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미국에서 제기된 “누가 중국을 잃었는가?”라는 질문처 럼 “아시아 금융위기는 누구 책임인가?”라는 쟁점은 계속 격론 의 대상이다.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재무부의 답변은 `투명성 결여’를 포함한 `정실자본주의’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에는 문제점이 있다. 정실 자본주의 관행은 동아시아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 빨리 성장하던 지난 30년 동안 이 지역 경제생활의 많은 부분을 이뤘다.
이보다는 투기적인 투자가들, 특히 헤지펀드들이 아시아 금융위 기를 촉발했다는 주장이 더 그럴듯하다. 이들의 영향으로 동아시 아 해외자본 유입액 변화는 96~97년에 1천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거대한 해외자본 유출입은 초기 발전단계였던 이 지역 금융시스 템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부 장관도 투자자들이 위험을 그리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방콕의 금융클럽에 새로 진입하는 금융회사들은 타이 금융회사들 의 부정한 역사를 알았지만 이들에 대한 융자를 중단하지 않았다. 타이의 `금광’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도 부족한 측면이 있다. 투기적 투자가와 은행 들을 둘러싼 온실과 같은 분위기가 지적돼야 한다. 동아시아 금융 회사들은 마치 술꾼이 술을 탐하듯 그들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경제매체들이 이런 분위기 형성에 주된 역할을 했다. 이 지역에 는 80년대 중반부터 경제분야의 매체와 통신서비스들이 많이 생겨 났다. 이들은 점차 호황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고성장을 찬양 했으며 성공담들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다.
경제매체들은 90년대초에 이 지역에 많이 생겨난 투자자문가 또 는 투자전략가들에 대한 불건전한 의존도도 높여갔다. 이들은 은 행, 투자회사, 증권회사,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신용평가회사를 위해 일하는 `전문가’들을 말한다. 이들 가운데 80년대말 뉴욕과 런던 주식시장의 붕괴를 피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피난민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들은 동아시아에 와서 어떤 나라에 투자하라, 무슨 주식을 사 라는 등 구체적인 투자조언을 해댔다. 이런 조언들은 지역 경제매 체들을 통해 마치 복음서에 나오는 절대진리인 것처럼 독자들에게 전달됐다. 이들은 세계의 자본을 아시아로 끌어들여야만 그들의 생계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너무 비관적인 그림은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잉기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데는 학계도 중요한 역할 을 했다. `아시아의 기적’이라는 관념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서 구의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다. 아시아의 성장이 예외적 사례라 는 데 대해 학계의 좌·우파가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었던 점은 놀 라운 일이다. 다만 성장의 이유에 대해서는 서로 대칭적인 이유를 들었다. 우파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시선을 두고 자유시장 덕분이 라고 했고, 좌파는 한국과 대만에 매료되어 개입주의적인 국가의 역할이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90년대초에 세계은행은 이들 좌파와 우파 사이에 중재자로 나섰 다. 세계은행은 양쪽 주장 모두에 각각 취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 다. 그러면서 세계은행은 `아시아 호랑이’들이 경제기초여건을 잘 다져 번영기에 들어설 태세가 갖춰졌다고 선언했다. 93년에 발간 된 세계은행 보고서 <동아시아의 기적>은 학계뿐 아니라 금융계와 업계에서도 성경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뒤 몇해에 걸쳐 동아 시아로 투기자본이 몰려들었고, 이는 아시아의 특수성에 관한 세 계은행의 진단과 관련이 있다.
요약하면 투자가, 언론인, 투자분석가, 학계의 세계적 네트워크 가 모두 호황심리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경제성장 실적, 기대감, 분석, 조언, 보도 등이 광적인 상황에 특유한 상승작용을 일으켰 다. 관련자 모두가 영원한 아시아 성공신화의 이미지를 유지시키 는 데서 이익을 취하는 제도적 이해관계를 구축했다. 그 속에서 융자와 투자의 최종 담보가 된 것은 연간 6~10%의 경제성장률이었 고, 이런 성장은 21세기에도 지속돼야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경 제들이 붕괴하면서 아시아 기적을 중심으로 한 기성질서도 같이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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