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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진짜 문제는 1980년대 이후 영국과 서구 세계 상당 부분을 지배해온 특정한 형태의 자본주의에 있는 것인가?

나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후의 자본주의는 강력한 정부, 조직된 노동, 공공서비스, 규제와 나란히 존재했다. 당시에는 제도들이 경제권력이 자본 소유자의 손에 완전히 집중되지 않도록 제약했다.

신자유주의가 이를 바꿨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시대 이후 정부는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조합 약화, 금융화, 그리고 시장이 우리 삶의 점점 더 많은 영역을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밀어붙였다. 특히 정부 자체를 약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추진했다.

그 결과 경제는 사람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 공공 인프라를 만드는 대신 돈으로 돈을 버는 데 갈수록 더 집중하게 됐다.

그 결과 집 한 채를 더 짓지 않고도 집값은 치솟을 수 있다. 민영화한 공공서비스 기업은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고도 부를 빼낼 수 있다. 금융자산은 늘어나는데 실질적인 번영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그 결과는 불평등, 실물경제의 실패, 공공서비스의 붕괴, 금융 불안정, 정치적 분노의 확산이다.

신자유주의는 정부를 약화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자본주의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가 정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건을 파괴한 것인가?

자본주의가 실패했는가?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이 너무 단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를 두고 질문하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한 번도 고립된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으며, 여러 형태가 존재해왔다. 내가 성장하던 시기부터 대략 1980년까지 존재했던 자본주의는 정부와 조직된 노동이 자본주의와 함께 존재하는 형태였다. 그런 형태에서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살아남았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실패했는가?” 바로 이 질문을 다뤄야 한다.

분명히 해두자.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에 기초한 경제 운영체제다. 토지와 생산자산의 대부분을 민간이 소유한다. 생산은 대체로 이윤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임금노동자를 고용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이 체제에서 시장은 많은 가격을 결정하고 많은 자원을 배분한다. 그리고 그 결과 문제가 생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낸다. 부를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으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의무도 없다. 자본주의가 소유를 통해 경제권력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윤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시 투자해 추가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부는 더 많은 부를 얻을 기회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할 수 있다. 자본의 소유와 통제는 결국 상당한 경제권력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가 정부와 공존하고 협력하면서 조직된 노동을 포함한 다른 주체들의 존재할 권리를 존중했을 때는 민주주의 안에서도 이런 체제를 감내할 수 있었다. 그 경우 공공기관이 시장의 작동 방식을 형성했고, 조직된 노동은 모두에게 생산적인 방식으로 자본의 권력을 제약했다. 동시에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조직도 계속 번성했다. 이런 형태의 자본주의는 사회와 협력하고 변화하면서 살아남을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자본주의는 사라졌다. 1980년대 초부터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영원히 바꿨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했고,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에 도입했으며,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막연히 서구 세계라고 부르는 지역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신자유주의는 의도적으로 설계한 자본주의 형태였다. 여기에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사회주의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 일부 사람들이 이에 반발했고, 이를 저지하겠다고 결심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냈다.

그 창시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었고,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확산하기 위해 몽펠르랭협회(Mont Pelerin Society)를 만들었다. 이 조직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만들어졌다. 이들이 권력을 잡는 데에는 30년이 걸렸지만, 앞서 말했듯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결국 이를 현실화했다.

이들의 목표는 시장 논리를 삶의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언제나 경제 체제인 동시에 정치 조직체제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이 정부보다 자원을 더 잘 배분한다고 주장한다. 또 사적 소유가 공적 소유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며, 경쟁을 가능한 한 삶의 많은 영역으로 확대해야 하고, 규제와 노동조합의 힘을 줄여야 하며, 자본이윤과 고소득에 대한 세금을 억제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제약하려 한다.

