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저개발 상태로 후퇴하는가?
월든 벨로(Walden Bello)
아시아 금융위기는 7월 2일 태국 바트화와 7월 11일 필리핀 페소화의 급락과
함께 2주년째 접어들면서, 깊어지는 자포자기의 심정과 절망감이 난타당한 이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 ‘IMF형 자살’이라 불리는 일이 서울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그들의 처와 자식들의 삶까지 빼앗긴 정리해고자
들에게 나타나고 있으며, 아마도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가족들을 돌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 1998년 초, 태국TV는 거리에서 경찰들과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과 몸싸움
을 벌이다가 전쟁포로들처럼 경찰차로 끌려가는 장면을 방영했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 장면이 비대치 문화
(non-confrontative culture)로 유명한 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고나
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인도네시아에서는, 에너지 보조금을 철폐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
고를 수행한 정부에 저항하는 대중적 봉기가 일어났고 32간의 수하르토 독재정
권을 무너뜨렸다.
1998년, 아시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경제의 붕괴, 사회적 위기, 국제
통화기금(IMF)의 지배, 그리고 정치적 소요의 지대. 현재의 상황을 격으면서,
누군가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위기에 빠졌던 1968년
으로 후퇴하는 것을 경험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13개월 전만해도 21세기를 앞
둔 세계경제의 견인차로 회자되었던 바로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왜 아시아의 경제는 이렇게 허약한 것일까? 최근
몇 달동안,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는 아시아의 경제 붕괴를 설명하
는데 있어 만병통치약 이었다금융기관들의 비리, 부패로 찌든 정경유착, 정치와
경제 당국의 책임감의 부재는 아시아의 호랑이를 무릎꿇게 만든 악습으로 언급
되었다. 이와 같은 설명의 문제점은 정실자본주의적 관행이 지난 30년 동안 세
계의 GNP성장을 이끌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활동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패가 붕괴의 원인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통제되지 않는 지구적 자
본의 역할이 훨씬 컸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분석가들은 점점 늘어났다. 1994년
메히꼬 경제의 붕괴처럼, 아시아의 위기는 금융시장의 세계화에 의한 필연적 산
물이다.
동남아시아 ‘호랑이들’의 성장과 몰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의 저축과 투자
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대한 외국 자본의 유입을 통해 성장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동남아시아 지역의 성장은 대부분 일본의 직접투자에
의존하고 있었다. 1990년 초에 들어 일본의 투자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이 지역
의 금융기관과 기술관료 엘리트들은 다른 외국 자본을 찾았다. 이들이 찾은 외
국 자본은 뉴욕, 런던, 도쿄의 주식시장에서 낮은 실질 금리와 급격히 하락하는
수익을 피해 전세계를 동시에 돌아다니고 있는 주식투자자들과 거대한 국제적
은행들이었다.
은행과 투자자들 그리고 최근 ‘거대신흥시장’이라고 불리우게 된 국가들을 중
재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이었고, 이 기구는 아시아 금융당국으로 하여금 자
본계정을 자유화하고 외자유치를 위해 금융부문을 완전히 개방하도록 지속적인
압력을 넣었다.
통화기금의 축복 속에서, 아시아의 국가들은 두가지 요소를 더 첨가했다. 이
는 투자가치를 잠식할 수도 있는 평가절하의 위험에 대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
기 위한 고금리와 지역 통화를 달러에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였다.
이와 같은 방식은 자본을 끌어들이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워싱턴의 국제금
융기구(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
아, 필리핀, 태국, 한국으로 유입된 순수 민간자본은 1994년 450억 달러, 1995
년에 774억 달러, 1996년에는 930억 달러로 치솟았다. 문제는 이와같은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고금리와 단기회수를 노리는 투기자본이라는 것이다. 이미 국제
통화기금(IMF)의 자유방임 이데올로기의 지지자가 되었고 거대한 자본 유입을
통제한 경험이 없는 정부들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난 외자는 농업이나 제조업과
같은 생산분야가 아니라 주식시장, 소비자 대출, 특히 부동산으로 유입되었다.
