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 운영진 - 왼쪽부터 또또, 같이가면, 여왕님, 동대문그여자 |
최미라: ‘덤’이라는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떤 뜻이 담겨있나요?
또또: ‘덤’에는 큰 덩어리의 바위라는 뜻도 있고, 시장에서 덤으로 준다는 뜻도 있어요. 우리 인생에서 창신동라디오가 덤이 된다는 뜻으로 ‘덤’으로 지었습니다.
최미라: ‘덤’이 설립된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같이가면: 작년(2012년) 12월에 라디오방송국을 만들자는 결의가 됐어요. 올해 1월 13일에 방송국 이름을 지었고, 실제 방송은 1월 29일부터 시작했습니다. 3개월 정도 된 거죠.
동대문그여자: 여담으로 조금 말씀드리면, 저희는 장비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전에 ‘방송국 할까?’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장비부터 사버렸어요. 필요한 돈은 여기저기서 모금도 했고요. 그렇게 장비를 먼저 사고 나서 안병천 관악FM 대표님께서 설명해주려 오셨을 때, 처음 다루는 법을 배웠어요. 창신동 여자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웃음) 그렇게 라디오를 어떻게 만들게 됐는데 3개월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최미라: 어떻게 ‘덤’을 운영할 기금을 마련하셨는지요?
또또: 자연스럽게 됐어요. 작년에 했던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라디오교육 발표회 때 모금도 했고, 저희 회원들끼리도 했고. 여러 도와주신 분들이 있어서 기금이 모이게 되었어요.
최미라: 실례지만 회비는 얼마인가요?
또또: 회비가 얼마라고 딱히 정해진 것은 없어요. 자신의 마음이 허락한 만큼. 이게 더 강압인가?(웃음)
같이가면: 우리가 스튜디오 꾸민 다음엔, 공간에 필요한 것들은 각자 알아서 준비했어요. 동대문그여자님은 커튼을 만들어 오시고, 또또는 컵이랑 책상을 가져왔어요. 처음에 저희가 밥상에 놓고 했거든요. 근데 불편하잖아요. 그랬더니 아들을 시켜서 들고 왔더라고요. (웃음) 그 외 필요한 음식이나 과자 이런 것들은 알아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준비 해오고 있습니다.
동대문그여자: 보름날에는 아주까리 쌈밥도 하고 깻잎 쌈밥도 했어요. 정성도 대단했고 너무 맛있었어요. 약식도 해서 가지고 왔는데 그 날 정말 대단한 음식을 먹어봤죠.
또또: 우린 너무 단합이 잘되는 것 같아요.
같이가면: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고 있습니다. (웃음)
동대문그여자: 그래야 우리가 덜 미안하지.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웃음)
▲ 서울 종로구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 지역의 한 교회 한 편에 공간을 마련했다. |
최미라: ‘덤’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면 무엇일까요?
동대문그여자: 네 여자죠. 진행자 4명. ‘덤’의 자랑거리는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로가 자기의 이야기를 분명히 잡고 만드는 것이랄까? 전 세계 유일의 봉제 미싱사 방송을 하고 있는데, 제가 그동안 해왔던 것, 그리고 가까운 사람의 일 등을 차근차근 꺼내보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또또: 거기에 더하자면, 저는 네 여자의 열정, 그리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도 자랑거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 진행하면서 느낀 건, 여전히 우리에게 있는 내용을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뚜렷한 방향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열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아요.
같이가면: 저도 열정을 먼저 떠올렸어요. 마음속에 누구나 반짝이는 꿈은 있지만, 그 불을 붙이는 게 열정인 것 같아요. 그 불을 붙이는 힘.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게 굉장히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최미라: 여기에서 네 여자는 여왕님을 포함하셔서인지요?
또또: 아 그럼요. 물론이죠. 여왕님은 지금 일이 있어서 못 오셨을 뿐이지 열정은 정말 대단하세요. (웃음)
최미라: 그렇다면 ‘덤’에서 각자 어떤 역할들을 하고 계신가요?
