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해 “합리적 해법을 찾겠다”고 언급하면서 야당과 노동계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대법원에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린 터라, 박 대통령이 법원 판결조차 부정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앞선 9일, 박 대통령은 워싱턴 D.C에서 대니얼 애커슨 GM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GM회장은 “통상임금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면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이에 박 대통령은 “GM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대한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그간 사용자들은 관행적으로 상여금, 식비 등의 명목으로 통상임금을 축소시키고 근로시간을 늘려 초과이윤을 챙겨왔으며, 노동계는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며 부당하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주)금아리무진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시간외 근무수당 등 각종 수당의 산정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GM노동자들 역시 통상임금 소송 1, 2심에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대법판결에도 행정지침을 바꾸지 않아 현재 남동발전, S&T중공업, 삼성중공업, 현대차 등 전국 62개 노조에서 통상임금 범위 확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홍영표 민주통합당 의원은 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미국 GM에서 대통령에게 이 통상임금 건을 문제제기한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고 삼권분립에 의해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게 되면 정부나 기업이나 국민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또한 미국에서 대통령이나 경제수석이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올바르지 않은 것”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행정부의 태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논평을 발표하고 우려를 표했다.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GM회장의 문제제기에 공감한 것이라면 사법부의 판단을 거스르겠다는 것을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며 “나아가 외국대기업의 투자축소 위협에 굴복하여 스스로 공언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라는 시대적 과제에 역행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제 나라 노동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GM이 그간 부당한 이득을 취해왔는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조차 없고, 오히려 한국 노동자들이 문제라는 식의 대통령 발언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투자 운운하며 한 나라의 대통령을 협박하는 외국기업 회장의 오만하고 주제 넘는 발언에 박근혜 대통령이 장단 맞춰가며 공감해 줄 사안이 결코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방미길에 동행해 GM 회장의 통상임금 지적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협력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본분’이라고 말한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도 자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