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등에 대한 집단학살의 존재사실을 추정케 하는 서류가 처음으로 부산에서 발견됐다.
4.19혁명 직후에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희생된 부친 등 피학살자들의 유골을 발굴해 분묘를 만들고 위령제를 지냈다가 군사혁명정부에 의해 구속기소돼 옥살이를 했던 김영욱(金榮郁.78.부산시 금정구 구서동)씨는 당시 혁명검찰부의 공소장 원본을 20일 공개했다.
당시 혁명검찰부는 61년 12월 작성된 15쪽 분량의 공소장에서 “6.25동란 때 남로당원이나 보도연맹원 등은 괴뢰군에 대한 정보제공 등의 이적행위와 자유인사에대한 학살, 전쟁물자 약탈 등을 저질러 우리 군경이 이에 응전한 결과 군경과 더불어 좌익분자 일부가 희생됐다”고 기록했다.
또 김씨의 공소내용에서도 “피고인이 1960년 5월 31일 좌익사망자 유족 7백여명을 모아 금창지구 장의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직을 맡아 그해 6월 중순 김해군 장유면 냉정리 뒷산 등에서 좌익분자들의 유골을 모두 발굴해 설창고개에 합장한 뒤다음해 4월 5일 유족 등 2백여명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지냈다”고 돼있다.
김씨는 “당시 희생된 사람들은 경남 김해군 생림.진례.이북면과 진영읍지역 사람들로 냉정고개 인근 야산에 2백여구 등 3곳에 집단으로 매장돼 있었으며 한결같이머리 등에 총상 흔적이 있었다”고 유골 발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혁명검찰부는 김씨가 “좌익분자를 마치 애국자인양 위장선전하는 등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했다”고 기소, 김씨는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위반죄로 2년7개월을 복역했다.
그러나 김씨는 “부친이 일제시대 운수업을 하며 독립군에 자금을 댄 애국인사로해방후에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보도연맹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주변의 모함으로보도연맹원으로 몰려 학살됐다”며 “당시 피학살자 대부분이 좌익과는 관련이 없는양민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당시 혁명군사정부가 희생자들의 합동분묘의 봉분을 없애버리고 분묘조성과 위령제 장면 등을 담은 사진, 유가족들의 인적사항이 적인 관련 서류 등을모두 압수해가는 등 사건을 은폐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그동안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이같은 사실을 가족들에게 조차 알리지않아오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전향 장기수의 북한 송환이 결정되는 것을 보고이제는 진실을 밝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 다른 유족들과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합동분묘를 조성했던 자리를 찾아내 유골을 발굴하는 한편 정부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조처를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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