같이가면: 각자 프로그램을 하나씩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데, 기획, 대본 작성, 게스트 섭외, 녹음, 편집 그리고 배포하는 것까지 4명이 하고 있어요. 오퍼레이팅은 영상 제작 경험이 있는 제가 하고 있지만, 대부분 같이 해야 되는 일은 회의에서 얘기하고 역할도 때마다 달라져요.
최미라: 소규모라고는 하나 방송국을 만든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인데요. 만들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같이가면: 힘들었나?
또또: 힘들었지. (웃음)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에 홀렸던 것 같아요. 자기의 꿈을 펼친다? 감춰졌던 끼를 펼친다? 그런 것에 홀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들 자기가 하는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방송국을 하고 있는 건 홀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웃음)
같이가면: 저도 처음엔 제가 해야 하는 일과 책임감 때문에 무척 부담스럽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작년 12월에 열린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통합 발표회를 다녀오면서 그게 해소가 됐어요. 발표회 끝나고 ‘이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설레졌고, 그 설렘이 변화의 계기가 됐어요. 방송국을 통해 제가 꿈꿨던 걸 녹여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생각이 들었죠. 방송국과 꿈이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낸 거죠.
최미라: 지난해 진행된 서울시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이 ‘덤’의 시작이었는데요. 직접 라디오 교육을 운영해 보셨던 분으로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같이가면: 예전부터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과 재미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거창한 꿈도 그려 봤었죠. 그런데 그 소박한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우리마을 미디어문화교실’이 계기가 돼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을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꿈 꾼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들을 달게 맛있게 섭취를 해서 사람들과 잘 활동한 것 같아요. 아름다운 기억이었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우리 꿈을 펼칠 수 있는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또또: 어떤 사람이 말한 것을 응용하면,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운명이 된다고 하잖아요. 우리도 그런 상황 아닐까요? 우연이 필연이 되었으니까 이제 운명으로 가야지. (웃음)
최미라: 생업도 있으신데 방송국까지 겸하기 힘들지 않으셨나요?
같이가면: 저 진짜 힘들었어요. (엉엉) 작년엔 제가 태어나서 가장 빡세게 산 것 같아요. 일주일에 2~3번은 밤을 샜고 체력도 많이 꺾였어요. 그런데 억지로 하라 그랬으면 절대 못 했을 것 같아요. 직장은 밥 먹고 살아야 되니까 하는 거고. 굶을 순 없잖아요? 근데 사람이 밥만 먹고 사나요? 꿈도 먹고 살아야지. (웃음) 제게 두 가지 모두 삶의 간절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미라: 당시 교육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셨나요?
같이가면 : 여기는 봉제 공장이 많은 동네예요. 그리고 주민들이 집도 여기고 일터도 여기인 분들이 많으신데, 일 하시면서 라디오를 많이 들으세요. 그래서 애초에 구상할 때,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참여하시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기획했는데 실제로 오신 분들은 반반인 것 같아요. 다양한 분들이 오셨어요. 그 후에 지속적으로 활동하시는 분 중, 두 분이 봉제 일을 하시고 한 분은 여기에 오래 사셨던 분이세요. 봉제 일을 안 하시는 분이시죠.
최미라: 도발적인 질문일 수 있겠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지요?
같이가면: 너무 도발적이다! (웃음) 어떡하지 이걸?
또또: 우리를 제외하는 것으로 하고! (웃음)
같이가면: 몇 명이 생각나는데, 저는 제일 처음 전화 주셨던 분이 기억나요. 저랑 동갑이셨는데, 우리 동네는 큰 포스터를 붙일 곳이 없어요. 그래서 오징어다리로 홍보물을 붙였는데 그걸 보고 길 가다가 전화 주신 분이셨어요. 당시에 그 분 전화를 받고 감동해서 제가 울었어요.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알고 연락을 하는 구나.’하구요. 어쨌든 그 분은 자기가 생각했던 거랑 달라서 그 후로 계속 할 수는 없었지만, 저는 먼저 그 분이 기억에 남네요. 그 다음엔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함께 공감해주는 과정에서 치유와 교류가 이뤄졌다고 생각되는 ‘우리남순이’라는 별칭을 가지셨던 분도 기억이 나요. 그렇게 둘만 말할게요.