정부가 재정수지를 맞추도록 강제한다고 주장하는 재정준칙을 요구하고,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두어 금리를 통해 물가상승률을 관리하도록 한다. 동시에 물가를 통제하기 위한 대가라면 높은 실업률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한편, 공공서비스는 가능한 곳마다 외주화하고, 특히 개인들이 과거에는 공동으로 관리하던 위험을 직접 떠안도록 요구한다. 연금, 사회돌봄, 보육, 보건의료, 교육 등이 모두 다양한 형태의 민영화 대상이 됐다. 그리고 과거 공공 소유였던 모든 공공서비스 기업도 이제 민간부문으로 넘어갔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금융자산 창출 중심으로 이동시켰다. 바로 그것이 목표였다. 이런 모든 변화가 그 과정의 일부였고, 대처는 영국 제조업 역량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면서 이 과정을 시작했다. 집권 초기 대처의 정책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 이제는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다. 나는 기억한다. 당시 나는 막 일을 시작했을 때였고, 경제 전망은 지금만큼이나 절망적이었다. 당시 노동인구는 지금보다 적었는데도 실업자가 최대 300만 명에 달했다. 이후 대처는 ‘빅뱅’을 통해 런던 금융시티를 규제 완화했고, 국제 금융 흐름도 자유화했다. 조세피난처는 국제 금융화 체제의 일부가 됐다. 이 모든 변화는 실질적인 부가 아니라 금융자산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돈은 돈으로 벌어야 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버는 방식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었다. 우리 경제의 변화는 근본적이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뀐 정도도 엄청났다. 집값이 매달 오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중산층이 믿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 전체가 이런 믿음 위에 세워졌다.

금융자본주의라는 발상 전체가 바로 신자유주의의 핵심이었다. 가치를 창출하기보다 가치를 추출하도록 설계했다. 지대는 상승했다. 주택을 담보대출로 사든 임차료를 내고 빌리든, 부동산에 지불하는 가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다른 여러 서비스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더 이상 자산을 살 수 없고 대신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생각해 보라.

민영화한 공공서비스 기업도 민간이 부를 빼내는 수단이 됐다. 영국의 수도사업자들이 빌린 돈은 사실상 배당금 형태로 해당 기업의 주주들에게 지급됐다. 민간의 가치 추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연금, 사회돌봄, 보육도 갈수록 금융화됐다. 과거에는 고용주나 국가에 의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필요한 서비스를 얻기 위해 영리기업을 찾아가야 하고 그만큼 추가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교육과 의료조차 민간 공급자에게 개방했다. 당신의 자녀가 아카데미 스쿨에 다니고 있을 수도 있다. 원한다면 이를 민영화 학교라고 불러도 된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자산 축적을 목표로 삼았고, 불평등과 빈곤은 외면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핵심적인 경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금융자산이 늘어나는 것과 실질적인 번영이 커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집값이 다섯 배 올라도 집 한 채나 방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은 아니다. 높은 집값은 살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택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들 뿐이다. 아무 젊은이에게나 물어보라.

금융경제의 상당 부분에서 똑같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경제가 가치 있는 어떤 것을 공급할 능력이 무너져도 금융자산은 늘어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또 다른 일도 했다. 자본주의를 견딜 만한 체제로 만들었던 지지구조의 상당 부분을 제거했다. 공공서비스는 모두가 경제생활에 참여하도록 도왔다. 규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일부 불평등을 제약했다. 이런 보호장치를 없애면서 자원 배분은 갈수록 불안정해졌다. 공공서비스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이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치적 불만의 증가는 그 필연적 결과 가운데 하나다.

신자유주의는 이제 한때 자본주의를 지탱했던 사회질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과거 자본주의는 사회와 협력했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사회에 맞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불평등은 부와 시장, 정치권력을 집중시킨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사회 대다수의 필요를 충족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포퓰리즘 정치는 그 결과 생겨난 분노와 불안을 먹고 자란다. 여기에는 깊은 역설이 있다. 이런 포퓰리스트 대부분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문제를 만들어낸 바로 그 신자유주의를 더 강하게 추진하기 때문이다. 그 방향에서는 우리의 정치적 병폐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불안정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실패했다. 앞으로 터질 AI 거품을 비롯한 금융거품은 붕괴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동시에 정부를 약화하려 하지만, 자본주의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는 정부다. 민주주의의 커다란 역설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Marx)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정부가 자본주의의 구원자가 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수많은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사고의 지배를 받아왔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부터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위험이다.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신자유주의일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이제 자기 자신과 사회, 지구까지 집어삼키고 있는가? 그 기본 논리는 착취에 기반한다. 그러나 착취는 결국 자신이 의존하는 체제 자체를 파괴한다. 이는 결국 정부가 다시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불확실한 점은 하나뿐이다. 그 순간이 왔을 때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우리 모두를 구하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행동할 능력이 있다고 믿을 것인가?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그들이 이 도전에 응하기를 바란다. 과거 자신들의 방식이 잘못됐음을 깨닫기 바란다. 새로운 형태의 정부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나는 자본주의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것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출력] Has capitalism failed, or has neoliberalism destroyed it?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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