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창조한다는 환상, 트럼프의 파괴적 포퓰리즘

출처: CrowN, Unsplash 

트럼프의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무역 정책이 세계 경제를 흔들면서이번 주의 핵심 질문은 고전적인 현실 정치 분석의 질문으로 귀결된다누가 이득을 보는가?

<파이낸셜타임스>의 질리언 테트(Gillian Tett)가 오늘 아침에 지적한 바와 같이트럼프는 단순한 경제 실험이 아닌 매우 흥미로운 문화적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관세는 유권자와 금융가 모두에게 미끼 상품(bait and switch)”을 제공했다작년에 트럼프는 미국 경제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지금 그는 그들에게 장기적 이익을 위해 과도기적(transitional)”인 단기 고통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트럼프의 포퓰리즘 기록을 고려하면이는 매우 뜻밖이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런 지적이 강하게 와닿는 이유는트럼프의 비정상적인 교란 캠페인에서 실제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포퓰리즘을 총합이 증가하는 구조인 포지티브섬(positive-sum)과 총합이 고정된 구조인 제로섬(zero-sum) 축으로 나눠서 생각한다.

포지티브섬 포퓰리즘은극소수의 사회적 기생충이라 불리는 사람들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한다이것이 히틀러의 이름 그대로인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ational Socialist German Workers’ Party)이 주장했던 민중 공동체의 비전이다이 정당의 명칭에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떠올려보라.

국가-사회주의(National-Socialist)

독일-노동자(German-Workers)

이 조합이 승리 공식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공황이 있었다대량 실업도산한 산업붕괴된 은행농민들이 작물을 버리는 상황 속에서, 193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경제학자들이 이론화한 국가 재건 프로그램은 대다수 국민을 어느 정도라도 물질적으로 나아지게 만들 수 있었다나치 독일제국 일본뉴딜 정책, 1930년대 영국까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증명했다.

물론나치 체제에서는 유대인 소수자와 인종적체제의 적이라 불린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하지만 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국가 회복 프로그램의 경제적 기능에는 필수 요소가 아니었다. 1930년대 후반 대량 고용 호황의 끝자락에서 일어난 유대인 재산의 아리안화는 값싼 기회를 향한 추악한 약탈이었다.

1933년부터 1939년까지의 성장기 동안 독일 기업들은 큰 이익을 얻었다소득 분배 측면에서 보면 불평등이 심화했다하지만 독일 인구의 대다수는 생활 수준 향상을 경험했다다수에게 나치 독일은 새로운 형태의 대중 사회 통합을 제공했다역사학자 데이비드 쇤바움은 이를 제3제국의 비()프롤레타리아화라고 설명했다.

전혀 다른 유형의 포퓰리즘은 사회적 분열을 지우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한다이런 포퓰리즘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희생시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약속한다이 유형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나타날 수 있다.

좌파 포퓰리즘은 다수를 동원해 엘리트를 겨냥한 재분배 투쟁을 벌인다예컨대 재산 몰수나 누진세 같은 방식이다.

반면우파 포퓰리즘은 재산을 가진 질서를 폭도로부터 방어한다좌파가 득세할 경우외부 선동가에게 책임을 돌린다이들을 제거하면대중은 질서로 복귀할 것이라 약속한다.

우파 제로섬 포퓰리즘의 고전적 사례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1919~1922년 시기 초기 파시즘이다. 1919~1920년의 붉은 2(Biennio Rosso)”이라 불리는 좌파 물결 이후파시스트 돌격대는 부르주아 반격의 무력 수단으로 등장했다그들은 노조원들을 폭행하고 농촌 조직가들을 살해했으며가정과 농장의 지배권을 경영진에게 되돌려주었다.

정치경제 측면에서 보면, 10년 뒤 히틀러의 운동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1930~1933년의 대공황과 달리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전후 인플레이션의 맥락에서 탄생했다. 1917~1923년은 유럽 역사상 마지막 혁명적 순간이었다이 시기에 우파 포퓰리즘은 그 실효성을 입증했다인플레이션은 전형적인 제로섬 분배 투쟁의 무대다노동자 vs 공장주, vs 농민, vs 연금 수령자레닌은 인플레이션을 부르주아 사회를 녹여버리는 최고의 용제라고 불렀다.

