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너머를 꿈꾸며

민주주의를 흔든 민주주의 법

1987년 이후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갔다는 확신이 있다군부의 폭력 통치가 종식되고 권력분립이 이뤄졌다정보기관의 고문도 사라졌고 거리에서 최루탄도 사라졌다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었다군대를 동원한 쿠데타비상조치계엄령도 옛것이 되었다는 것을 윤석열 파면이 보여줬다윤석열 파면 결정문이 보여주듯 법치국가의 면모를 갖춘 듯하다.

그러나 임기 내내 윤석열의 행보는 법적 민주주의를 법으로 흔드는 것이었다윤석열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행사한 거부권은 2년 반만에 25차례에 달했다대통령의 이의’ 때문에 양곡관리법간호법노란봉투법방송법이태원 참사 특별법채상병 특검법전세 사기 특별법민주유공자법 등 각계각층의 요구는 가로막혔다모두 대통령에게 위임된 권한 행사라는 점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독선과 오만의 표현이자 권력 남용이었다.

대통령의 오만과 횡포는 특히 노동에 집중되었다갖은 법을 동원해 건설노조를 약화시키고 간부들을 감옥에 보냈으며안전운임제를 요구하는 화물연대의 투쟁에는 위헌성 논란이 있는 업무개시명령을 들이댔다법을 고쳐서라도 노동시간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폭력이었다법은 노동자에게 민주적이지 않았다.

대통령과 그 옹호 세력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용해 권력을 마음껏 남용했다바꿔 말하면 87년 투쟁을 수렴한 민주주의 시스템이 허구였다는 게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자들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윤석열의 쿠데타는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라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마무리되었지만그의 비민주적’ 폭력은 사회 곳곳에 남게 되었다.

1987년 헌법과 법률 개정 돌아보니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노동자대투쟁을 거쳐 한국 사회는 시민사회로군정에서 민정으로 이동했다대투쟁 이후 여야가 만나 개헌을 합의해 그간의 비정상적폭력적 헌법 개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못 박았고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제한할 체계를 구축했다임기는 5년 단임제로 했고 국민이 선거로 직접 선출했다대통령이 가진 국회해산권을 제한했고 헌법재판소도 설치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 개정은 노동자의 요구를 담지 못했다당시 헌법과 노동법 개정 국면에서 한국노총은 노동3권의 완전보장으로 단결권 보장과 단체행동권의 법률 유보조항 삭제공무원의 노동기본권 허용국공영기업체 등에서 단체행동금지 규정의 삭제 등을 요구했다근로자의 경영참가권과 이익분배권을 요구하기도 했다그러나 여야 간에 진행된 논의는 달리 흘렀다민정당의 현행유지 주장에 부딪혔고 결국 헌법 개정 결과 공무원의 단결권은 여전히 인정되지 않았고 노동자의 기본권 확충은 이뤄지지 않았다이후 노동법 개정에서도 노동조합과 노동단체학계야당까지 함께 모여 만든 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실현되지 못했다거리의 투쟁이 국회로 간 순간사회민주화를 요구하는 함성이 제도 민주화 논의로 이전된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6월 항쟁으로 쟁취한’ 헌법에 따라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서 쿠데타 군부 세력은 그대로 이름만 바꾼 채 권력을 쥐었다그것도 선거를 통해 합법성까지 부여받았다당시 여야는 각자 꿈을 꾸며 대통령 단임제직선제권력 분산을 집중 협의했다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의 관심도 그랬다. “모두가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공방전에 관심을 집중한 결과였고 군부독재 타도라는 역사적 경험과 요구 안에 갇혀버린 결과였다.

민주의 부조화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국민의힘의 옹호극우세력을 동원한 민주주의 유린거짓과 폭력 동원 등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사회는 제도적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 모습을 갖췄을지 모르지만그 내면은 여전히 군부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민주’ 하면 떠오르는 수평적 관계존중토론불의에 저항 같은 이미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노동자 민중을 배제한 개혁민주주의는 인민의 권리를 확장하고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는 못 미친 것이 부조화의 이유다오히려 모두의 민주적 요구와 상상력은 민주적’ 법과 절차에 의해 제한되었다.

노동운동 진영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질서를 이유로 집회 시위의 자유가 제한되어도, ‘투명성을 내세워 노동조합의 회계를 공시하라는 중대한 권리 침해가 발생했어도 적응해갔다조직 내 분쟁은 논의와 협의보다는 법에 따른 깔끔한 해석과 판단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졌다점점 법이 담은 민주주의 테두리에 안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2025년 윤석열 탄핵 광장의 다양한 요구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17년 박근혜 탄핵 촉구 광장.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그럼에도 다시 민주주의 너머를 향해

박근혜윤석열의 권력 남용은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혹은 개인의 일탈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 지배계급 세계관의 표현이었다두 번의 대통령 파면은 헌법 조항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광장의 열망과 투쟁이 있어 가능했고 이것이 인민의 세계관이다.

우리는 이미 2016년 촛불 광장에서 일상 민주주의의 확대소수자의 권리 쟁취노동자의 권리 회복재벌 타파보편적 복지 실현입시 경쟁 지양평화와 생명 존중 등 다양한 요구를 모았다한국 사회가 법 제도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미완의 촛불은 또다시 제도권 정치로 수렴될 것인가민주주의 너머 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인가기로의 시간이다.

덧붙이는 말

정경원은 『전노협백서』 발간을 계기로 노동운동 자료를 모으고 노동자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08년 이후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역사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가스공사노동조합 30년사』, 『서울지하철노동조합 30년사』 등이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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