또또: 저는 영준씨. 정영준씨. 젊은 피고 첫 남자회원이었거든요. 대학생이었어요. 아줌마들이 모인 곳에 용기내서 나온 것도 대견하고 와서도 서글서글하니 잘 지냈어요. 간혹 어리니까 놀리기도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더라고요. 마인드가 너무 예뻤던 것 같아요.
같이가면: 작년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1기 때, 1회 정도 진행하고 난 다음에 젊은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왔었어요. 여자들만 받는다는데 자기가 가도 되냐는 거예요.(웃음)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자기는 대학생이고 편입해서 서울에 올라왔는데 원래 자기가 다녔던 대학에서 방송국 활동을 했었데요. 그리고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는 거예요. 지역에서 하는 활동들이요. 너무 생각이 예쁘잖아요. 일단 오시라고 해서 왔죠. 첫날 와서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같이 잘 어울렸어요. 또 영상에 능력이 있어서 그 친구가 저희 2기 모집 홍보 영상도 만들어줬어요. 그게 인연이 돼서 우리가 교육했던 청소년센터에서 자원 활동가로 활동하고 그랬죠.
▲ 2012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창신동 여인네 이야기’ 교육 현장을 담은 사진 |
같이가면: 저는 원래 영상을 했던 사람이라 처음에 영상도 상상해봤었어요. 또 원래 사진을 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거든요. 근데 마지막에 사진과 라디오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 동네 사람들한테 익숙한 매체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그게 라디오였어요. 처음엔 사람들에게 익숙한 매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라디오가 다른 매체보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 그리고 서사 구조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사진은 서사구조는 없잖아요. 자기 썰을 풀어내기 위해서 좋은 매체는 아닌 거죠. 우리의 썰을 풀어내기 위해서 영상이나 사진보다는 익숙하고 진입장벽이 낮은 라디오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동대문그여자: 라디오도 글쓰기, ‘문학’이라고 했다고 하면 담을 더 느꼈을지도 몰라요. 근데 라디오를 하면서 보니까 우리가 문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세상에! 글을 쓰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한 시간 분량이면 대본이 A4로 6~7장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실제 문학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곧 작가로 나가지 않을까? (웃음) 아마 문학이라고 했으면 안 왔을 거예요. 라디오라고 하니까 왔는데 지금은 하다보니까 문학이 별 거겠어? 라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같이가면: 지금 생각해봐도 라디오를 선택하기 너무 잘한 것 같아요. 저도 몰랐던 라디오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또또: 저는 라디오보다 영상을 즐겨 보던 사람인데 이거 하면서 라디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누가 지나가다가 라디오라는 소리만 해도 귀가 번쩍해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어요. 솔직히 저는 출퇴근에 잠깐 잠깐 듣는 게 전부였거든요. 지금은 완전히 매력에 빠졌어요.
동대문그여자: 저는 기존의 라디오 방송들을 더 유심히 듣게 됐어요. 처음에 오프닝 멘트를 어떻게 하고 끝날 땐 어떻게 하고 그런 걸 유심히 듣게 되더군요. 거기서 노래를 틀면서도 노래에 대한 설명과 작사, 작곡에 대한 설명을 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새삼 생각하고 있어요.
