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방문한 대통령 “현대차, 노사협력도 1등”

[1단 기사로 본 세상] 고용보험 가입 ‘자율에 맡기라’는 신문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한국보험법학회가 지난달 30일 추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여러 세션 가운데 보험설계사 고용보험 적용을 둘러싼 세미나도 열렸다. 이 세션 주제발표는 대형로펌 충정의 한 변호사가 했다. 그는 “특수직종에 대한 고용보험은 노무 특성, 보수 체계 등 보험 대상자의 특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설계사는 일자리 감소가 우려되기 때문에 당사자가 필요하다고 할 때만 가입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신문은 지난달 31일 12면에 이를 1단 기사로 실었다.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가 잇따라 숨져 이들에게도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등 4대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때였다. 지금도 택배노동자는 산재보험 가입대상이다. 이들보다 훨씬 안정적이라 사회보험의 도움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정규직은 4대보험 가입이 의무다. 정규직의 4대보험 의무가입에 시비 거는 집단은 없다.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며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특수고용직은 정규직보다 훨씬 더 사회보험이 필요한데도, 경제단체와 보수언론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자율가입을 요구한다. 올 들어 잇따라 숨진 택배노동자가 자율가입이란 미명 하에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썼다. 신청서가 사실상 대리점주의 강요로 작성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어떤 대리점에선 하나의 필적으로 여러 명의 신청서를 대필한 흔적도 나왔다. 이쯤 되면 허울뿐인 ‘자율’이다.

  매경 10월 31일 12면

보험법학회 학술대회에서 나온 주제발표는 경제단체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복했다. 학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발표자 개인의 의견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매일경제는 이 기사 제목을 “보험설계사 고용보험 자율적으로 가입해야”라고 달면서 ‘보험법학회 추계학술대회’라는 작은 제목까지 달아, 마치 학회의 공식 의견처럼 비치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 발 ‘전국민 고용보험’ 논의에 경총이나 상의 등 경제단체가 국회에 반대 입장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학회가 이 논의에 뛰어든 경우는 드물다. 사실 보험법학회는 보험설계사의 4대보험에 전문성을 갖춘 학회도 아니다. 이 학회는 보험 관련 법을 주로 다뤄왔다. 보험설계사 4대보험 가입 여부는 노동법을 다루는 학회가 논해야 할 주제다. 그런데도 이 용감한 발표자는 “특수직종에 대한 고용보험은 노무 특성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보험법학회가 언제부터 보험설계사의 노무 특성을 그렇게 세심하게 신경 썼는지 의아하다.

매일경제는 이 짧은 1단 기사의 말미에 “고용보험 가입이 실행되면 저성과 보험설계사의 일자리 상실, 고용보험을 받기 위한 철새 설계사들의 모럴 해저드, 고용보험 적용에 따른 설계사들의 세금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고용보험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보험사 이익을 살뜰하게 챙기는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보험설계사의 세금 부담을 우려해 자율 가입에 맡기라는 주장엔 웃음만 나온다.

  위에서부터 10월 31일 매일경제 3면과 한겨레 8면, 김수억 전 지회장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현대차 울산공장 방문해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만났다. 여러 신문이 이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1면과 3면에, 한겨레와 경향은 각각 8면에, 한국일보는 5면에, 동아일보는 2면에, 조선일보는 19면에 보도했다.

매일경제가 3면에 보도한 ‘넥쏘 타고온 文대통령, 현대차 특급칭찬 혁신과 코로나 극복, 노사협력까지 1등’이란 제목의 기사엔 ‘노사협력까지 1등’이란 표현도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기사엔 “이날 현장에는 정 회장과 더불어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도 자리를 함께했다”는 문장도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에선 “불법파견 범죄자 정의성을 처벌하라”, “문재인 대통령 불법파견 해결 약속 이행하라”를 외치는 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행사장 안으로 가려다가 현대차 관리자와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막혔다. 김수억 전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문 앞에서 시위하던 노동자들을 경찰이 불법 운운하며 연행하려 했다”고 올렸다. 김 전 지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10대 재벌 기업의 불법파견만 바로 잡아도 40만 명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불법파견 해결을 약속했는데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잊을 만하면 대통령이 대기업 방문해 재벌 만나서 사진 찍는 이미지 정치, 이젠 그만 둘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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