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게르하르트 슈뢰더- 유럽좌파, 다시 날다

게르하르트 슈뢰더(54)가 ‘새로운 중도’를 내걸고 독일의 총리로 당선되자 바짝 긴장한 쪽은 프랑스였다. 슈뢰더의 당선 뒤 첫 발언이 “앞으로 영국에 동등한 기회를 주지 않고는 영국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륙의 정치구도를 그동안 독일-프랑스 양대 축 중심으로 운영했다면 그 범위를 영국까지 포섭해 넓히겠다는 뜻이다. 변화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슈뢰더는 2차대전 이후 유럽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후견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개선을 들고 나와 미국의 신경을 자극했다. 옛 소련의 해체 등 군사적 대결상황이 상당히 해소된 상태에서 ‘선제핵공격’ 전략은 변경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20년 안에 독일 전력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를 완전폐쇄하겠다고 밝히고, 실업문제를 유럽차원의 공통과제로 설정하는 등 슈뢰더의 행보는 하나하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 발타사르 가르손- 독재자들 경악!

세계인권선언 50주년에 걸맞은 쾌거를 꼽는다면 단연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대한 단죄의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발타사르 가르손(41) 검사는 이 일을 가능케 한 피노체트 영장 발부로 일약 ‘세계적 인권검사’라는 특별칭호를 얻게 됐다.

2년 전 70∼80년대 남아메리카 독재자들을 단죄하겠다고 나섰을 때만 해도 매스컴의 주목받기 좋아하는 젊은 검사의 만용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지만, 스페인 기득권층뿐 아니라 이제 전세계 독재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저승사자’가 된 것이다.

비록 12월17일 영국대법원이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부인했던 이전 판결을 무효화하고 재심리하겠다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지만, 가르손은 장기화될 재판의 서곡일 뿐이라며 단죄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가르손은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군부독재자들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해 놓고 있다.

3. 모니카 르윈스키- ‘이라크 공습’ 주범?

“미국의 이라크 공습은 르윈스키 때문이었다(?)” 미국의 바그다드에 대한 ‘정치적’ 공습을 일부 외신은 이렇게 비꼬았다. 올 초부터 모니카 르윈스키(24) 스캔들로 국내정치에서 궁지에 몰렸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결국은 대외공격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는 뜻이다.

95년 12월부터 97년 4월까지 백악관 인턴으로 일하며 클린턴과 집무실에서 ‘오럴섹스를 즐겨온’ 르윈스키 사건이 불거진 것은 올 1월부터다. 그의 친구 린다 트립이 르윈스키가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사에 대해 고백한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해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에게 전달한 것이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완강히 부인하던 클린턴이 ‘부절적한 관계’를 시인하면서 클린턴은 탄핵위기라는 최악의 코너로 몰린다. 올해 미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클린턴이 르윈스키 수렁에서 빠져나오려 허우적거리는 모습과 이를 빌미로 한 공화당쪽의 끌어내리기 작전을 항상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4. 오사마 빈 라덴- 테러, 한다면 한다

지난 8월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 테러로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오사마 빈 라덴은 세계 테러단체의 대부라고 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재벌의 아들인 빈 라덴은 3억달러 이상의 돈과 4천명 이상의 병력을 앞세워 각 지역의 테러단체들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이슬람전선’은 중동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에 지부를 두고, 테러요원 훈련캠프도 운영한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개인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은 그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그의 ‘진가’는 잘 드러난다. 그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지시한 적도 있으며, 부하 5명이 기소되자 보복의사를 밝혀 미국쪽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은신처를 전격적으로 폭격했지만 실패했다.

5. 수하르토- 그는 무릎꿇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의 32년 철권통치는 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20세기 최장수 독재자의 반열에 올랐던 수하르토는 1천명 이상이 숨진 5월 자카르타 약탈사태와 대학생들의 국회의사당 점거농성 등 민주화 시위가 봇물처럼 터져나오자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후계자나 다름없는 측근 바하루딘 유수프 하비비가 정권을 넘겨받아 어느 정도 ‘방패막이’ 구실은 해주지만, 학생들과 시민단체의 단죄 요구가 점점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재임기간 부정축재 혐의로 벌써 세차례나 검찰조사를 받았고, 자녀와 측근들도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사위 프라보우 수비안토 중장은 군에서 쫓겨났고 자신의 일가와 관련된 기업들의 특혜도 차례로 박탈당했다. 그렇지만 수하르토는 “스스로 조국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6. 사담 후세인- 언제까지 건재할까

