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종북인가?

[기획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2)

[편집자주] 프로젝트 <그날들>은 60여 개 단체들이 참여하여 2013년 기억해야 할 인권의 날들을 모은 프로젝트입니다. 모두 89개의 날들이 모여 소책자와 인터넷 타임라인(hrnet.jinbo.net/thedays2013)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민중언론 <참세상>과 함께 기획하는 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는 위와 같이 모인 인권의 날들에서 출발합니다. 흩어진 날들에 대한 기억을 넘어 2013년 인권 현실을 되돌아보며 주목해야 할 흐름을 5회에 걸쳐 짚어보고자 합니다.

[출처: http://slownews.kr/16130]
얼마 전 "종북 셀프 테스트"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http://slownews.kr/16130). 이런 식이다. 통합진보당 당원인가? 그러면 당신은 종북! 대북한 햇볕정책을 지지하는가? 종북! 대북 정책의 한쪽에 대하여 "북한을 추종한다"며 비난하는 딱지가 종북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 종북 딱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버스를 탄 적이 있는가? 역시 종북! 제주 강정 해군기지에 반대하는가? 종북! 밀양 송전탑에 반대하는가? 종북! 촛불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는가? 종북! 시국선언에 참가하거나 이를 지지한 적이 있는가? 종북! 학생인권조례는 필요한가? 종북!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가? 종북! 전교조를 지지하는가? 종북!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가? 종북! 믿기 어렵겠지만 이 모든 종북 딱지가 실제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슬로뉴스 측은 밝혔다.

'종북'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과거 기사를 검색해보니 2004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일보 논설에서 실용노선을 주장하며 "민족 대(對) 반민족, 진보 대 보수 같은 구시대적 이분법으로 나라를 종북반미(從北反美)로 뒤흔드는 위험한 기류를 차단하는 게 실용일 것이다."라고 쓴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2007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친미도 하고 친북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데 대해 한나라당이 "친북이 아니라 종북(從北)"이라고 본격적으로 비판한다. 민주노동당내 노선 논쟁에서 이 단어가 등장했고, 곧 여당과 일부 언론이 민주노동당 뿐 아니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을 싸잡아 '종북'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2010년에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야당 지지자들에게 "북한이 좋으면 북한에 가서 살라"고 비난하여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북한 노선을 추종한다는 비난을 담은 '종북'이라는 단어가 북한과 무관한 용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출처는 공안당국발이다. 2009년 해킹사태에서 국정원이 사이버테러의 배후로 "北 또는 北 추종세력"을 지목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정부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 이들 역시 '종북'이라 불렸다. 광우병 보도로 PD수첩을 체포했을 때 검사가 MBC PD 들에게 '반미 종북주의'가 아니냐고 물었다. 2011년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종북좌파세력과 전쟁"을 선포하여 백미를 찍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오늘의 유머>에서 활동한 국정원 요원은 '종북', '좌좀', '좌빨'과 같은 노골적인 언사로 "북괴 = 박정희 반대 = 미군 철수 = 제주해군기지 반대 = 조중동 반대 = FTA 반대"로 등치하는 글을 직접 작성하였다. 그리고 올해에는 소위 내란음모 사건으로 광풍에 가까운 '종북' 낙인이 횡행하였다.

2013년을 마치며 인권단체들은 우리 사회 '종북' 논란을 기억하고자 한다. 정권에 맞서 함께 싸우고 함께 사는 삶을 꾀하는 이들에게 '종북'의 딱지가 날아들고 있다. 공포와 혐오를 동원하는 '종북'의 정치는 보수집권세력의 '반북의 무정치'에 다름 아니다. 빈곤이 사람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사람답게 먹고살 권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때, 응답할 것이 없는 자들의 무능력함은 '종북'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나고 있다. 밀양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할 때에도, 교사와 공무원이 스스로 모여서 함께 싸우고자 할 때에도, 보수세력은 지킬 것이 '반북' 밖에 없는 것처럼 저항세력에 '종북'의 딱지를 붙이고 있다.

종북 담론이 판을 칠 때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그 낙인으로 잘못될까 싶다. 그래서 행동을, 목소리 톤을, 때로는 생각을 고른다. 어쩌면 공안당국발 종북 논란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이것일 것이다.

종북 논란은 계속될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매카시즘도 1950년에 시작되어 1954년부터 잦아들었다. 반이성, 반정치의 광풍은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가 올 때까지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다. 매카시즘의 피해자 수는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지만 수백 명이 수감되었으며 1만 명에서 1만 2천 명이 그들의 직업을 잃어야 했다고 한다. 공무원, 문화예술계, 교육계에서 소위 공산주의자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으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가들로 기록되고 있다.

'종북'의 낙인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혐오 정서의 일부이자 그 시작이기도 하다. 매카시즘은 이념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해 성적 지향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때처럼 '종북 검사'와 '종북 게이'라는 말이 함께 사용되고 있는 곳이 2013년의 대한민국이다.

종북 논란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 언젠가 끝날 것이지만 저절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종북은 사람들을 분류하기 위한 잣대이다. 여기에는 분리와 낙인을 먹이로 삼아 덩치를 불리는 정치가 있다. 이 괴물은 움직이지 않는 이들을 먼저 겨냥할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멈추지 말자. 비판하기를 멈추지 말자. 저항하기를 멈추지 말자. 위축시키려는 시도에 굴하지 않는 이들만이 이 광풍을 멈출 수 있다.

<연재순서>

- 박근혜 정부 1년, 한국사회의 인권현실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 ‘종북’, 공안기구가 만들어낸 억압과 자유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 차별과 혐오에 맞서 평등을 예감하라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 대자본의 권력 아래 짓밟히는 노동의 권리 :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 연대, 오래된 말 속에 담긴 새로운 기운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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