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생각하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98) 콜텍 임재춘 씨 단식농성 35일 차, 교섭 있던 날

놀려갖고 벌 받는가봐

“정갈하게 해야지.”

4월 15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 앞 콜텍지회(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소속) 농성장에 가니 김경봉 씨가 천막 앞에 서서 손톱 손질을 하고 있다.

“오늘 안하던 세수도 했어.”

콜텍 교섭을 1시간 앞둔 경봉 씨의 모습이 경건하고 진지하다.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에게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물었다.

“나는 꿈을 안 꿔~”

교섭을 앞두고 긴장되어 잠을 못 잔 건 아닌지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심란한 꿈을 꾸지 않고 푹 잤다면 다행이다 싶다.

단식농성 35일 차인 임재춘 씨는 천막 안에서 수녀님 등 연대 방문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몸무게 45kg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검은 얼굴에 피로감이 가득하다. 현기증과 불면증도 그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간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 단식할 때 놀려갖고 벌 받는가봐.”

열흘 전 걱정하는 필자에게 희미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재춘 씨, 이제는 웃을 기력도 없어 보인다.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재춘 씨의 건강 때문에 최소한의 휴식을 위해 면회 제한을 시작 했다. 장기간 음식물 섭취를 못하는 상태에서 잠도 충분히 못자는 게 걱정이다.

“남들은 단식하면 잠을 잘 잔다고 하는데, 나는 못자. 새벽에 일찍 일어나. 대중없어. 4시에 일어날 때도 있고 5시에 일어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한 두 시간 간격으로 깰 때도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가 해가 뜨면 세수를 하고 8시에 회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아침 선전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나마 침을 맞은 날은 잘 잔다고 하니 다행인 걸까. 얼마 전에는 까칠한 양 볼에 붉은 반점까지 올라왔었는데, 다행히 없어진 것 같다.

  단식농성 35일 차, 연대 방문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임재춘 씨 [출처: 연정 작가]

그러는 동안 세상이 썩어갔구나

천양희 시인은 <새벽에 생각하다>라는 시에서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연인에게 달려가며 빨리 가고 싶어 30분마다 마부에게 팁을 주었다는 발자크”가 생각나고, “너무 외로워서 자신의 얼굴 그리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다는 고흐의 자화상”과 “좌우명이 진리는 구체적”이라던 브레히트도 생각난다고 했다. 자신의 뼈와 살을 태우고, 잠 못 드는 재춘 씨는 새벽에 홀로 깨어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 하는 거지. 걱정하는 거지. 이 투쟁이 어떻게 될까? 나라가 어떻게 될까? 앞으로 후배들에게 뭘 물려주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을 해. 왜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재춘 씨는 콜텍 문제도 걱정이지만, 정부의 잘못된 일자리 정책 때문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꿈이 없다며 걱정을 했다. 재춘 씨는 투쟁을 시작하고 세상 헛살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세상이 이런데, 우리는 왜 돈만 벌려고 했지? 나라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러는 동안 세상이 이렇게 썩어갔구나.”

교섭이 있는 이 날도 새벽에 잠이 안와 인근 공원을 서성였다고 한다. 재춘 씨는 새벽 산책을 하며 정리해고를 당하던 2007년을 회상했던 이야기를 SNS에 올렸다.

“한국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시켜놓고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연 간 100만대를 생산 한다고 자랑 한다. ‘과연 그 기타가 명품일까?’ 생각해 보았다. 옛날 한국의 기타들이 다 사라지고 있다 참 안타까울 뿐이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 콜텍 투쟁, 우리 사회의 현실, 자신의 고단했던 과거와 단식농성까지 하고 있는 현재,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미래... 재춘 씨의 새벽은 시작도 끝도 없는 생각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재춘 씨의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새벽에 잠 못 들고 뒤척일 때면 그 시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재춘 씨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의 검은 얼굴이 떠오르고 깊은 한숨과 탄식 소리가 들려온다.

  교섭 전 노동조합 입장 언론 브리핑 장면 [출처: 연정 작가]

‘마지막이라는 각오’와 ‘원칙적 대응’ 사이

재춘 씨를 농성장에 남겨두고 이인근 지회장과 김경봉 조합원 등 노조 측 교섭단이 교섭 장소(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로 출발한다.

교섭에 앞서 교섭에 임하는 노동조합의 입장을 공유하는 언론 브리핑을 한다. 교섭단 대표 중 한 명인 금속노조 이승렬 부위원장은 “오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교섭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리고 해고자 명예에 관한 복직 문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므로 사측은 반드시 해고자들에 대한 명예로운 복직 방안을 내놓아달라고 호소했다. 또, 오늘 당장 어떻게 될 지 장담하기 어려운 임재춘 조합원을 고려해 이날 늦게라도 박영호 사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교섭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도록 그동안 가졌던 분노와 불신은 남겨두고 저희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교섭장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문이 또다시 좌절의 문이 아닌 희망의 문이 되기를 저희들은 희망합니다.”

이인근 지회장 역시 이 교섭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교섭에 임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측의 결단을 간절하게 호소한다.

