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노동 철폐운동, 대선투쟁과 만나야

[정치대회](3) 관람정치·대리정치가 아닌 삶의 구성

[편집자 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주체들의 목소리로 운동의 과제를 밝히는 정치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정치대회는 활동가대회(9월 14일)와 문화제(9월 15일)로 진행된다. 활동가대회에서는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의 주체형성에 대한 세부 주제를 제출하고 그에 대한 조직위원회 및 투쟁 주체들의 발언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정치대회 조직위원회는 세 번의 기고를 통해 활동가대회에서 논의될 각 주제의 기조연설문을 제출한다.


삶의 양식 변화를 위해 불안정노동이 정치운동과 만나야

지금 ‘정치’라는 것은 수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 노동자 계급 정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노동자 정당을 만들고 노동자 국회의원을 제도 정치권으로 보내는 것이 노동자 정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야기한 왜곡은 적지 않았다. 노동자의 요구가 제도 정치권 내에서 왜곡되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정치’ 자체가 협소해졌다. 그러나 정치는 삶의 문제이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의 문제다. 권력과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조응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가 아닌 ‘지배’일 뿐이다. 지금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넘어 이후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우리의 상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를 변혁하는 노동자 정치의 첫걸음이다.

불안정노동은 삶 전반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저임금은 생존 때문에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장시간 노동으로 삶의 풍성함은 파괴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노동자들은 피폐해진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권리를 박탈하는 불안정노동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삶을 제시하고 그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것은 때로는 제도개선 요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노동법 개정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삶의 양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우리의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노동자들의 정치 주체화가 중요한 것이다. 불안정노동자정치대회에서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이 왜 정치운동과 만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리주의를 넘어 정치적 주체로 서야

정권과 자본은 성장과 질서라는 말로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사회적 권리의 배제는 노동현장 뿐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수직적 위계화를 통한 포섭정치로, 배제되지 않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게 하고 자발적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위기를 전가하고 있다.

한편, 진보정치의 현실은 위기를 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를 넘어설 새로운 대안은 아직 모색중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 평가가 없는 2012년 총대선에서의 ‘진보대통합’ 계획은 양당의 갈등만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반MB 야권연대’ 선거방침은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진당 출범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통진당 내부의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체가 전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소위 혁신파 역시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으며, 새롭게 혁신하는 진보정당이라는 수사를 아무리 붙여도 통진당이 총선용 프로젝트 정당이었듯이 혁신파가 분당해서 창당하는 정당은 대선용 프로젝트 정당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출처: 자료사진]

이제, 1997년 이후 2012년까지 진행된 대중적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치운동이 근원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시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을 위한 운동전략을 방기한 진보정당운동은 노동중심성을 상실한 채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세액공제, 득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노동을 들러리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유력정치인이나 의회활동으로만 국한시키면서 무원칙한 야권연대로까지 나아가는 빌미를 주었으며, 진보정치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모든 역사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가 체제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을 차단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법제도의 틀 안에서 정치적 소외구조를 재생산할 뿐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애초에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는 착한 자본주의로 고쳐보자는 것이 아니었으며, 위기라는 레토릭의 반복은 자유민주주의를 재구성하자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불안정노동철폐 투쟁 역시 운동하는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는 누군가가 대리해야 하는 것, 정당정치를 통해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투쟁이 곧 정치”라는 자기위안이 현장투쟁을 어떻게 보편적 의제와 정치적 요구로 만들어 내고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할 것인가로 확장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 노동자들을 대상화해 왔던 정치권에게 노동자 정치라는 것은 불안정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

좌파정치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된 이들 스스로가 주장하고, 이 주장이 정치적 힘을 가지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치세력화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불안정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기대거나 혹은 정규직에게 기대거나, 혹은 상급단체의 힘에 기대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삶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힘을 합하고, 바로 그 힘을 통해서만 세상이 변화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이 변한다는 사실을 더 많은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알림을 통해서 큰 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조정하는 것에 맞서 싸우자

불안정노동자들은 지배적 질서 속에서 삭제되었던 말과 행동을 통해, 기존 질서에 대항해 싸우는 것을 통해 비로소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다. 노동하는 사람의 절반이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로 이루어진 현재, 자본이 강요하는 수직적 위계를 뭉뚱그린 채 노동중심을 말하는 정치는 현실에 눈감는 것일 뿐이다. 이는 정치를 체제 안에서 경제적 이해의 실현을 도모하는 분업화된 대리정치로 전락시키는 것과 곧바로 이어진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지금 사회에서 이것이 보편적인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이자 욕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의 사회에서 우리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이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다. 고용불안으로 인해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지 못하고, 경쟁 속에서 시달리는 지금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지배질서는 이러한 불안정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삭제한다. 사회 전체를 뒤바꾸지 않는 이상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급진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불안정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순치시키고,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정치는 지금이 얼마나 왜곡된 사회인지를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더 이상의 경쟁을 거부하고, 위계질서 속에 낮은 위계에 위치하기를 거부하고 삶의 불안정성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내모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미래를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과정이 바로 기존의 질서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분리를 뛰어넘어 일상에서 만나는 정치와 투쟁

