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의 경제와 금융의 규제

환경과 발전을 위한 포럼(ForUM, www.forumfor.no)

쉬잔 드 브뤼노프*

자본주의적 생산과 금융 간에는 복잡한 상호의존이 존재한다. 두 영역은 서로

구조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들 사이의 상호관계는 국가들

사이의 차이와 전체적인 경제환경 내의 변화들과 관련된 차이들과 더불어 계속 변

경되어 왔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경제는 금융 영역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기업가들은 투자와

제조노동자 임금 지불, 마케팅 비용, 연구 등을 위해 돈을 필요로 한다. 이들 금

융 자원은 신용기관이나 채권, 그리고/혹은 유한회사의 주식 발행 등을 통해 제공

된다. 어떤 식의 자금 조달이 선호되는가는 해당 기업의 자본 구조와 상이한 나라

들에서 널리 행해지는 자금 조달 양식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금융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간에 경제가치가 창출되고 기본적인

산출고가 금융부문의 수익-이자, 배당금, 수수료, 증권시장 투기 소득-을 보장하

는 생산의 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러한 금융 소득은 때로 자금을 소유한 사

람에 의해 경제활동의 기본 수익-이윤과 임금-으로부터 파생된 “지대(rent)”로 간

주된다.

불안정과 위기들

두 자본주의 영역 각각은 고유한 형태의 불안정을 갖고 있다. 경기순환(성장/후

퇴와 실업)과, 주식 및 채권시장, 이자율, 각국 통화의 변동과 함께 변화하는 금

융 이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동요(fluctuation)는 불가피하다. 이들 사이의 상

호관계는 크고 작은 위기-정체, 후퇴, 불황-의 시대에 가장 분명하게 보여진다.

1997년과 98년에 세계는 금융”세계화”의 첫 번째 위기를 목도하였다. 타이에서

발발하여 동남아시아, 그리고 러시아와 브라질로까지 확산된 통화 및 금융 위기는

이들 나라에서 경기 후퇴를 가져왔다. 서구 증권거래소들에서도 충격파가 감지되었

지만 극히 짧은 시간 동안이었고 성장과 고용에 즉각적인 효과가 미치지는 않았

다. 위기는 따라서 부유한 서구 국가들과 경제적으로 허약한 나라들 사이의 단절

과 부유한 나라들 내에서의 금융과 생산 영역 사이의 단절이라는 이중의 단절을

드러냈다. 그러나 서구 지도자들은 국제 경제위기와 동반될 전구적이고 “체제적

인” 금융위기를 우려하였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의 경제 부문에서의 과잉생산과 도매 및 원료 가격의 하락은

일반적인 디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시장과 이윤을 위한 싸움은 과

잉경쟁으로 전화되어 거대한 기업 집중으로 귀결되었다.

금융역할의 증대

자본주의의 만성적인 불안정은 1970년대의 이윤율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80년대

이래 전개되어온 두 가지 과정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그 첫 번째는 자본이 축적,

재구조화되는 방식에서 금융의 중요성이 실질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다.

더욱 격렬해진 경제 경쟁은 금융시장들의 수천억 달러를 비롯, 오늘날 진행되는

인수, 합병을 통한 강력한 자본 집중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하여 미국을 필두로 거대 은행들이 창출되었고 이들의 작동은 훨씬 더 불투명

하고 통제불가능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체제 전체에 대한 위험을 증대시키고 있

다. 다른 한편, 각국 정부에 의한 금융 탈규제는 자금을 소유한 이들에게 경제적

결과에 상관없이 단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돈을 이동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아시아 각국 통화와 증권거래소를 강타하고 국제 금융

을 뒤흔든 1997년의 공포(panic)와 같은 광기와 공포에 사로잡힌 투기와 떼거리

행태(herd behavior)를 수반한다.

이윤율 체제

위에 언급한 것과 연결된 두 번째 과정은 비채무 보통주 수익(return on

non-debt equity)의 새로운 독재라는 과정이다. 주주들은 이러한 수익이 15%에 이

를 정도로 매우 높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평

균 3%를 넘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자본에 대한 고수익 요구는 생산의 분배에 강

한 반작용을 미친다. 기업의 이윤이 요구대로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임금과 노동력

이 새로운 이윤율 체제 하에서의 각 기업의 자본 재구조화에서 조절 변수로 처리

되어야 할 것이다.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들 사이의, 부유한 나라들 자체 내

의, 투자 소득과 생산직 노동자 및 기타 피고용자들의 임금 사이의 소득 격차는

모든 곳에서 상당히 확대되었다.

