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씨,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기고②] 김진숙의 고공투쟁, 거기서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씨가 고공농성을 이어갈 때,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은 희망버스를 탔다. 긴긴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고 난 뒤,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씨를 멀리서 올려다보았다.


가만히 서 있기 힘든 곳, 바람이 불면 몸이 흔들리는 곳, 더울 땐 더 덥고 추울 땐 더 춥고 비오면 미끄러질 수 있는 곳,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곳, 대소변도 봉지에 담아내려야 하는 곳, 그 극한의 환경에 김진숙 씨가,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질문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어떻게 버티느냐가 아니라 우리 몸에 익숙한 방식으로 그 질문을 이어갔다. 누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언제까지, 왜……. 질문에 맞는 답을 찾으려면 적절한 자료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접한 기사와 읽을거리들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김진숙 씨를 몇 번이나 보았다.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어린이청소년책들을 가져갔다.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온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들에게 책 한 권 사기 힘든 노동자들에게, 그 책은 희망의 증거였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고 말랑말랑하고 아름다우면서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것 같은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이 김진숙 씨와 뜻을 함께 한다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 뒤로 우리는 여러 현장에 뜻을 보탰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뒤에도 괴괴한 적막이 흐르던 골목에 하루라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일을 벌였다. 많은 그림책작가들과 어린이책 작가들, 청소년책 작가들이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웃음이 사라졌던 골목에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우리의 시도는 그 뒤에도 이어졌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아이들을 위해 ‘와락’에 찾아가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다. 몇 달 간 이어진 활동에서 작가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출처: 노동과 세계]

우리가 쓰는 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가 쓰는 글은 어떤 사람을 어떻게 바뀌게 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우리가 쓰는 글로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도 세월의 파도를 넘으면서 또 다른 현장을 보았다.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세월호 참사였다.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에게는 꽤 많은 독자들을 잃은 사건이었고, 참사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참담함이 우리를 덮쳤다.

광화문 광장에 예술인들이 텐트를 쳤을 때도 함께했다. 돌아가면서 텐트를 지키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촛불을 들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타일에 그림을 그렸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그린 타일을 구워서 진도 팽목항에 붙였다.

그 후로도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은 고민을 거듭했다. 우리 삶에서 틀어지고 부서진 부분이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로 저작권이 잘못 쓰이고 있는 사례를 바로잡고자 했다. 덕분에 공모전에서 저작권을 주최 측이 가져가는 관행들을 하나씩 고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저작권은 저작재산권을 갖고 있는 작가의 몫인데도 작가가 철저하게 배제된 채 2차적 사용이나 활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세상을 바꾸는 데 수많은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그 노력을 기울이려면 한 발짝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미투 운동이 필요했듯이 저작권에서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김진숙 씨의 투쟁은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이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잘못이라고 말하면 큰일 나는 사회에서는 발전도 희망도 멈춘다.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불평론자라고 낙인찍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소통과 포용 또한 바라기 힘들다.

우리는 늘 꿈꾼다. 아이들이 밝고 희망찬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그 사회는 불편부당한 문제들을 해결한 뒤에야 이룰 수 있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 꿈에는 노동자와 고용주 모두 인간이라는 출발점에 선 뒤에야 가능하다. 어린 시절에 배우고 익혔던 정의를 잊지 않는 어른으로 사는 길, 그 길을 기억하기 위해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은 여전히 글을 쓴다.

여전히 수많은 김진숙 씨가 고공농성을 이어간다. 힘든 걸음이지만, 그 걸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러니 당신,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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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소식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