1930년대 초반과의 차이는 극명하다바이마르 공화국의 말기에 나치와 공산당은 독일 전역에서 거리 전투를 벌였다그러나 대공황대량 실업스탈린주의의 강화라는 맥락에서민중 봉기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위험은 공장이 점거되는 것이 아니라 닫히는 것이었다.

좀 더 평온한 시기에도 포퓰리즘은 종종 재분배 운동으로 등장했다. 19세기 후반과중한 부채를 안은 미국 농민들은 뉴욕의 금본위제를 옹호하는 은행가들과 외국 채권자의 이익에 맞서 싸웠다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금본위제를 금으로 된 십자가라고 비판했다.

이제 트럼프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트럼프의 정치경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트럼프 1.0은 라이트 버전의 포지티브섬 포퓰리즘이라 할 수 있다그는 2016년 세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 담론과 제조업 미니 불황의 배경 속에서 당선되었다. 2017년부터 트럼프는 매우 공격적인 재정 정책을 펼쳤고이는 성장을 가속화해 거의 완전 고용 상태를 회복했다이는 연준과의 긴장을 불러일으켰다동시에 감세는 고소득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안겼고규제 완화는 기업에 유리했다트럼프의 더 급진적인 계획들은 아직 미완성이거나, “방 안의 어른들이 이를 제어했다그의 두 번째 임기가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2020년의 혼란은 명확한 분석을 흐리게 한다하지만 중국과의 긴장 고조와 우파의 급진화는 불길한 징조였다.

트럼프 2.0에서는 전면적 공세가 펼쳐지고 있다여러 전선에서의 공격은 2020년의 급진화를 극단적으로 이어간다처음부터 2025년의 경제 배경은 2017년과 전혀 달랐다공화당이 떠들어대는 취약한 경제는 실상과 달랐다미국 경제는 강하게 성장 중이었고노동 시장은 빡빡했고시장은 활황이었다이런 미국 예외주의” 분위기 속에 트럼프는 폭탄을 던졌다먼저 비즈니스맨이 이끄는 DOGE가 있었고지금은 관세 캠페인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그러나 그의 무역 공세의 범위는 숨 막히게 넓다이는 국가 보호주의 형태의 포퓰리즘과 연결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야망의 규모가 드러나면서 놀라운 점은 그것이 얼마나 개인화되었는가이다트럼프는 미국과 세계 경제의 관계를 재정의하려 하고 있지만이 노력은 일반적으로 분석가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반이 거의 없다.

사회와 정치를 분배적 투쟁의 장으로 본다면보호무역은 보통 특정 이해집단이 외국 수입품에 맞서 요구하는 방어적 수단으로 나타난다유럽 농민은 북미산 곡물에 맞서 보호를 요구했고, 1980년대 미국 자동차 산업은 일본의 위협에 흔들렸다.

이것이 트럼프가 상상 속에서 되돌아가려는 세계다그는 미국 정치경제의 가장 고통받는 부문들예컨대 전미자동차노조(UAW)와 연결점을 찾으려 한다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다소 국제화된 경제 구조에서더 많은 무역 자유화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없었지만전면적 보호무역이나 중국과의 완전한 디커플링을 요구하는 열망도 없었다.

디트로이트의 3’ 자동차 기업들은 멕시코와 캐나다와의 무역 관계가 무너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미국 제조업체들도 수입 부품과 원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수출 기회가 위협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미국 농산업은 수출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월스트리트는 달러의 과도한 특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미국의 세계화는 자유주의적 글로벌리스트들의 환상이 아니라미국 기업의 입맛과 이익에 맞춰진 결과물이었다.

그렇다면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사실 위장한 좌파 포퓰리스트다그는 미국 노동자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 무역 정책을 뒷받침할 대중적 기반은 어디에 있는가?

