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만 챙기고 노동자는 버리는 '먹튀' 외국인투자기업에 맞서, 고공에 오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분투하고 있다. 대안은 무엇일까. 노동계는 '유치'에만 힘을 쏟고 '규제'에는 소홀한 정부의 외국인 투자 정책을 전환해 외투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을 묻는 한편, 외국인투자기업들에게 기준이 되는 국내 노동권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길을 찾고 있다.
민주노총은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장식, 이용우, 허성무, 정혜경 의원과 함께 '외투기업·투기자본 행태 고발과 제도 개선 촉구 현장증언대회'를 열고 이 같은 고민들을 나누었다.
증언대회에서 발언하는 최현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 참세상
'유치'에만 목매 '규제' 소홀한 한국 정부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미국 등 세계 주요 선진 산업국들은 산업정책의 상위 목표와의 정합성을 고려하여 공급망 재편 및 안정화, 가치사슬의 고도화, 자국 산업의 보호와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동시에 규제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반면, 한국 정부는 "거시적인 수준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외자 유치에 목매던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업정책이나 지역 균형발전의 전체적 밑그림이 부재한 가운데, 명목 금액 중심의 외국인 투자 유치 실적에만 매달려 체계적인 규제 노력에는 소홀하다"고 짚었다. 그는 사모펀드 등 단기 수익 추구 자본이 자유롭게 "특혜를 누리고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에 따르면 1970년 이후 4만 개가 넘는 외투기업이 국내에 들어왔지만 2022년 말 기준 남아있는 기업은 약 1만 7천 개 수준으로 매년 수 많은 기업들이 철수하고 있으나, 이들 중 다수는 노동조합도 없어 문제를 사회화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외투기업에도 '사회적 책임' 물어야
나원준 교수는 "제도화된 대책의 부재 속에 반복적으로 강제되는 재산권과 생존권의 맞교환"으로 외투기업들은 기술과 국부 유출, 조세 포탈, 글로벌 구조조정 등 수많은 '악행'을 벌여 "노동자는 생존권이 위협받고 지역 경제도 타격을 입는다"면서 외국인 투자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했다.
주요 과제로는 ▵ 외투기업 등에 대한 노동 및 환경 관련 규제 적용 배제 조항의 전반적인 개정 ▵ 투자 유치에만 초점을 둔 산자부가 주도하고 있는 NCP(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관련 분쟁해결을 위한 국내 연락 사무소) 개혁 ▵ 고용영향과 지역사회 파급효과 등을 고려한 외국인 투자 규제의 체계화와 강화 등을 제시하면서 외투기업에도 노동권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외국인투자 촉진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노동권 기준 강화 없이 외투기업 문제도 해법 없어
나 교수는 또한 "국내 노동법과 노동권 보호 제도가 우리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는 현실이 외투기업 문제의 근원에 놓여있다"면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 국제규범이 '최소 기준'으로 삼는 국내 노동권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근로기준법과 상법 개정의 필요성도 짚었다.
관련하여 프랑스의 ‘플로랑주법’도 참고사례로 제시됐다. 플로랑주법은 고용 영향이 큰 사업장이 폐쇄될 경우, 사용자가 대체 인수자를 물색해야 하며, 관련 정보를 노동자 대표 기구와 공유하고 협의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로 국내기업과 외투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발표 중인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참세상
공급망 실사 원리, '민주노조'의 내용 있어야
국제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공급망 실사 원리'에 대한 노동조합의 적극적 개입도 강조됐다. 공급망 실사 원리는 원료채굴 부터 완제품 소비와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전체에 걸쳐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 외투기업 본국 정부나 글로벌 원청에 사용자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나원준 교수는 "공급망 실사도 사용자들이 주도해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는 또 다른 경로로 쓰여 질 수 있다"면서 공급망 실사 원리가 현실에서 노동권 보장을 위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구현되려면 '민주노조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국제 노동권 기준, 노동자 국제 연대로 구현해야
삼성 등과 같은 한국기업의 해외진출과 현지 노동자 착취 문제, 외투기업의 국내 노동자 탄압 문제를 하나의 연결된 의제로 바라보며 국제적 노동권 기준을 확립하고 이를 구현하려는 민주노조 운동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나원준 교수는 올해 9월 폐쇄가 예고된 부산 말레베어공조 공장에 대해 독일 말레 그룹은 "한국 공장을 폐쇄하지 않으면 유럽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등 외투 자본은 "노동자들을 쪼개놓고 점령해 나가는 전략"을 사용한다면서 이러한 '분할 지배 전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가 중요하다고도 짚었다.
분투하는 외투기업 현장 노동자들..."외투기업 횡포 뿌리 뽑을 법제도 개선 투쟁 나설 것"
이날 현장에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비롯해 한국지엠, 발레오만도 등 외국인투자기업 현장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현실을 증언했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지분 100%를 소유한 일본 니토덴코는 특혜의 수혜자이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먹튀 행각을 벌이고 있다"면서 "고용을 승계할 또 다른 생산 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손배 가압류와 부동산 강제경매, 통장 압류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최현환 지회장은 "더 이상 우리 같은 노동자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박정혜, 소현숙 동지가 고공에 오른지 456일째"라면서 "외투자본들의 먹튀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 현실을 이제는 바꿔야 할 시기"라고 힘 주어 말했다.
민주노총 한성규 부위원장은 외국인투자법 개정안을 비롯해 "민주노총은 대정부 대국회 투쟁들을 더욱 강화하고 이를 통해서 외투기업의 횡포를 뿌리 뽑기 위한 법제도 개선을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윤석열 파면 이후 사회대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노동과 노동자가 존엄한 나라"가 꼽히는 가운데, 새로운 정부에서는 외투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