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나선 홍콩 청년을 만나다

[워커스] 자본이 모인 홍콩, 분노를 깨운 청년①

[워커스 이슈] 자본이 모인 홍콩, 분노를 깨운 청년

①거리에 나선 홍콩 청년의 목소리
②홍콩 시위, Be Water (링크)
③홍콩 경제 불평등이 키운 청년의 ‘엔드게임’
④모두의 홍콩, 우리의 이야기

[출처: 김한주 기자]

자본주의 도시를 대표하는 홍콩에서 청년의 분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홍콩 시위는 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홍콩 당국은 지난 4일 송환법을 공식 철회한다고 밝혔지만, 거리의 화염은 꺼지지 않고 있다. 시위 참여자 대다수는 청년이다. 그들은 현재 ‘5대 요구’인 행정장관 직선제, 경찰 폭력 진상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연행자 석방 요구를 넘어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저항을 ‘청년의 미래’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 《워커스》는 9월 홍콩 시위 현장에서 청년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1 데이브(Dave), 20대, 대학생

저는 지금 보석 상태예요. 시위 처음(6월 9일)부터 계속 참여하다가 얼마 전에 연행됐어요. 석방되고 경찰을 규탄하기 위해 다시 나왔죠.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 전철역에서 많은 청년이 피를 흘렸어요. 이때 폭력 진압으로 3명이 실종됐는데 정부나 경찰, 병원까지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어요. (시위대는 이날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시민 3명이 실종·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공권력 집행에 따른 사망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홍콩 경찰과 홍콩철로유한공사(MTR) 측은 9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압 현장 CCTV 화면 일부를 공개하며 사망자는 없다고 일축했다.) 또 시위 때문에 투신자살한 사람이 9명에 이른다고 해요. 믿을 수 없는 일이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시위 희생자는 전부 청년이에요. 청년들이 가장 분노하고 있어요. 시위에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는 세대도 청년이죠. 홍콩 청년들은 이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면 무대 공연과 관련된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요. 하지만 꿈을 실현하기는커녕 일자리조차 얻기 힘든 현실입니다. 지금의 홍콩은 청년에게 절망과 같아요. 저는 이 시위가 우리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 9월 9일 저녁 프린스에드워드 전철역 앞에서 데이브 씨는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몽콕 경찰서 바로 앞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구호를 외치면서 총을 든 경찰을 향해 레이저 포인트를 쏘곤 했다.

#2 리(Ri), 24세, 아르바이트 노동자

밤 10시~11시 전엔 집에 돌아가야 해요. 부모님이 밤이 늦어지면 항상 전화하거든요. 부모님은 시위를 싫어해요. 제 주변 친구들 모두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죠. 아버지는 시위 희생자를 두고도 ‘너희가 거리에 나서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우리가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얼마 전 한국 드라마 ‘SKY캐슬’을 봤어요. 홍콩 청년들도 ‘금수저(Gold spoon)’ 얘기를 많이 하죠. 저는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있어요. 하루 9시간, 주 6일을 일하고 한 달에 213만 원(14,000홍콩달러)을 받아요. 우선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리죠. 집은 공공 주택인데 월세가 30만 원씩 꼬박 나가요. 남는 건 없어요. 반면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아들들은 모두 해외(영국) 국적이에요. 호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죠.

이런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요. 이제는 공공 주택을 얻지 못하는 청년도 많아요. 공공 주택에 들어가려 해도 5년 이상은 기다려야 해요. 집뿐만 아니라 지금 홍콩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 어려워요. 제 주변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홍콩 정부는 청년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홍콩 정부가 (지난 2월) 2019~2020년 예산안을 발표했는데, 학생 지원 내용은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2500 홍콩 달러 지원’, ‘자격증 시험 보는 학생에게 응시료 지원’이 전부였어요. 이런 걸로 뭘 할 수 있겠어요. 송환법을 철회한다고 발표했지만, 시위는 끝날 기미가 안 보여요.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어요.

- 9월 9일 저녁 리 씨는 일을 마치고 몽콕 경찰서 앞에 마련된 시위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그는 방독면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진 않았지만,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3 로(Lo), 20대, 대학생

이곳(중문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하고 있어요. 어제(2일)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중문대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어요. 동맹 휴학은 2일부터 13일까지 2주 동안 계속될 겁니다. 저는 간호학과 학생이에요. 간호학과는 수업을 거부하기가 더 힘들어요. 간호 자격증을 따는 데 수업 이수가 필수이기 때문이죠. 어떤 강의는 이수하지 않으면 연관 과목 전체를 재수강해야 해요. 그렇게 되면, 최소 1년은 더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목소리를 내기로 했습니다. 수업 거부에 동참하지는 못하는 학생들은 방독면을 쓰고 수업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자원 활동하는 응급 구조대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시위자 접촉을 막기도 하고, 아예 연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전공에 비해 간호학과 학생들이 더 분노하고 있어요. 우리도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면 시민들을 도우러 거리에 나설 겁니다. 폭력에 노출된 이들을 구하는 것이 우리 일이기 때문이죠.

- 로 씨를 비롯한 간호학과 학생 10명은 9월 3일 오후 2시 30분경,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 앞에서 풀기어(방독면, 헬멧 등)를 쓰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또한 이들은 강의실 앞에 경찰이 시위대를 폭행하는 사진, 구조대를 막는 사진 등을 전시했다.

