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 앵커, "강제 연행 항의했으나 48시간 구금당했다"

군 헌병대, 5일 취재 중이던 '참세상' 기자 48시간 동안 구금

4일과 5일, 평택 대추리에서 군인과 경찰의 폭력은 막무가내였다. 취재를 하고 있었던 기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5일, 군인과 민간인의 충돌을 취재 중이었던 ‘참세상’의 홍석만 외 2명의 기자 역시 군인에게 연행되어 48시간 동안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홍석만 외 2명의 기자는 취재 중임을 군인에게 끊임없이 알렸으나 군은 “누구의 승인을 받았는가”라며 강제로 연행하기에 이른다. 홍석만 외 2명의 기자는 강제 연행 된지 48시간 만인 7일 5시 30분 경 석방되었다. 이 날 연행된 기자는 ‘참세상’ 뿐 아니라 전북지역 대안언론인 ‘참소리’ 김반지 기자도 있었다.

이들의 연행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참세상’과 ‘참소리’는 성명을 내고 “군이 어떤 권한으로 시민을 잡아가고,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를 막무가내로 연행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2006년 5월의 한국군은 80년 광주의 진압군과 무엇이 다른가. 신원을 밝힌 기자를 불법 연행, 구금하는 것은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니던가”라고 강력히 규탄한 바 있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도 성명을 내고 “군과 경찰의 인터넷 기자 강제 연행은 평택 주민 등에게 가해진 군과 경찰의 폭력성을 집중 보도해 온 인터넷 언론과 기자들에 대한 보복에 다름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경찰청 수뇌부가 부상 중인 전의경에게 진보적 인터넷언론의 기사 댓글에 대응하라고 지시했음이 밝혀진 사실만 봐도, 지금 정부와 군, 경이 얼마나 이성을 잃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폭력적 기자 연행을 비판하기도 했다.

강제 연행과 석방까지의 폭력적 상황에 대해 홍석만 기자에게 들었다. - 편집자 주



연행될 당시 6시 40분 경 나와 다른 기자 두 명은 대추리 철조망 내에서 현장 상황을 취재 중이었다. 이미 시위대는 빠져 나갔고 몇몇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 구금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고, 군인들과 개별 인터뷰가 가능할까 싶어서 그곳에 계속 머물면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50미터 앞에 카메라를 들고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5명의 군인들이 달려들더니 양팔을 붙들고 끌고 가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바로 뒤에서 9명 정도의 헌병들이 곤봉을 들고 우리에게로 달려 왔다. 다짜고짜 신분을 확인해야겠으니 함께 가자고 하면서 우리를 빙 둘러쌌다. 당시 기자증을 소지하고 있었던 사람이 1명 이었고 나와 다른 기자는 기자증을 다른 곳에 두고 왔다. 대신 명함과 신분증을 꺼내들고 기자임을 밝혔다. 당시 우리는 카메라 가방과 노트북 가방 그리고 카메라를 목에 메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봐도 기자로 보였기 때문에 처음에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거듭해서 기자이며 취재 중임을 밝혔다.


헌병들은 기자라도 여기 들어 올 수는 없다, 누구의 승인을 받았는가, 당신들은 불법적으로 영내를 침입했다고 하면서 연행을 시도했다. 우리는 이번 취재에 대한 군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들은 적이 없고, 아까 영내로 들어오면서 현장 지휘관에게 취재를 하겠다고 밝혔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시 기자증이 없으니 신분확인을 해야 한다고 강제연행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그렇게 5분정도 군 헌병들에 둘러싸여 승강이를 벌이다가 무전으로 어딘가와 대화를 하더니 빨리 나가라고 하면서 물러났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의 취재가 힘들다고 보고 바깥쪽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 옮겼는데 그 헌병들이 다시 뛰어 왔다. 아까보다 더 위압적인 방식으로 에워싸면서 상부에서 다시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무조건 가자고 했다.

그렇게 30여분을 어딘가로 계속 끌고 다니면서 한 두 사람씩 연행된 사람들과 합류하기 시작했고 10여명의 연행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이들은 헌병들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쪼그려 앉은 자세로 줄맞춰 있었다. 그곳 지휘관에게 기자임을 다시 밝혔으나 이들은 아무런 대꾸없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며 우리를 압박했다.

연행된 사람들은 대부분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전투경찰도 아닌 군인들에게 강제구금 된데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무척 긴장해 있었다. 특히 어느 여학생은 여군이 양쪽에서 붙들고 있었는데 군인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두려움에 질려 온 몸을 떨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학생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로봇마냥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이 학생이 공포에 질려 떨고 있지 않느냐, 진정을 시켜야지 이런 식으로 강제 구금을 계속하면 어쩔거냐고 항의를 했다. 그러나 헌병들은 대꾸하지 마라, 가만있으라고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면서 항의를 일방적으로 무시했고 그 학생은 계속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경찰들이 왔고 헌병에서 경찰로 인계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기자임을 밝혔고 신분을 증명하겠다고 말했으나 경찰 지휘관 역시 이를 무시하고 계속 강제 연행상태가 지속되었다.


  민간인들의 뒤를 쫓는 군인들

그 곳에서 경찰들은 무려 두 시간동안 대추리 철조망 내를 우왕좌왕하면서 우리를 끌고 다녔다. 당연히 저녁도 못 먹었고 화장실 갈 엄두는커녕 앉아서 쉴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강제로 연행되어 밤 11시 30분경 화성경찰서로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기자 신분임을 이야기했음에도 구금상태가 지속되었다. 우리는 기자로서 취재중에 부당하게 연행되었음을 주장했고 피의자 신분으로 조서를 작성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편집국장이 경찰서로 와서 신분을 입증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하면 풀어주겠다고 했다. 새벽 1시경 편집국장이 도착했지만 면회조차 거부되었다. 갑자기 지침이 변경되었다고 하면서 우리에게서 조서를 받기 시작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였고 그 상태에서 유치장에 48시간 동안 구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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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연행 , 홍석만 , 대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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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한겨레 기자도 얻어터졌다는데 인터넷기자들이야 오죽했겠수...
    어쨌든 고생하셨네

  • 파르티잔

    욕보셨습니다. 우린 그날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다들 일어나서 싸워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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