붙였다.

그 사건이 한창 진행되던 어느날 그 이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빠의 업무일지를 찾았다”는 전화를 했던 것이다.

“남편의 업무일지를 찾았어요. 저는 남편이 이렇게 바쁘고 힘들게 살았는지 정말 몰랐어요. 그리구요… 아니다. 직접 가서 말씀드릴께요.”

그 이는 남편의 업무일지를 갖고 서둘러 사무실로 왔다. 페이지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의 일정들이 깨알같은 글씨들로 빽빽히 채워져있었는데, 어느날 조금 빈 여백에 다음과 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쉬고 싶다.”

그 페이지를 보여주며 그 이는 거의 펑펑 울다시피했다. 나도 울었다.

그 이의 이야기는 한 동안 현대인의 과로사 문제와 관련하여 방송이나 잡지를 통해 알려졌는데, 방송국이나 잡지사의 PD, 리포터, 기자들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들 말했다.

“○○○ 여사께서, 하 소장님이 하라고 하면 취재에 응하겠다고 합니다. 자기는 하 소장님이 시키는 대로만 할 거라고… 하 소장님께 먼저 연락을 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어제, 그 이가 상담할 일이 생겼다고 친구와 함께 오겠다고 했다. 친구의 남편이 조종사였는데 과로로 사망했다고 했다. 나는 지방 일정 때문에 사무실에 없어서 부득이 연구실장에게 상담을 부탁했다.

오늘 아침 출근했더니 연구실장이 어제의 상담 내용을 전해주면서 말했다.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은 팔자를 가진 사람이 친구 중에 또 있을 수 있을까요?”

두 시간 가까이 걸린 상담을 마치고 나가면서 그 이의 친구가 그랬단다.

“연구실장님이 여자 분이어서 얘기하기가 한 결 편했어요.”

그 말을 듣고 그 이는 친구에게 또 그랬단다.

“하 소장님도 남자 분이지만 얼마나 편하다구…”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