당연하게도 방콕에서는 96년까지 2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상업 및 주거지대가
팔리지 않은 채 부동산의 공급과잉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96년 초 외자유입이
한창일 때 외국 은행들은 태국의 은행들, 금융회사들과 기업들에게 서로 대부하
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96년 초에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채무자들은 부실채권을 떠
안게 되었다. 97년이 되자 외자는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자본계정의 자유화로
인해 자본유출을 늦추기 위한 아무런 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정된 달러를 쫒아 다니는 수백억 에 달하는 바트화때문에, 자본의 유출은
매우 불안정할 수 있다. 자본유출을 한꺼번에 빠져나가도록 만든 것은 바트화의
평가절하에 도박을 건 통화투기자들이었고, 사실상 달러를 찾아 돌아다니는 엄
청난 양의 바트화의 이탈로 인해 가속화된 것이다. 97년 2월까지 10년동안 1달
러당 25바트화로 고정되어있던 환율은 붕괴되었고 태국통화는 몇 달 사이에 50%
까지 절하되었다.
자카르타, 마닐라, 콸라룸푸르에서도 과잉성장, 부실채권, 통화투기로 인한
외국자본의 유출과 통화위기 등 똑같은 결과가 야기되었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통화들도 30%에서 80%까지 절하되었다. 위기로 인한 자본동요의 규모는 그 수치
로 알 수 있다. 96년도의 순자본 유입량은 930억 달러, 아시아에서 가장 심각한
5개국가로 흘러 들어온 민간자본중 97년에 빠져나간 돈만 120억이다. 위기의 규
모와 깊이와 속도는 전략적으로 이를 명확히 규명하고 이행할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지도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단 한 나라만이 책임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그 나라는 바로 중국
이다. 중국은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을 위해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중국은 제
안된 아시아통화기금(Asia Monetary Fund)의 설립을 지지했고 중국의 이웃나라
들이 수출 주도의 회복과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평가절하의 압력으로부터 자신
들의 통화를 방어했다.
그러나 중국의 움직임을 제외한다면, 효과적인 지도력은 아시아 통화위기 속
에서 거의 발휘되지 못했다. 자본계정의 자유화와 금융자유화에 의해 야기된 유
동적인 자본의 흐름이 위기의 근본임을 인식하는 대신, 워싱턴과 국제통화기금
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와 부패한 정경유착이 주요 원인이며 해결
책은 부패를 청산하고 ‘투명성’을 보장하는데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시기를 놓쳐
버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마샬 플랜으로 서유럽이 회생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지
역 경제를 안정화시키고 통화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워싱턴은 미국
의 수출과 자본을 위해 투자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지역과의 쌍무협상을 위해
국제통화기금을 이용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지역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대안적인 경제 프로그램을 제시하여 국제통화기
금(IMF)과 워싱턴에 저항하지 못한채, 일본은 위험하고 앞으로 더욱 심해질 투
기로부터 아시아 통화를 방어할 수 있는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아시아통화기금
(AMF)의 설립을 포기하라는 워싱턴의 압력에 굴복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의 지도
적 역할에 대한 타국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효과적인 지도력 대신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을 선택한 것이
다. 지역의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을 위해 총 120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마련했다. 그러나 통화기금은 곧
남반구와 북반구의 진보적인 세력과 보수적인 세력 둘 다로부터의 비판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통화기금에 퍼부어진 중요한 비판 중 하나는 동아시아국가
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자본계정의 자유화 정책이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의 안정화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급진적인 금융자유화
를 강요했고 위기를 촉발시킨 통제되지 않는 자본의 흐름을 무시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은 구제금융이 경제회복을 위해 지원되었지만, 실제로 채무
국의 급증하는 부채를 떠안게 된 국제적인 민간은행들에게 담보를 제공하는 역
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프로그램은 해외투자자
와 금융기관들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앞으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거나 혹은
무책임한 대출이 계속되게 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세 번째 비판지점은 국제통화기금이(IMF) 가장 강
력한 주주인 미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에 의해 미국 경제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무역과 투자개혁을 강요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미국 재무성과 국제통화기금은 그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숨기지 않았
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양보는 -기업주식에 대한 외국인
소유제한을 55%까지 완화시키고, 지역자본시장의 완전한 자유화 등 – 지난 10여
년간 워싱턴이 한국에 제기한 쌍무적 경제정책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
에 대해 부적절한 해결책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통화기금의 전지구적인 처방은
매번 정부지출의 엄청난 삭감과 고금리를 포함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를 유
치하고 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알려진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오히
려 공황을 조장하고 있다.