#4 이지(Easy), 20대, 금융업 노동자

홍콩 시위는 6월 9일에 시작됐어요. 이날 100만 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했죠. 당시 요구는 하나였습니다. 송환법 철회. 홍콩 정부가 멋대로 시민들을 중국으로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입을 막으려 했어요. 시위 참여자는 물론, 참여하지 않은 시민까지 공격했습니다. 정부의 잘못이 쌓이는 만큼 우리 요구도 하나씩 늘었습니다. 지금 시위대의 ‘5대 요구’는 정부가 만든 것입니다.

이런 요구는 계속 확장할 것이고, 홍콩 시위는 사회를 바꿀 것입니다. 저는 금융업에 종사하지만, 기본적인 생활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어요. 홍콩 노동자들은 20년을 쉬지 않고 일해도 아파트 한 채 사지 못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홍콩 근처 섬들을 임대해 휴양지로 쓰죠. 수조 원을 써가면서요. 노동자든, 노동자를 바라보며 공부하는 학생이든 대체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지금 시위에 청년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이지 씨는 9월 3일 오후 2시 홍콩 정부청사 인근 타마파크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 참가했다. 이날 총파업에는 노동자 약 4만 명이 운집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5 첸(Chen), 30대, 자영업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이곳(미 총영사관) 집회에 나왔습니다. 저는 특히 본토인(중국인)의 홍콩 이민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자본력을 가진 중국인이 하루에 150명씩 홍콩으로 이민을 옵니다. (홍콩 정부는 일방통행허가제도를 통해 매일 최대 150명의 본토인 홍콩 이주를 허용한다.) 그러자 홍콩의 모든 소비(생산) 시스템이 중국인에게 맞춰졌어요. 홍콩인은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죠. 저도 자영업을 하며 이런 문제를 느껴요. 대부분 홍콩으로 이주하는 본토인은 부자예요. 그들은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홍콩의 빈민들은 더 가난해졌어요. 그런데 홍콩 정부는 빈민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 첸 씨는 9월 8일 홍콩 센트럴에 있는 미 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다. 이날 집회 참여자 수만 명은 미국 측에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해당 법안은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 지위 지속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6 하비(Harvey), 10대, 중등학생

하굣길에 들렀어요. 시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요. 저는 우리의 시위가 홍콩을 더 홍콩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 중국과 홍콩은 각자 다른 길을 평행으로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홍콩 정부는 방향을 틀고 중국과 같은 길을 걸으려 해요. 일국양제는 2047년에 끝나요. 적어도 이때까지는 홍콩이 중국과 평행선을 달려야 하는 건데,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2047년쯤이면 홍콩은 이미 중국과 같은 상태가 될 겁니다.

저는 통제를 원하지 않을 뿐입니다. 중국이 홍콩에 간섭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만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져야 해요. 홍콩 학생들은 지금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등으로 시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국에선 이것마저 할 수 없어요. 중국에는 없는 자유가 홍콩에는 있습니다. 저는 그냥 홍콩과 중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평화롭게요. 중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 하비 씨는 9월 10일 오후 5시경 흰색 교복을 입은 채 프린스에드워드 전철역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7 신신(Sin sin), 10대, 중등학생

오늘(9월 9일)은 시위가 발생한 지 3개월이 되는 날이에요. 3개월 동안 중등학생들은 시위에 많이 나오지 못했어요. 저도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지켜보며 뒤에서 응원만 했어요. 그러다 한 번은 거리 시위에 참여했어요. 조금 앞에 서 있었는데 경찰이 제 이름을 적어갔어요. 부모님이 바로 알더라고요. 그 뒤로는 거리 시위에 나가지 못했어요. 그래도 부족하지만 표현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인간 띠잇기에 참여했어요. 우리 학교 학생은 700명 정도 되는데 한 200명은 참여한 것 같아요. 중등학생들도 지금 계속 경찰에 잡혀가고 있어요. 경찰이 폭력을 멈추지 않으면 저도 계속 시위에 참여할 겁니다.

- 9월 9일 오전 7시 홍콩의 모든 중등학교 학생들은 각자 학교 앞에서 ‘인간 띠 잇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등교 시각인 오전 8시까지 학생들은 손에 손을 잡고 5대 요구를 수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중등학교가 밀집된 쿤통 지역의 ‘인간 띠’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8 조니(Johny), 20대, 현지 매체 기자

저는 오늘(9월 10일) 휴무일인데 여기(프린스에드워드 전철역)에 나왔어요. 홍콩 정부가 송환법 철회를 발표했는데 시위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고, 힘을 보태고도 싶어서요. 지금 시위는 더 깊은 문제를 향해 가고 있어요. 동시에 복잡해지고 있죠. 어떤 이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중국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의 힘을 바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임금이나 빈곤 문제를 꺼내며 경제 시스템을 바꾸라고 하죠. 홍콩 최저임금은 37.5홍콩달러(5,714원)에요. 저도 기자이지만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밖에 벌지 못해요. 청년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죠. 그동안 10년 넘게 홍콩에 쌓인 문제들이 지금 시위에서 폭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조니 씨는 9월 10일 친구와 함께 프린스에드워드 전철역 앞 시위 희생자 분향소를 지켜봤다. 그는 시위가 고조될 즈음 친구와 함께 자리를 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시위 100일 동안 최루탄 2,414발, 고무총 503발, 스펀지 유탄 237발, 화염 폭탄 100발 이상을 사용했고, 시위자 1,453명을 연행했다. [워커스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