실업률은 실제로 낮다트럼프와 바이든 하의 미국 경제는 다른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미국 노동자의 10% 미만만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일부 미국인들은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에서 일하길 바랄 수도 있다일부 일자리는 약간 더 나은 임금과 복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는 고용주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그리고 제조업 성장이 일어난다 하더라도대부분은 노조가 없는 주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재산업화를 요구하는 대중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피해는 주로 금융 시장에 집중되었지만이제 가시화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은 훨씬 더 광범위한 피해를 줄 것이다이것은 포지티브섬도제로섬도 아닌, 총합이 마이너스가 되는 네거티브섬 포퓰리즘이다파괴 후 창조를 약속하는 파괴다.

어제 녹음한 팟캐스트에서 캠이 지적했듯이제조업이 되살아난 더 나은 미국이라는 이상향은대규모 국가 보호주의의 논리적 결말로 보이지만실제로는 트럼프적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질리언 테트가 주장하듯미국인들이 쓴 약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실험하는 문화적 실험일 뿐만은 아니다재산업화된 미국이라는 약속된 땅 자체즉 미국인들이 고통을 감수하라는 명분으로 제시된 미래 그 자체가 현실과는 동떨어진기이한 소수의 꿈일 뿐이며대다수 국민의 현실 및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희생의 정치”, “쓴 약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사용한 정치적 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어쩌면 1980년대의 인물인 트럼프는 자신을 그렇게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스튜어트 홀 같은 동시대 분석가들이 인식했듯이대처 또한 정교한 사회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대처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바로 그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대처와 트럼프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대처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혼란과 계급 갈등을 배경으로우파 제로섬 포퓰리즘의 방식으로 행동했다그는 내부의 적이라 불렀던 영국의 조직 노동운동을 철저히 분쇄하려 했다중산층과 노동자 계층 일부의 광범위한 지지를 등에 업었고민영화의 수혜자들 사이에서는 정교하고 현실적인 헤게모니 전략을 통해 더 많은 지지를 확보했다그 쓴 약은 모두에게 쓰지 않았다오히려 고통과 손실은 특정 계층에 집중되었다목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끝내는 것이었다.

대처는 물론 영광의 과거를 떠올리곤 했다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를 즐겨 언급했다그러나 그가 제시한 경제적 미래는 구조적 변화를 수용한 전환의 비전이었고런던 금융가를 비롯한 강력한 기업 이해관계와 정렬된 노선이었다.

이 점은 트럼프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특이한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만약 질리언 테트의 말처럼 트럼프가 지금 미국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화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맞고그 목표인 재산업화된 미국이 당장의 사회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면우리는 최근 수많은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미국의 정치 문화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그것이 사회 현실과의 단절을 초래했다그 결과 트럼프와 그의 패거리가 미국 경제를 대상으로 벌이는 이런 문화 실험이 더는 즉시 좌절되지 않는다거품은 터지지 않는다광기는 이제 모두의 현실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유사점은소련 말기의 노쇠한 지도층이 아니라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의 망상과 열광의 시기다.

2000년대 초조지 W. 부시의 보좌관은 론 서스카인드(Ron Suskind)에게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제국이다우리가 행동하면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그리고 당신은 그 현실을 연구하겠지—신중하게 말이야그러는 동안 우리는 또다시 행동하고또 다른 현실을 창조할 거다당신은 그걸 또 연구하겠지이게 우리가 세계를 정리해 나가는 방식이야우리는 역사의 행위자들이고… 당신들 모두는 우리가 한 일을 그냥 연구하는 수밖에 없어.”

그것은 그때의 이야기였다그들은 이라크를 초토화시키는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2025제국이 분해되는 지금마러라고가 그린 존처럼 기능하면서그런 망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 창조의 감각은 이제 미국 안으로 되돌아왔다.

[출처] Chartbook 373 "We create our own reality" - Trump's delirious negative-sum populism, or how the Empire comes home.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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