지금껏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과 정치를 의도적으로 분리해 왔다. 현안 해결을 위한 투쟁의 집중은 투쟁의 수위를 정치적 파고를 만드는 것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방해했고, 내부의 노선 논쟁에 대한 회피는 비정규직 영역을 노동자 정치의 영역이 아닌 노사정합의의 영역 혹은 시민의 영역으로 내몰아 오기도 했다. 그리고 삶의 권리에 대하여 제기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정치와 투쟁을 분리하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고, 투쟁은 투쟁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분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정치는 그들의 몫이 아니라 투쟁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의지를 드러내고 정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 시작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왜곡되고 협소화된 ‘정치’의 개념에 갇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의 주체임을, 나의 삶과 노동에 대하여 스스로가 주체임을 선언해야 한다. 불안정 노동의 철폐를 위한 투쟁의 주체로서 자신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현재의 투쟁을 최대한 삶의 영역으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우선, 의제의 보편화를 넘어서는 급진화가 필요하다.

사내하청 문제가 중요하니 이것을 전체 사내하청의 문제로 확대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만든 정몽구를, 정권을 끌어 내리는 운동으로 모아가야 한다. 정리해고자들이 복직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의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것을 ‘경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면서도 온전히 책임은 노동자들에게만 떠넘기는 지금의 구조를 넘어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 투쟁하는 이들이 직접 정치적 요구를 시작해야 한다.

단위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정치적 요구로 확장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 문제가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본주의에 대한 제기로 나아가는 급진적 의제화가 필요하다. 실현가능성을 가늠하고 타협을 한 치라도 허용하는 순간 자본과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굴절되고 결국 투쟁하는 이들에게 부메랑으로 직격타를 가하는 경험을 우리는 수없이 반복해 왔다.

또한, 일상에서 정치와 투쟁이 만나는 실험과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현장과 지역이 만나는 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노동, 임금이 최저임금이 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구조, 사용자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간접고용의 상황 등은 노동권 뿐 아니라 교육이나 보육, 문화 등 다른 권리조차도 소비를 넘어서서 공적인 권리로 쟁취되어야 한다. 그 지역 안에서 살아가고 투쟁하는 모든 이들의 권리를 함께 쟁취해가는 과정을 통해 보편적인 권리의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지역 권력에 개입하는 경험을 쌓는 것, 지역공동체로부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통의 경험을 쌓는 것을 통해 정치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체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부터 삶과 정치가 부딪치는 매개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정치를 실현하는 사례를 만들고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뿌리 깊은 정치와 투쟁의 분리 이데올로기는 극복될 것이다. 민중의 집이나 지역노동복지센터 혹은 지역비정규센터 등 거점을 형성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이 제한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노동자를 시혜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전시성 사업이 아닌 지역 노동정치에 개입하고 다양한 보편적 권리의제와 흩어져 있는 불안정노동자들을 모이게 하는 거점으로 역할을 하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안정노동자

불안정노동철폐는 단지 우리의 고용형태가 정규직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정규직들이 고용불안에 고통당하고 위계와 경쟁 속에서 피폐해지고 있다. 이런 삶을 지속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자본은 불안정한 노동을 만들지 않고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상태이다. 불안정노동은 망해가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발악에 불과하다. 노동하는 이들을 내몰고 심하게 착취함으로써만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우리의 삶과 노동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만들자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불안정노동자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이 정치운동과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정치운동이란 우리는 표를 찍고, 누군가가 우리를 대리해주는 것이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투쟁이 확장됨으로써 스스로 그렇게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의 노력과 투쟁하는 현장에서의 노력이 하나로 만나, 진정한 정치를 실천하는 투쟁이 실현되도록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대리주의를 넘어, 정치와 투쟁의 분리를 넘어, 기존의 사회질서를 넘어 우리의 목소리가 발현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2012년 9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의 시기이다.
박근혜조차 경제민주화나 비정규노동의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현재, 투쟁하는 현장 속에서부터 정치는 시작되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그럴듯한 수사가 허구일 수밖에 없음을 삶의 나락에서 삶을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나서서 밝혀내고, 다른 세상이 가능함을 알려내도록 해야 한다.

안철수의 멘토정치와 착한 자본가의 얼굴은 끝없이 관람정치를 양산할 뿐이며, 현 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불안정 노동자들이 이제 더 이상 정치소비자가 아닌 정치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모아야 한다. 결국 자유주의자들과의 동거를 꿈꾸며 노동을 도구화하는 정치를 넘어, 보편화된 문제를 급진적 의제로 주장하고 현 체제의 유지는 답이 아님을 나서서 알려야 할 시점이다. 땜빵식 느림보 법제도 개선으로 정치를 위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모아 불안정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의 분리를 극복하는 첫출발로서의 2012 대선투쟁을 이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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