오늘날에는 노동자와 민중의 필요를 손상시키면서 자본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권력투쟁이 존재한다. 높은 금융수익에 대한 요구, 소수의 수중으로의 금융소득의

집중, 금융 이동의 자유 등은 오늘날 시장의 합리성에 따른 모든 종류의 탈규제를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국제적인 자본 재구조화라는 가장 가시적인

반사회적 무절제들이다.

국제 금융 체제의 공고화

아래는 1997-98년의 위기 당시와 그 이후에 전지구적인 “체제적 위기”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등장한 몇몇 제안에 대한 소개이다.

1999년초, 전문가와 각국 정부 사이에 은행 운영의 투명성에 관하여 전통적인

신중한 규칙들을 잘 적용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특성의 채무자들과 결부된

신용 위험에 대한 사정을 향상시킬 필요성에 관해 일반적인 합의가 있었다. 그러

나 대부분의 은행은 결정에 대한 자율성과 자기 나름의 위험 계산 모델에, 즉 자

신들이 일종의 불투명한 운영의 권리라고 간주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거대 은

행들의 탄생은 이와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또다른 단계이다. 그 결과 제한 조

치가 부족한 한편에서 금융시장 행위자들은, 널리 퍼진 과잉경쟁으로 어느 때보다

도 더욱 커다란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규제를 선택할 것

이라고 기대된다.

핵심 기구들의 개혁

국제 금융의 현실을 보다 잘 파악하기 위해서 주요 산업국가 그룹인 G7을 확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20개 국가로 구성된 특별그룹을 만들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과거에도 몇번 이러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정책결정에 관한 한 부유한 나라와 경

제적으로 약한 나라들 사이의 공평한 권력 공유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금융 불안

정을 경감시키지도 못했다.

1997-98년 사이에는 위기에 잘못 대처해서 크게 신뢰를 잃은 국제통화기금(IMF)

의 개혁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IMF는 타이에서 처음 발발한 통화 및 금융위

기가 아시아 지역과 국제적으로 전염될 위험을 이해할 능력이 없음이 입증되었다.

IMF는 늘 하는 방식대로 무자비한 긴축조치(restrictive measures)의 적용을 대부

조건으로 요구하였으며 이는 신용 위기와 경기 후퇴의 위험을 악화시켰다. 그리하

여 IMF는 처음부터 금융공황(financial panic)의 짐을 난관에 처한 나라들로 이전

시켰으며 그 결과 대규모 자본 유출, 달러화에 고정된 아시아 지역 통화들의 가치

절하, 증권시장 붕괴 등을 낳았다. IMF는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1999년에 어

떠한 개혁도 하지 않았다. IMF 정책을 형성하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서구

강대국들은 한번도 IMF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환율 전략들

투기로 인한 아시아 통화의 가치절하 이후 그려졌을 국제적인 통화 개혁이라는

사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두 가지 경로를 제안하고

있다. 시장에 의해 환율이 결정되도록 모든 통화에 대해 변동 환율을 장려하거나

약한 통화가 전적으로 기준 통화에 의존하는 체제인 통화위원회-여기서는 해당 나

라의 외환 보유고의 달러(또는 유로) 단위당 국내 통화 한 단위로 발행이 제한된

다-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제안은 -페소를 달러에 연결시킨 제도인- 아르헨티나 통화위원회의 경

험을 무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실패했으며 아르헨티나 지도자들은 현재 달러를

자국통화로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위 제안 중 첫 번째, 즉 전면적인 변동환율제

의 경우, 세 개의 지배적 통화(달러, 엔, 그리고 독일 마르크의 계승자인 유로)가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위계 체제인 국제 통화구조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또한 세

지배 통화 자체들 사이의 환율 불안정도 고려하지 않는다.

완고한 달러 헤게모니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달러, 엔, 유로 간의 경쟁으로 야

기된 세 통화 사이의 지나친 불안정의 위험을 경감하기 위해서 일본과 유럽 각국

은 세 통화 사이에 타겟존(exchange target zones; 국제 통화 안정을 위한 목표로

설정된 외환 시세 변동폭-옮긴이)을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이러한 타겟존의 경우

환율 변동에 대해 최저 및 최고 한도가 규정되게 되며 이러한 한계를 넘어선 변동

이 생기면 통화 당국들 사이에 협의가 진행되고 합의를 통해 개입하게 된다. 이러

한 통화 안정 조치는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대중 여론의 각성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신세계질서의 신자유주의적 무절제와 이것이 전세계 민

중들에 대해 갖는 위험한 함의에 맞선 다면적이고 다목적적인 국제적 저항운동의

태동을 목격해왔다. 자본 통제의 부활 필요성에 관해 [이코노미스트](1999년 1월

2일자)가 20개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중간계급 시민의 49%가 찬성한 반면

37%는 반대, 14%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자유시장의 충실한 대변자로 알려진

이 영국 잡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성찰해보아야 한다고 결론지

었다.

