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통합 건강보험노조도 전교조 법외노조화 수순 밟나

‘해고자 조합원 자격’ 규약 시정 요구...1만 조합원 중 해고자는 12명
노조 시정 움직임에 해고자 강력 반발...“전교조 투쟁 찬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나뉘어 활동했던 건강보험공단 내 두 개의 노조가 통합노조로 새롭게 출범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내 최대 규모 조직이었던 전국사회보험지부와 한국노총 소속 건강직장보험직장노조는 지난 10월 1일, 통합규약 제정 찬반을 묻는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하고 통합노조 출범의 마지막 절차를 밟았다. 지난 14년 간 이어져 온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청산하고, 조합원 1만 여 명에 달하는 거대 단일노조로 뭉쳐 대정부 협상력 및 투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1만 여 단일노조로 출범한 건강보험노조는 출범 초기부터 ‘대정부 협상력 및 투쟁력’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고용노동부가 해고자 12명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노조 설립 필증을 교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당해고 된 조합원의 자격을 인정하는 규약을 문제 삼아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한 전례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 전국사회보험지부]

노동부, ‘해고자 조합원 자격’ 규약 시정 요구,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과 유사

노조는 통합 절차가 마무리 된 직후인 지난 2일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를 냈다. 하지만 노동부는 노조 규약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설립신고사항 보완 요구를 통보해 왔다. 노동부의 규약 보완요구사항은 △해고자 조합원 자격인정 관련 조항 △임원선거 관련 조항 △단협체결 관련 조항 등 총 3가지다.

그 중 핵심은 ‘해고자 조합원 자격인정’ 여부다. 현재 통합노조 규약에는 ‘부당해고의 경우는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상 ‘해고된 자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 재심판정 시 까지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조문을 재해석해, ‘부당해고자가 부당노동행위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는 조합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규약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지 않은 부당해고까지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있어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지 않으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도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없다는 설명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에도 전교조에 ‘부당해고 된 조합원은 자격을 유지한다’는 규약을 문제 삼아 법외노조를 통보한 바 있다. 전교조는 조합원 총투표 결과 68.59%의 지지율로 노동부의 규약 시정명령을 거부키로 결의하고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지난 9월에는 서울고등법원이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전교조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정부의 노조 탄압에 제동을 걸었다.

또한 재판부는 ‘해고된 교원은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교원으로 간주되고, 법적 소송이 이뤄질 때는 교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교원노조법 2조가 단결권을 침해해 과잉금지원칙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상태다.

노조, 23일 중운위 27일 총회 열고 규약 개정 여부 결정
해고자들 반발 “투쟁의지 없어...전교조 투쟁에 찬 물 끼얹나”


문제는 건강보험노조가 애초 통합취지와는 다르게 정부의 압박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노조 내부에서는 집행부가 해고자를 배제하는 정부의 규약시정 요구를 받아들이려 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현재 대응책을 고심 중인 노조가 만약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향후 대정부 투쟁은 고사하고 노조 내부 갈등만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통합노조 규약에 적시된 ‘부당해고의 경우는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통합노조 출범 전 최종 심의를 거쳐 1일 조합원 총회에서 최종 확정된 내용이다. 앞서 지난 9월 24일 양 노조는 공동중앙운영위원회를 열고 규약안을 최종 심의했고, 1일에는 통합노조 조합원 총회에서 규약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설립신고사항 보완 요구통보 이후, 노조는 해고자 조합원 자격인정 관련 규약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노조는 지난 1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해 규약 재수정 방침을 논의했고, 23일 중앙운영위원회에서 규약 수정 여부 및 문구를 확정 지을 예정이다. 27일에는 또 한 번 조합원 총회를 열어 규약 수정과 관련한 조합원 투표를 진행한다.

회의에 참여한 한 중집성원은 “14일 중집에서 해고자 조합원 자격 인정 관련 규약 개정 논의가 진행됐다. 아직 세부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노동부의 요구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부당해고의 경우는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규약을 개정하자는 요구가 있었다”며 “중집 내부에서도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워낙 민감한 내용이다 보니 중집은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중집성원의 의견이라기보다는 양 노조 위원장의 의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해고자들은 중운위와 총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하급 회의체인 중집에서 뒤집으려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노조 관계자는 “노조에서는 노동부의 보완 요구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1일 규약을 총회에 부쳤을 때도 ‘노동부가 보완 요구를 하면 새로 논의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 놨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민주노조인 만큼 이해관계가 다른 분들이 많다. 물론 해고자 자격도 중요한 부분이고 존중 해 줘야 하지만, 통합정신까지 훼손하기는 어렵지 않나”라며 “(규약개정 거부로) 법외노조가 되는 것 까지는 상정하지 않고 있다. 개별노조에서 뚫고 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 다시 한 번 조합원들의 총의를 모아 양립할 수 없는 가치를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고자들로 구성된 건강보험노동조합 해복투는 20일 성명을 발표하고 “총회에서 조합원의 높은 찬성률로 의결된 규약을 지켜내기 위한 단 한 번의 가시적 투쟁 없이, 누구나 예견했던 노동부의 1차 보완요구에 꼬리를 내려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노조의 규약을 바꾸어서 갖다 바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구)사회보험노조 현장노동자회도 성명을 통해 “자주적 단결권과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전교조를 위시한 민주노조들과 연대해 함께 투쟁하진 못 할 망정, 그들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라며 “통합노조 집행부는 노동부의 말도 안 되는 보완요구 공문에 편승해 중운위 결정을 뒤집고 민주노조 정신을 말살하려는 기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복투 관계자는 “노조 집행부가 투쟁으로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하다못해 법리적,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을 고민하지도 않고 있다. 이는 사회보험노조가 지켜 온 민주노조 원칙에 맞지 않다”며 “전교조와 전공노 싸움도 이어져오고 있는 만큼,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단일노조로 첫 걸음을 뗀 건강보험노조는 오는 11월 위원장 선거에 돌입하며, 내년 4월 이후 상급단체를 결정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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