하버드의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에 의하면 사적투자의 붕괴와 몰락하는
경제를 막아내기 위해 금융 및 통화팽창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IMF)이 말하듯이 만약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라면, 도대체 이
익을 거의 보장하지 않거나 보장할 수 없는 공황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를 어떻게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통화기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안 좋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견해는
더 이상 소수의 생각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의견은 타국의 경제회
생을 위해 어쩌면 좋은 일에 쓰였을지도 모를 미국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미 클린턴 행정부가 요구한 180억 달러에 대한 승인을 거부했던 미 의회의 핵심
의원들뿐 아니라 세계은행(World Bank)의 수석경제학자인 죠셉 스티글리츠
(Joseph Stiglitz)와 기술관료들 역시 인정하는 바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에 대한 논쟁의 해결은 대단한 중요성을 가질 것이
다. 태국의 경우, 통화기금이 예측한 98년 GDP 2.5% 성장이 마이너스 1% 성장으
로 바뀌는 결과를 야기함으로써 통화기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의해 금융위기
의 억압적 효과가 더욱 심화되었음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경제도 통화기금의 안정화 프로그램 하에서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빨리 경
제가 수축하고 있으며 통화기금은 98년 1% GDP성장율을 마이너스 1%로 재조정했
다. 인도네시아에 관한 한 가장 최근의 낙관적인 전망은 GNP가 98년까지 25%까
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거시경제 지표들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이미 세계은행 총
재인 제임스 울펜손(James Wolfensohn)에 따르면 금융위기와 통화기금이 만들어
낸 공황으로 인해 태국에서는 80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실직했다고 말한다. 98
년 말까지 총 실업자는 400만에 달할 것이며 이는 노동력의 15%에 달하는 것이
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최근 재협상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분명히 경제침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며, 이미 최저생활에 못 미치는 2,250만의 극빈자들이 생겨났
고, 앞으로도 1억1850만까지 늘어날 것이며, 이는 극빈자가 인구의 11.2%에서
60.6%로 증가됨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많은 전문가들은 98년 말까지 실업자
들이 노동인구의 9%에 해당하는 200만을 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어두운 전망들은 고용생활에 익숙해졌고, 실업수당을 거의 받을 수 없거나 전혀
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엄청난 심리적 적응을 요구할 것이다. 아시
아의 경제위기가 2년째 접어들고, 아시아의 중심축인 일본이 흔들림으로 인해
지역의 침체가 공황으로 전환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유명한 실언을 인용하
자면, 이제 더 이상 현상황을 번영으로 가는 도중의 ‘사소한 고장’이라고 말하
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80년대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처럼, 동아시아는 앞
으로 그 이상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10년 동안은 지속될 위기에 봉착한 것
이다. 1년전만해도 저개발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은 개발상태에 있
는 제3세계의 수준으로 몰락할 악몽으로 바뀐 것이다.
점증하는 경제력에 기반한 정치적 힘과 문화적 침략의 장래는 신식민지에 대
한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경제위기에 빠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클린
턴의 첫 임기시 미상무부 고위관료였던 제프리 가튼(Jeffrey Garten)같은 사람
들의 예견을 절박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같은 나라들의 대부분은 길
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는 미국의 기업들이
시장 깊숙히 침투해 있거나 이미 가까이 와있는 매우 다른 상황의 아시아를 보
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미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단
순한 위기가 아니라 세계화, 자유화, 그리고 빠른 경제성장에 기반한 경제모델
의 붕괴라는 사실이 점점 현실화 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이 많아질 수록 이전의 경제모델로 돌아가려는 나라는 사라질 것
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단순히 우리들의 죽어가는
경제를 살리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원칙과 우선과제에 기반한 철저한 재건설이
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