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년 본부장, “죽지 못하고 살아 돌아왔다”

코오롱노조탄압 책임자 구속과 장투문제해결 촉구 대회장에서

3월 31일. 중앙노동위원회 앞 코오롱 여성조합원 단식농성장을 떠나 과천에서 있을 화섬연맹 집회장으로 갔다. 코오롱 집회를 취재하고나면 징크스가 있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꼭 지나치고 만다. 그럴 만도 하다.

  중앙노동위 앞에서 4월 3일 판결을 앞두고 코오롱 여성 조합원 4명이 단식 2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복직투쟁 404일, 고압철탑 고공농성 25일, 위원장 손목절단. 취재를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도 험난하고, 머리는 더 이상 무슨 기사를 써야하는가 멍해진다. 오늘도 단식농성장 취재를 마치고, 과천 집회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갈아타는 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징크스를 깨는 날이 하루빨리 깨져야 하는데.

징크스를 깨는 날

집회장소에 도착하자 조합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투쟁의 기간만큼 친숙해진 것 같다. 며칠 전 구미 고압철탑 위에서 만난 김만수 조직국장 말이 떠오른다. “이기고 소주 한잔 마시고 싶다.” 정말 소주 한잔 마시고 싶다.

최일배 위원장과 이웅렬 회장 집에 들어갔던 김창모 조합원을 만났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라고요. 웃겨서 말이 안 나와요. 집에 들어가니 응접실에 카펫이 깔려있더라 구요. 혹시 카펫이 더러워질까 베란다에 나가 앉아있었어요. 카펫이 더러워질까 걱정하는 테러분자 보셨어요.”


이 회장 집에서 혹 감정에 복받치는 행동을 할까봐 위원장은 함께 간 조합원들을 자제시키느라 애썼다고 한다. 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며, 혼자 관리인과 경찰을 만났다고 한다.

어떤 테러분자

“우리가 집에 들어온 것은 죄를 받겠다. 제발 회장님과 면담을 하게 해 달라. 5분이면 된다. 우리 요구안만 전달하고, 우리 발로 나가겠다. 법적 처벌은 받겠다.”

위원장의 외침은 경찰의 강제 진압이었다. 위원장은 칼을 꺼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손목에 칼을 대고 있는 위원장을 경찰은 넘어뜨렸다. 위원장의 다음 선택이 뭔지 뻔히 알 경찰은. 누가 위원장의 손목을 칼로 그었는가. 의문이 든다.

김창모 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코오롱본사 진격투쟁 때 울부짖으며 칼을 꺼냈던 최 위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메라 렌즈 뒤로 눈물을 흘리며 사진을 찍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날 회사와 면담을 마치고 내려와서 기자에게 하던 말. “손목을 긋지 못한 게 한이 된다.”

누가 손목을 그었는가

집회장에는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올라왔다. 그렇게 모인 참가자가 250명. 많고 적음의 문제는 최소한 코오롱 투쟁에서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미 코오롱 해고장에게 구속 결단은 떠난 지 오래고, 목숨을 서로 걸고 나서겠다는 때이기 때문이다.

집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코오롱 조합원은 두 줄로 길을 만들어 집회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쳐 주었다. 단 한명이라도 함께하겠다는 노동자가 고맙고,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코오롱 조합원들이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두 줄로 서서 인사를 한다.

집회에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겠다는 연락을 한 배강욱 화섬연맹 위원장이 집회 중간에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 배 위원장이 “이제 코오롱 동지들이 아닌 화섬연맹, 민주노총이 이 싸움을 맡아 당차고, 강하게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집회에 앉아 있던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화섬연맹 각 지역 대표들도 “투쟁”이라고 답을 했다.

투쟁이라고 답을 했다

화섬연맹은 30일 위원장 단식을 시작으로, 코오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각 단위노조위원장까지 단식에 들어가겠다는 결의를 중앙위원회에서 했다고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투쟁, 노동자의 생존권은 곡기를 끊고, 손목을 끊고, 목숨마저 버려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유서에 가까운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 김진년 화섬연맹 대경본부장이 나타났다. 어제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전달돼 한시름 놓았지만,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얼굴을 보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죽지못하고 다시 살아돌아왔다는 김진년 화섬연맹 대경본부장. 주먹이 예사롭지 않다.

이웅렬 회장 집 투쟁과정에서 무릎을 다쳐 깁스를 했던 김 본부장은,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지면서 깁스를 스스로 풀었다. 정말 마지막 남은, 코오롱에서 이제껏 할 수 있는 투쟁 다하고 마지막 남은 방법(?)을 감행하기 위해 깁스를 풀었다.

“어제 다시 병원에 가서 깁스를 했는데 의사한테 많이 야단맞았어요. 미쳤다고. 죽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얻은 삶, 이제는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더 이상 보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하나 남은 마지막 방법

다시 태어난 김 본부장의 삶도 코오롱 투쟁 승리다. 마지막 시도하려고 했던 모종의 방법은 아직 유효하다고 한다. 절룩거리며 집회장을 오가는 김 본부장의 다리는 위태롭고, 더욱 꼭 다물어진 입은 강하기보다는 무서워 보인다.

  코오롱 본사 출입구는 대형버스로 봉쇄 되었다. 버스 창문에는 철조망을 달았다.

집회시작 전, 노동부 차관과 민주노총, 화섬연맹, 코오롱노조는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차관이 아니라 장관이 나왔다는 소문이 면담 중에 집회장에서는 떠돌았다. 어제 분명 민주노총 간부한테 차관이라고 들었는데, 장관이 나왔으면 뭔가 선물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예감이 들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차관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는 “노동부는 앞으로 열심히 회사가 교섭에 나오도록 애를 쓰겠다”라는 역시나의 결과였다. 투쟁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구나. 잠시 착각에 빠졌다.

역시나 대화로는 풀리지 않았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코오롱 본사까지 행진을 했다. 본관 건물에 코오롱 조합원들이 스프레이로 풀을 뿌리면, 연대 온 노동자들이 코오롱 불매 선전물을 본사 건물에 부쳤다. 지난 본사 점거 투쟁의 교훈을 얻어, 회사는 출입구 앞에 대형버스로 막아두었다. 유리창에는 경찰버스처럼 철망을 치고.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코오롱 본사에 불매운동 선전물을 붙이고 있다.

아, 저 버스 살 돈이면, 몇 명의 해고자의 월급일까. 용역경비에 한 해에 백억씩 쓰며 정리해고를 한다는 코오롱. 건물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철탑에서 만난 김만수 씨의 목소리가 다시 발길을 돌리는 내 귀에 울린다. “해고투쟁을 하면서 좋은 친구를 만나 기쁩니다. 빨리 이기고 철탑에서 내려가 얼굴보고 소주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지.

소주 한잔 나누는 날

그 보고 싶은 얼굴들은 과천에서, 중앙청에서, 국회에서, 회장 집 앞에서, 중앙노동위 앞에서. 곳곳에 흩어져있다. 하지만 404일을 한목소리로 싸우고 있다.

어제 민주노총 기자회견장과 달리, 31일 과천 집회에는 기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코오롱은 집회를 열어서는 기사거리도 되지 않는다. 구미공장 철탑 아래 화들짝 핀 개나리가 해고자 얼굴에도 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