▲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으로 들어온 사연과 신청곡 |
최미라: ‘덤’에선 지금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동대문그여자: 저는 ‘쌩쌩 그러나 조금은 쉬기도 하는 시간’이라는 세계 유일의 봉제 미싱사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봉제 일을 하면서 남들에게 말 하지 못했던 숨겨놨던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프로그램이에요. 신청곡도 간간히 시간 내서 기쁜 마음으로 직접 다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 때 마다 기꺼이 응해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같이가면: 여기서 ‘쌩쌩’은 미싱 돌릴 때 나는 소리예요. 방송 들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듣는 걸 구상하신 것이고 여기에 실제로 봉제 일을 오래하셨기 때문에 발로 홍보를 많이 뛰세요. 또 인터넷으로 듣기 곤란한 곡은 CD로 구워서 바로 듣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일 조회 수가 높으세요. 제일 인기 있는 방송이에요. (웃음) 제가 진행하는 방송은 ‘예술은 아무나한다’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사람들 마음속에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욕구를 TV에서만 보지 말고 마음껏 펼쳐보자.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어제보다 나아지면 되는 거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부터 한걸음 내딛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악기 연주나 노래, 1인극, 소리로 전달될 수 있는 동네사람들의 예술 활동을 소개하는 방송입니다.
또또: 저는 ‘두 여자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같이 진행하시는 분은 미미님이라는 분이구요. 여자끼리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삶의 얘기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공감하는 얘기를 개그로 풀 수도 있고 옛 추억을 더듬을 수도 있는 수다방송을 하고 있어요. 제 방송을 듣는 분들은 팟캐스트로 듣는 분들이 많아서 젊은 층이 많으세요.
같이가면: 지금 이 자리에 못 오신 여왕님 대신 설명 드리면 그 분은 글 쓰는 것에 대한 꿈이 있으셨어요. 근데 그것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라디오로 하고 계세요. 자기가 생활에서 느낀 걸 소재로 삼아서 자신이 글을 쓰고 하나는 수필로, 하나는 꽁트로 발표하세요. 또 동네 사람들의 글을 모아서 읽어주고 소개하는 것도 하고요. 글과 관련된 방송이에요.
동대문그여자: 프로그램들은 매주 화요일에 로테이션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고요. 아직 이 동네에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으셔서 인터넷 활용이 활발하지 않아요. 그래서 고정 청취자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잖아요? (웃음) 진행자들이 더 기운을 내서 하면 청취자도 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의 첫 녹음 대본 |
최미라: 선생님들께서 생각하시는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같이가면: ‘마을을 만든다.’라는 표현은 약간의 거부감이 있고요. 마을에서 건강하게 잘 산다?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살면 주변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게 섞이면서 재밌는 일이 발생하고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 같거든요. 일단은 건강하게 내가 주변사람들과 재밌게 사는 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최미라: 지난 활동경험들을 바탕으로 보셨을 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마을 미디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같이가면: 저는 예를 들면 이래요. 사람들이 ‘누가 자식 중에 생일이다. 그럼 생일 축하하러 라디오방송국에서 노래 한 번 부르고 올까?’ 라는 거예요. 그건 마을 사람들에게 축하해 달라는 거잖아요. 마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서 그 날의 추억을 남기듯이, 녹음 파일로 그 생일에 대한 추억을 남기는 거죠. 함께 노래 부르고 즐겼던 것을. 저는 그렇게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멍석으로서의 라디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미라: 앞으로 마을 미디어를 준비하시는 분들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으신가요?
같이가면: 많이 생각하면 좀 어렵구요. 눈앞에 보이는 지금 보이는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주변 사람들과 즐긴다고 생각하시면 힘이 나요. 그리고 흥이 나잖아요. 그러다보면 반걸음 걷게 되고 또 다음 반걸음을 걸을 수 있는 시야가 열리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너무 크고 힘든 거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즐기시는 것. 저는 그렇게 힘을 얻었습니다. □
▲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 방송 현장 |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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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첫 발을 뗀 [ACT!]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로 국내외 미디어운동 관련 이슈를 기획, 발굴하고 있습니다. http://actmediact.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