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가 되기 전 내가 주로 만나던 사람들은 모두 나와 생각도 비슷하고 서로의 얘기에 항상 귀를 쫑긋 세워 들어주던 사람들이었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적어도 호의적으로 항상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 하지만 내가 노무사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일부는 남의 얘기를 듣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겁없는 무대뽀 사장들.
올해 7월부터는 모든 사업장에 산재법이 적용되지만 그 전에는 산재법도 적용이 안되고 근로기준법도 적용되지 않아 영세업체에서 산재를 당하면 정말 갑갑한 일이었다. 그나마 작년부터 근로기준법상 요양보상(치료비)이 4인이하 사업장에도 적용이 되어 이를 근거로 산재를 당한 노동자의 치료비 중 일부를 사업주로부터 받아 준 일이 있었다. 근무시간 중 셔터를 올리다가 허리를 삐긋하였는데 그 통증이 계속 심해져 진단을 받아본 결과 추간판탈출(디스크)이었던 것이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디스크 수술을 해야 할 지경이 되었으나 사업주는 일언반구 말한마디 없이 무관심과 냉담함으로 일관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사장들이 직원들을 어떻게 보는 건지 궁금해진다. 사람으로 보는 건지 기계로 보는 건지… 하여튼 어렵게 노동부로부터 산재인정을 받았다(디스크는 워낙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좀 어려운 병이다). 근로감독관한테 조사받는 과정에서도 열받는 건, 사장은 직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범법자임에도 늘 사장’님’이고 억울한 피해자인 노동자는 누구누구씨다. 원래 사장은 어디서나 대접받는 걸까? 더 기가막힌 것은 노동부로부터 요양비 지급지시가 내려졌는데도 사업주는 오히려 더 큰소리치며 버틴다는 것이다. 아무리 법적으로 어떻고 저떻고 설명을 하고 지급하지 않을 경우 처벌되며 민사로 강제집행 할 수 있다고 설명을 해도듣지도 않고 그야말로 무대뽀다.
평생 들어본 적이 없던 ‘당신이 뭔데!’소리도 노무사가 된 이후에는 많이 듣는다. 젊은 여자가 또박또박 얘기하는게 더욱 기분이 나빴는지 이 사장도 역시 ‘당신이 뭔데 주라마라야! 재판을 해야지 재판을! 당신이 뭐야!…’ 노동부는 종이호랑이인가? 처벌이래봤자 얼마 안되는 벌금일테니 무서울게 없다는 건지… 이 사장은 이런 사장들 중에서도 더 악질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웬 변호사사무실로부터 팩스가 날아들었다. 앞으론 사장말고 자기를 상대하라고.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다. 세상에, 그 순간 맥이 탁 풀렸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아니 정당한 권리란 말도 너무 사치한 말이다. 일하다 다친 것에 대해 최소한의 치료를 받는 것이 사장의 알량한 자존심보다도 못한 것일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니란 얘기였다. 변호사를 선임하느니 치료비를 주지… 노동자에게치료비를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변호사에게 돈을 보따리로 주는 것은 자존심을 살리는 일인가? 현실에서 노동자의 처지는 이렇듯 비참한 것일까.
나는 이런 악질 사업주는 정말 돈을 떠나서 맛을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민사로 가자고 노동자를 설득했다. 그러나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억울한 경우에 저항하면 저항하는 사람만 더 손해보고 그나마 참는 것이 덜 손해라는 교훈(?)을 터득한 것일까? 그 젊은 노동자의 부모님은 한사코 그만두자고 나를 말리셨다. 정말 나쁜놈이라고, 억울하다고 얘기하면서도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끝내 거부하셨다. 여기까지 온것만도 큰 용기를 내신 거겠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까. 결국 지금까지 지출한 치료비만 받고 사장과 합의를 하였다. 사장은 그러면서도 계속 ‘도의적으로 주는거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런 사장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노동부의 지급지시에도 아랑곳없이 버티는 사장들은 모두 구속시킨다면 최소한 그러지는 못할텐데… 그러면 교도소 자리가 모자라려나?
<이혜연/노무법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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