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말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연초부터 세계 여러 곳에서 우먼 파워가 거세게 몰아칠 기세다. 20세기에 시작된 여권운동 이 이제 그 결실을 보아가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남성본위의 유교 문화를 배경으로 과거 깊이 뿌리박혀 있던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지독한 비하와 차별이 큰 변혁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은 인권기준에서 보면 아직도 부 끄러운 수준이다. 군현역복무자 가산점제 폐지를 군경력 보상의 차원으로 이해하지 않고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왜 모범 적 산업화를 이룬 우리가 여성의 정·관계 진출은 후진국보다도 저조할 수 밖에 없는지를 일깨워준다.
국민의 정부도 출범시부터 남녀차별 개선을 누차 강조했지만, 2년이 지나 도록 크게 실감나는 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개선을 요구하는 여성계의 논리가 설득력이 부족하거나 추진력이 미진한 탓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쉽게 불식되지 않는 여성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인식구조 때 문이다. 뿌리 깊은 인식과 관행이 하루아침에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 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의지와 합의가 있고, 방법을 강구한다면 빨리 고 치지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선 잘못된 관행을 뒷받침하고 있는 법령을 개정해서 의식구 조의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법제정역사를 돌이켜보면, 1950년대, 1960년대 초반까지 근대화과정에서 수회의 정비과정을 거치는 동안 남녀차 별법령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왔다. 예컨대, 형법상 간통죄의 쌍방처벌, 근로기준법상 남녀차별대우 금지, 민법상 여자분가인정, 아내무능력제도 폐 지, 부부별산제 채택, 부모공동친권 인정 등등이다. 1970년대의 산업화·도 시화 과정에서도 여성의 사회참여, 여성인력의 필요성 증대로 성차별금지와 남녀의 실질적 평등 실현을 위한 괄목할 만한 노력이 있었다.
**가족-복지-보험법 구태의연**
그러나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법체계여서 법령의 정비는 ‘산너머 산’인 것 같다. 총 3500여개의 현행법령 가운데 아직까지도 구태의연한 남녀차별 소지를 안고 있는 법령들이 가족제도, 고용, 사회복지, 보험 등 광범한 분 야에 걸쳐 산재해 있다.
국가유공자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유족의 범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의 신체장해등급표, 국회공무원임용시험규 정의 응시연령, 국회공무원복제규정의 제복의 지급대상 및 제복의 종류 등 에서 알게 모르게 여성에게 불리한 조항이 많다. 이외에도 채용·임용·인 사기록 등의 병역기재란이나 범죄피해자구조법시행령 등에서 불필요하게 성 별을 기입, 구분하게 하는 것 역시 차별의 소지를 가진 규정들이다.
물론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볼 수 있는 규정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에 개정된 국민연금법에서는 배우자로서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남녀동일하게 규정하지 않고, 처의 경우는 무조건이지만 남편의 경 우에는 60세 이상이거나 장애등급이 2급 이상에 해당하는 자에 한하게 하여 상대적으로 남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 소득세법시행령의 1가구 1주택 특례조항, 지방공무원보수규정의 부양가족의 범위에 관한 조항에서도 기준 이 되는 연령을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불리하다. 생계유지의무는 으레 남성 에게 있다고 보거나, 여성의 생활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사고를 전제로 하여 여성에게 특혜를 준 결과다.
아울러 정부는 남녀불평등 해소차원에서 평등을 향한 정책적 고려를 더욱 확실히 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공평한 기회 보장과 적극 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다른 선진국들의 예와 같은, 여성을 위한 특별한 지원정책은 지금부터 시행한다고 해도 현재의 불평등이 해소되는 데는 상당 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실효성 있는 여성할당제를**
모 의과대학의 여성합격자가 반수를 넘었다고 하고, 남성전유물이던 대학 총학생회장에도 여학생의 진출이 뚜렷해지고 있다. 남녀를 차별하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의 해악이요, 손실이다. 우리 사회의 나쁜 유산을 빨리 청산 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민주·인권의 개념을 완벽하게 정착 시키는 지름길이다. 이제 바야흐로 정치계절이다. 마침내 비례대표의 30%이 상 여성할당제도 법제화되었다. 그러나 지역구 공천과정을 보면 이번에도 여성에 대한 정치권의 의식과 관행이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도 실질적인 당선과는 거리가 먼 형식적이고 말뿐인 공약(空約) 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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