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그 의미와 현재 ①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지금으로부터 50년전 국제사회는 ‘세계인권선언’을 제정했다. 2차대전의 참

화와 반인권의 역사를 경험한 인류가 ‘야만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며 ‘인

권의 시대’를 향한 첫걸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세계인권선언’이 갖는 의미

는 무엇일까? 야만의 시대는 가고 인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가? 그러

나 IMF시대 아래 일할 권리마저 빼앗긴 노동자들, 여름·겨울 가릴 것 없

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세입자들, 입시지옥 아래 고통받고 절망하는 청소년

들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세계인권선언과 우리 현실 사이의 간극은 멀게

만 느껴진다.

오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제정 50주년을 앞두고 <인권하루소식>은 ‘

특집, 세계인권선언, 그 의미와 현재’를 통해 세계인권선언의 각 조항과 조

항별로 비춰본 한국의 현실을 17회에 걸쳐 짚어보기로 했다.

이번 특집을 통해 독자들이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이해와 우리현실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편집자주>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장은 “경이로운 성취”라는 의장의 연설로 술

렁였다. “모든 민족과 모든 국가가 성취해야 할 공동의 기준”으로 ‘세계인

권선언’이 채택된 날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가들의 조직체인 국제

기구가 인권이 무엇인가를 적어 넣은 보편적인 문서를 만든 것이다. 이 선

언의 등장으로 자국민을 대우하는 문제가 그 국가만의 관할사항이라고 말

할 근거는 설자리를 잃게 되었고 인권의 국제적 보장은 필연적 추세가 되

었다.

이 선언은 6년여에 걸쳐 6개 대륙과 모든 바다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잉태

되었다. 약5천만 명에 이르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2차 대전의 참상과 나

치가 저지른 만행은 국내에서 자국민의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는 인류 모두

의 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것이다.

이 교훈에 기초하여 1945년 창설된 유엔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과 기본

적인 자유에 대한 보편적인 존중과 준수(제55조)”라는 목적과 그 성취를

위한 행동 서약(제56조)을 헌장에 담았다. 유엔은 이 약속을 지키려는 발걸

음을 재촉했다. 1946년 1월에 열린 제1차 유엔총회는 기본적인 인권에 관

한 문서를 기초하기로 했고, 그 인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하기 위하여

유엔인권위원회를 설치했다. 1947년, 유엔인권위원회는 지역적 안배를 고려

하여 8개국으로 구성된 ‘기초위원회’에 초고작업을 맡겼다.

선언은 이행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로 삼아야 할 지침을 부여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을 만들어서 회원

국의 서명을 받아내는 일에 비해 선언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워보이는 일

이었다. 그러나, 논의의 시작부터 문서의 형태를 둘러싼 대립이 생겼다. 인

권의 일반적 원칙 또는 기준을 담은 선언이냐 아니면 구체적인 권리와 제

한범위를 명시한 조약이냐가 문제였다.

기초위원회는 두가지 형태의 문서를 다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1947년 말

유엔인권위원회는 기초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문서에 ‘국제인권장전’이란

이름을 붙이기로 하고 선언을 위한 작업집단, 조약을 위한 작업집단 및 그

이행 조치에 관한 작업집단을 각각 만들었다(UN, The International Bill

of Human Rights, 1988).

1948년 5월에 모인 인권위원회는 ‘선언기초위원회’가 제출한 초고를 수정

하고 각국 정부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때 ‘조약화’의 문제나 ‘이행’의 문제

를 고려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선언만이 유엔총회에 제출되어 투

표에 부쳐졌고, 결과는 찬성 48, 반대 0, 기권 8이었다.

기권표는 세계인권선언의 의의를 인정하는 속에서도 불충분하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적 소유권을 인권으로 명기(제17조)한 점이나 사회권 보장에

대한 권리가 충분치 않다는 점등이 구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기권표를 낳았다. 이는 선언의 기초 과정에서 가장 달아올랐던 논쟁, 즉 보

편적인 인권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한정되느냐, 아니면 경제적·사회적

권리도 포함하여야 하느냐는 논쟁의 일면을 보여준다. 후자를 지지한 것은

구 사회주의 국가였다. 결과적으로 사회보장의 권리, 노동에 관한 권리, 정

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 충분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선언에 포함되었다.

긴 산고 끝에 탄생한 세계인권선언은 뒤에 만들어진 유엔의 인권관계 조약

들의 뿌리가 되었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권위 있는 문서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인류는 선

언이 채택된 12월 10일을 ‘인권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인

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강제력 있는 조치의 마련은

먼길을 재촉하고 있다.

1998년 11월 18일 수요일 제1252호 <인권하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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