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과 관련 거제지역에서 학살된 양민의 수가 7백30명이며, 보도연맹 가입자가 1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경남근현대사연구회(회장 박영주)는 “거제·통영지역의 보도연맹가입자는 2천명 정도이며, 희생자는 1,430명인데, 거제지역만 730명 정도”라고 주장했다.
당시 민간 토벌대원인 김병원(당시 하청민보단장)씨는”거제지역 보도연맹 가입자가 1천여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또, 김재수 당시 통영군 인민위원회 조직부장(사망)은 “그때 통영경찰서 사찰주임은 통영과 거제도를 포함하여 보도연맹원이 2천명을 넘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학살에 직접 관련한 호림·백호부대(비정규군대), 해군 정보대, 육군 헌병대, 특무대 파견대 등은 거제에 상주하여 주민의 동향을 파악하는 동시에 보도연맹원들의 행동을 감시했다.
또, 당시 상황을 말하는 유기봉(거제시 구조라리)씨는『우리(CIC방첩대)는 거제도의 전 선박을 통제·압수했다. 거제도로 건너오려는 주민들이 바다로 빠져 죽거나 총살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라고 술회했다. 그는『그 당시 거제도 주민 100%가 빨갱이었다. 또한 군경합동으로 관련자(보도연맹원)들을 취조하고 수사했는데, 그 숫자가 엄청났다』라고 말했다.
희생자들은 49년 4월∼50년 5월까지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하거나 돌이 매달린 채로 인근 바다인 장승포, 구조라, 둔덕면 방하리, 지심도, 칠천도 부근 바다에 수장됐다. 1차 1949년 4∼12월까지 약230명이 총에 의하여 집단학살되었으며, 2차로 1950년 5월 이후 토벌대에 끌려가 수장된 거제도민이 5백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지어 거제와 인근한 통영시의 경우는 한산도·욕지도 부근 바다에, 남해는 미조면 앞 바다에, 사천, 고성 등지에도 바다에 수장시키는 학살극을 자행됐다.
당시 보도연맹원들을 수장시키는데 이용된 해녀호(약 30톤 급)의 기관장이었던 김순도(67, 거제시)씨는『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엄군들에게 선박들이 징발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한편 거제시 사암연합회와 거제사림, 거제박물관 총동창회는 오는 10월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보도연맹 희생자 및 전쟁피해 희생자 양민들을 위한 진혼제, 위령제등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
(오마이뉴스/전갑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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