지면상, 해외투자의 전면 자유화를 의미하게 될 협정(다자간투자협정)에 맞선

성공적인 항의투쟁(다자간투자협정 협상은 1998년에 좌초되어 결국 연기되었다)

등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중요한 저항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힘들다. 아래에서는

반(反)자유주의 정서를 보여주는 두 가지 조짐만을 상세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들의 성격은 다르지만 금융 안정화라는 맥락에서는 둘 모두 흥미롭다.

말레이시아의 사례

첫째는 아시아 신흥시장 국가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가 1997-98년 위기에서 취한

행동에 관계된다. 1998년 9월 1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공식적 환율통제를 부과하고

해외 자본의 본국 송환을 불법화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1999년 2월에 완화되었지

만 해외 자본 원금에 대한 (1년 후 30%에서 0%까지 경감되는) 시간누진세는 유지

되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목적은 이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최대한의 단기 이윤을 좇아 자본을 즉시 철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칠레(1991년부터 97년까지) 같은 일부 나라들은 이미 이러한 유형의 조치를 사

용한 바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가 취한 행동은 처음부터 “국제 금융공동체”의

비난을 받았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해 제한을 부과함으로써 공공연하게

IMF가 옹호한 개혁에서 빠져나가려 한 국가가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레이시

아가 단기간에 경제를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음이 분명해지면서 나중에는 서구 전

문가들 사이에 견해가 바뀌게 되었다. IMF에서는 개발도상 및 신흥 경제에서 자본

계정 통제의 타당성에 관한 논의가 재개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제한적이면서도 중요하다.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겪은 시련과 고

난을 알지 않고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취한 행동을 판단할 수 없다. 다른 한편,

이러한 조치는 국제적인 금융 불안정에 대한 신흥 경제의 공식적인 저항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아시아 위기 기간 동안 타이완-말레이시아의

조치가 공개적으로 선포된 데 반해 타이완의 경우는 비공식적이었다-을 필두로 하

여 다른 나라들에서도 외환 및 자본 통제가 도입되었다. 말레이시아의 사례가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례는 여전히 역설로 남아 있

다. 말레이시아의 사례는 반신자유주의적, 민족주의적 저항이었지만 반자본주의

시위는 아니었다.

토빈세

반신자유주의적 성격의 두 번째 조치는 현재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캐나다 등

수많은 나라에서 상당한 대중운동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 조치는 토빈세라고 알

려져 있는데 “환 투기(currency speculation)를 저지하는” 수단으로 제안된 통화

거래에 대한 과세이다. 이러한 투기는 성장과 소득 분배를 위한 걱국의 경제정책

자율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자기규제 능력을 잃어버린 시장들은 무분별하고 자국

통화와 경제에 위험한 환율 변동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1981년 노벨 경제학

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인 제임스 토빈에 따르면,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

먼의 주장과는 달리 환 투기는 금융 불안정과 경제 탈안정화의 원천이라고 한다.

증가하는 환 투기

197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뒤이은 금융 탈규제는 거대한 환 투기 기회

를 열어놓으면서 펀더멘털, 즉 장기 경제 지표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개발도상 및 신흥 국가들 모두에 적용된다.

거대 국제 은행들이 이러한 상황을 활용한 첫 번째 주자였다. 환 거래의 80%가

은행간 거래이며 대략 20%는 비은행 의뢰인들의 요구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환 거래 총량은 상품 및 용역 교역의 총량에 비해 상당히 증가해왔다. 1980년의

경우 국제 교역의 1달러에 대해 9달러가 외환 시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1998년

에는 그 격차가 1:60의 비율로 확대되었다.

우리가 지금 외환시장의 수지나 이윤이 아니라 총 금융 흐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그리고 증가하는 흐름이 부분적으로는 새로운 포트폴리오 관리 기법의 사

용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음을 유념하라. 그러나 외환 거래는 실물 경제에는 아무

런 경제적 이득도 없이 주요 행위자인 거대 국제 은행들과 민간 투기자

(operators)들에게 엄청난 이윤(과 때로는 상당한 손실)을 발생시켰다.

토빈세의 원리

토빈세의 주된 목적은 단기 환투기를 값비싼 사업으로 만듬으로써, 즉 투기자들

에게 원천적으로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이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달러나 엔, 유로

같은 거대 통화를 비롯 모든 통화에 토빈세 계획이 적용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

로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제적 은행들을 비롯 모든 투기

자들이 토빈세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는 개발도상 및 신흥 국가들을 보

호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종류의 환 투기에 도전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토빈세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이다. 투기 자본의 국제적 흐름의 양을

제한함으로써, 순수한 금융 논리에 반대하여, 새로운 논리를 창시하는 것이 그것

이다.