미국과 ‘벼랑 끝 외교’로 전세계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는 사담 후세인(61) 이라크 대통령만큼 전세계 지도자 가운데 가장 알려진 지도자이면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는 없다. 79년 권좌를 잡은 이후 미국을 대신해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7년전쟁에 나서기도 했던 그는 미국적 중동질서의 훼방꾼으로 비쳐지지만, 이슬람을 신봉하는 아랍민족에는 아랍 자존심의 대변인이다. 91년 걸프전 당시 2차대전 종전을 앞둔 6주 동안 일본열도에 쏟아졌던 폭탄보다도 많은 8만8500t의 폭탄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후세인은 12월 ‘사막의 여우작전’에서도 어김없이 살아남아 “미제국주의에 대한 성전”을 다짐한다. 걸프전을 주동했던 부시 대통령이 물러난 다음에도 건재한 그는 탄핵위기에 처한 클린턴 대통령을 비웃으며 이라크가 다시금 중동의 지역패권국가로 일어설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7.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크렘린 최고권좌를 노린다

보리스 엘친 러시아 대통령의 병세가 깊어지면서 예브게니 프리마코프(69) 총리가 러시아 정계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사실상 러시아의 ‘부통령’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본인의 부인에도 자연스럽게 유력한 차기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직업외교관 출신의 프리마코프는 경제위기 이후 하원의 총리후보 인준 거부라는 정치적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타협카드로 지난 9월 기용됐다.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인 경제위기 국면을 타개하는 위기관리자로선 역부족이라는 평이 없지 않지만, 모나지 않는 업무수행능력으로 여론의 지지와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크렘린에 첫발을 디딘 이후 권좌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는 프리마코프가 몸을 최대한 낮추고 야심을 드러내지 않는 이런 독특한 처세술로 크렘린의 최고권좌에 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8. 주룽지- 개혁, 타협은 없다

주룽지 중국 총리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총지휘하는 강골형의 매서운 시어머니다.

“나는 100개의 관을 준비해 놓고 있다. 99개는 부패한 관료들 것이고 나머지 한개는 내것이다”는 그의 말 속에서 개혁에 임하는 그의 타협없는 불 같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서열 3위인 총리에 올라선 그는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한다. 절대 접대행사나 의례적인 모임에는 나가지 않으며, 관료들에게도 ‘회의반 유람반’의 명승지 회의를 금지시키는 등 실질중시의 지시를 수없이 내려보낸다. 또 서론만 길고 본론은 없는 일본사람보다는 직접 핵심에 접근하는 서양사람을 선호해 일본쪽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행정, 국유기업, 금융의 3대개혁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중국에서 시장경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지도자로, 서방쪽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9. 미야자와 기이치- 오부치 넘어 세계경제로

미야자와 기이치(78) 일본 대장상은 지난 7월 말 오부치 게이조 총리에 의해 기용된 이래 일본 안에서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경제재생 내각을 표방한 오부치 내각의 성패에 열쇠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과 함께 세계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쌍두마차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 91∼93년에 일본 총리를 지낸 거물 정치인답게 그동안 선이 굵은 행보를 보였다. 경제위기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동남아권을 대상으로 300억달러 규모의 금융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미야자와 플랜’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내리기 전인 지난 8월 미-일간 금리차가 너무 크다며 미국에 금리인하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아펙회의에서는 미국의 집요한 임·수산물 시장 개방요구를 끝까지 거부해 미국 관리들을 거북하게 만들기도 했다.

10. 제임스 카메론- 떼돈 번 타이타닉 선장

세계 영화계는 올해 제임스 카메론 ‘선장’이 북대서양 심해에서 80여년만에 건져올렸다가 다시 빠트린 ‘타이타닉’호와 함께 침몰했다. 세계 각국 극장들은 영화 <타이타닉>을 보러 몰려드는 관객들로 붐볐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럿이 나누는 세기적 사랑을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는 타이타닉호에 실어 장대한 스페터클로 승화시킨 카메론은 “타이타닉에 목숨을 걸었다”고 큰소리쳤던 괴짜 감독.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카메론은 세기말 영화 테크롤로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원없이’ 실험했다. 영화 1백년사를 넘긴 ‘꿈의 공장’ 할리우드는 대서양을 상대로 노닌 카메론 감독 손으로 그 한바탕을 마무리하며 세계 영화계를 평정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제작비(3억달러)와 한없이 늘어지는 제작기간을 눈 깜짝 않고 버틴 카메론은 제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11개 부문을 거머쥐는 대기록을 세움으로써 그 뚝심을 보상받았다.

한겨레 국제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