그사이 콜텍 사측이 교섭 장소에 들어갔다. 기자들은 노조 측 브리핑이 끝나고 사측 입장을 듣기 위해 교섭 장소로 갔다. 사측에서는 박영호 사장과 이희용 상무 등 3명이 참석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박영호 사장이 짧은 답변을 한다.

“어떤 마음으로 교섭에 임하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회사에서 원칙대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노조 측에서는 복직을 가장 중점적으로 얘기를 할 거라고 했는데요.”

“가능한 이야기는 서로 합의해서 하겠지만,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는 회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도 많습니다.”

“어떤 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중에 노조하고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오늘 안에 끝내실 생각으로 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그건 서로가 상의하면서 결정할 문제겠죠.”

콜텍 박영호 사장이 교섭에 임하는 태도는 노동조합 측과 차이가 있었다. 박영호 사장은 마지막이라는 말도,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긴박함이나 간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노조 교섭 대표들이 들어와 사측과 악수를 하며 자리에 앉는다. 박영호 사장이 이인근 지회장 등과 악수를 하며 “고생 많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한다. 잠시 후, 교섭장의 문이 닫힌다. 이인근 지회장의 말대로 저 문이 ‘희망의 문’이 될 수 있을까?

  교섭 테이블에 앉은 콜텍 노사 [출처: 연정 작가]

11시에 교섭이 시작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교섭장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박영호 사장의 목소리 같았다. 고성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곧 점심시간 정회를 한다. 오전 교섭이 끝나자 마스크를 낀 남성들이 우르르 몰려와 박영호 사장을 에워싸며 호위한다. 박영호 사장은 이들에게 “오늘 고생했어.”라는 말을 건네고 검정색 벤츠를 타고 교섭 장소를 떠났다.

이승렬 부위원장이 노조 측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했고, 박영호 사장이 본인은 고령이고 굳이 교섭에 참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이후 교섭에는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의 간단한 교섭 경과를 기자들에게 전달한다.

  오전 교섭이 끝나고 호위를 받으며 교섭장을 나서는 박영호 사장 [출처: 연정 작가]

강하게 보여야 한다

오전 교섭이 끝나고 콜텍 앞 농성장에 오니 점심 선전전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단식을 하고 선전전을 함께 하며 임재춘 씨의 곁을 지키고 있다. 임재춘 씨도 피켓을 들고 서있다. 앉아서 하지 그러냐고 하니 “강하게 보여야 한다”고 한다. 뼈만 앙상한 몸으로 강하게 보여야 한다는 말에 가슴이 아려온다. 재춘 씨가 교섭에 대해 물어 알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박영호 사장이 이후 교섭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재춘 씨의 검은 얼굴이 잿빛이 된다.

“박영호 사장이 안 나오면 교섭 깨지는 거 아녀? 이희용 상무는 아무 권한이 없어.”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어 박영호 사장이 교섭에 안 나와도 직접 관여하면서 진행할 거라는 이야기로 위로를 해보지만, 재춘 씨의 얼굴에 드리운 실망의 기색은 걷히지 않는다.

  콜텍 본사 앞에서 점심 선전전 피켓팅을 하고 있는 임재춘 씨 [출처: 연정 작가]

  4월 15일, 점심 선전전 장면 [출처: 연정 작가]

점심 선전전이 끝날 무렵, ‘콜텍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 활동가가 재춘 씨를 천막 안에 들어가 쉬게 한다. 이날, 7시간 교섭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다음날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재춘 씨는 또 새벽에 깨어 많은 생각을 하겠구나.

고단한 하루에 대한 달콤한 휴식인 잠은 의식을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죽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죽음과 닮은 잠은 오늘이라는 사건과 그 시간을 살았던 ‘나’를 소멸시켜 내일이라는 새로운 오늘과 만날 수 있는 몸으로 세팅하는 것이다. (안도균, <양생과 치유의 인문학 동의보감>)

  콜텍 단식농성장에 붙어 있는 재춘 씨의 휴식 시간 안내문 [출처: 연정 작가]

이런 면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재춘 씨는 35일 동안 새로운 오늘을 만나지 못한 채, 어제 같은 오늘 그 오늘 같은 내일을 살고 있다. 콜텍 해고노동자 모두 정리해고를 당한 2007년부터 13년 동안 그와 같은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들의 시간은 2007년에 멈추었을 지도 모르겠다. 재춘 씨가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는 제목의 책을 썼지만, 해고의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콜텍지회 조합원들에게 온전한 오늘과 내일이 있을지 의문이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모든 이들의 심정이 비슷할 것이다.

4월 16일, 재춘 씨가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36일 째가 되는 날. 다시 교섭이 열렸지만, 콜텍 사측은 사과와 복직 위로금 어느 것 하나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2시간도 안 되어 교섭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전혀 새롭지 않은 오늘이다.

재춘 씨에게 살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물었다. 처음에는 그런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서야 이야기한다.

“일할 때가 좋았지. 일하고 나서 밥 먹고 소주 한잔 하는 거?”

그런 날엔 단잠을 잤겠지. 고맙고 미안한 봄날이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마지막으로 마셸투르니에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 천양희 시인의 시, <새벽에 생각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