이 세금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파생상품 거래를 비롯, 현물, 선물 등 외환시장

에서의 모든 거래에 대해 가령 0.05%의 일률적인 국제적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돈의 순환을 통해 단기 이윤을 추구하는 투기자는 한 통화가 다른 통화로 전환되

는 빈도에 의거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과받을 것이다.

제임스 토빈에 따르면 외환 거래에 대한 과세는 영구적이고 보편적이어야만 한

다. 이는 우선 G7 국가 및 싱가포르나 스위스 등 다른 중요한 금융 중심 국가들에

서 시행되어야 한다.

토빈세의 한계들

토빈세의 경제적 한계는 어떠한가? 많은 경제학자들은 파괴적인 자본 도피를 폭

발시키는 대규모 투기 공격의 경우에는 0.05%(또는 이보다 높은 세율조차)의 토빈

세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달러에 비해 페소가 60% 하락했

던 1994-95년의 메히코 페소 위기가 적절한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메히코 위기의

경우 투기적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0.05%가 아니라!) 23%의 토빈세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답은 메히코 같은 긴급상황에서는 토빈세와

더불어 일정한 예외적 자본 통제 조치나 인도나 타이완-이 나라들은 아시아 다른

나라에 비해 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으며 메히코보다는 미국과 떨어져 있었다-처럼

영구적인 조치를 동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는 금

융 부문이 자유화된 이래 각국 정부가 받아들인 자유이다-에 의해 환 투기가 연료

를 보급받은 게 사실이라면, 이러한 한계로 인해 토빈세의 안정화 역할이 결코 약

화되진 않는다.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토빈세의 “실행가능성”을 논의하게 된 서구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에 반대하는 많은 주장을 제시해왔다. 프랑스의 예를 들자면, 최근

까지 재무장관을 역임하면서 토빈세에 강경하게 반대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다양한 기회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하였다. 1) 투기가 안정 요인이 될 수도 있다.

2) 외환 거래와 결부된 금융 거래의 흐름은 프랑스 독자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등

등. 이러한 주장 각각에 대해 충분히 답변할 수 있다. 첫째 “투기의 안정 효과”를

보자. 1997년과 98년의 무절제한 투기 공격은 초국가적 투기가 얼마만큼 국제 금

융 체제의 기초를 뒤흔들고 투기에 내재한 경제적 위험의 부담을 가장 허약한 인

구집단에게로 이동시키는가를 보여주었다. 외환의 흐름과 이러한 흐름에서 나오는

은행들의 이윤이 공시된다면, 모든 과세가능한 거래를 인지하고 필요할 경우 이를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

정치적 측면

다른 한편, 단일 유럽 통화인 유로가 도입된 지금 프랑스(나 다른 유럽연합 회

원국)가 기술적, 정치적 이유 모두로 인해 토빈세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이다. 그러나 달러를 비롯한 해외 통화에 대한 유로의 미래 환율이 결정되는 조건

이 유럽 중앙은행과 회원국 재무장관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지만, 프랑스 중앙은행

은 적어도 당분간은 여전히 프랑스 은행들을 감독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프랑스는 토빈세 운동을 일으킬 것인가? 유로랜드(euroland; 유

로화를 사용하는 유럽연합을 지칭-옮긴이)는 미국과 영국의 예상되는 거부에 도전

할 의지가 있으며 참여하기를 바라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토빈랜드(Tobinland)”

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가? 이는 상당 부분 금융 투기에 반대하는 대중적 저항운

동의 힘과 새로운 국제질서, 아니 국제무질서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

을 결합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결론

토빈세 및 다른 금융투기 대응조치에 비판적인 일부 좌파들은 단지 금융이나 금

융시장 행위자들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

쟁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다만 오늘날 금융이 자본의 난폭한 지배라는 빙산

의 가시적인 일각이라는 점과 금융의 불안정성과 투기자들의 이익에 대한 기꺼운

복종에 대한 도전이 현재 여론 상태의 긍정적인 징후라는 점만 결론으로 얘기하고

자 한다. 별로 크지 않은 토빈세가 -성장과 보다 덜 불평등한 소득 분배를 위한

경제정책의 자율성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간주되는- 자본 이동의 자유에 제한을

부과하려는 바램의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역설적이다. 그러나 토빈세를 도

입한다는 생각은 1980년대 이래 구축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 즉 노동자와 빈

민대중의 이해에 반하여 작동하는 질서에 대한 점증하는 불만을 결정(結晶)화하는

데 이미 이바지했다. 토빈세의 성공적인 시행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가져온 최악

의 영향들을 완화키시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커다란 정치적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시민 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연합(ATTAC)

과학협의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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