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가로막는 중동의 ‘전쟁상태’

[인터내셔널2]

  2019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란 시위 장면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2019%E2%80%9320_Iranian_protests]

최근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미국에 암살되면서 전 세계가 긴장했다.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가능성도 예견됐다. 그러나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나 양국 간의 전쟁 발발에 대한 우려는 이미 익숙해진 오래다. 이번에도 과거 걸프전이나 이라크 침공과 같은 식의 전쟁은 재현되지 않았다. 양국은 지난 40년간 제3국이나 제삼자를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결해 왔다. 그럼에도 이제 미국과 이란이 직접적, 그리고 전면전으로 맞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기는 하다. 이번 사건 이후 미국과 이란 양측의 국내 정치적 상황이 위기의 배경으로 언급됐다. 20세기 이후 양극단을 오갔던 양국의 관계도 재조명됐다. 이 두 측면 이외에도 이란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점과 이라크를 둘러싼 양국의 세력 다툼 등이, 미국이 적어도 표면적으로 이란에 대해 극도의 적대감을 보이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쟁에 대한 관심이 있기 얼마 전만해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2011년 ‘아랍의 봄’과 같은 저항운동의 부활로 관심을 끌었다. 전쟁과 혁명이 동시대에 진행된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이 글은 이렇게 공존하는 혁명과 전쟁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양자의 관계와 관련해 먼저 떠오르는 건 전쟁이나 전쟁 위기론이 사회통합의 기제로 활용되고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가로막는 역할에 관한 익숙한 설명일 것이다. 전쟁 이데올로기, 간섭 전쟁, 백군, 콘트라 반군 등의 용어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혁명 전쟁, 폭력이나 전쟁을 통한 혁명의 많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쟁의 혁명적, 반혁명적 측면이 분리돼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러시아, 미국 혁명 등 3대 혁명의 경우에도 전쟁은 혁명과 반혁명이 격돌하는 주된 장이었다.

중동은 전쟁의 땅인가?

언제부터인가 이슬람 세계 또는 중동은 지역분쟁 또는 전쟁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이러한 대중적인 인식은 무엇보다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다. 적어도 탈냉전 이후 규모 있는 전쟁은 중동이나 그 인근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이 오리엔트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폭력성과 야만성을 꼽았던 서구의 관념을 지속시키는 자원이 되고 있다.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격돌하던 난세에 태동한 종교로서, 이슬람이 ‘함께 살기 원하는’ 평화의 종교이자, 이슬람제국이 관용의 모델이었고 아랍사회가 환대의 문화를 자랑한다는 계몽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현실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열강의 지배를 받던 20세기 전반부는 물론이고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민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도 한동안 중동지역은 분쟁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미국의 군사개입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20세기 전반부는 대부분 쿠바, 콜롬비아, 파나마, 온두라스, 멕시코, 니카라과 등 미국의 안뜰인 중앙아메리카 지역이 주된 활동무대였다. 냉전 시대에도 팔레스타인 분쟁 정도를 제외하면 중남미나 동아시아가 개입의 주된 대상이었다. 중동지역이 미국의 군사개입의 대상이 된 것은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킨 쿠데타부터였다. 모사데크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수상에 선출된 직후 석유산업의 국유화 차원에서 영국 소유의 정유회사를 국유화했다. 이에 반발한 영국은 미국에 개입을 요구했고, 양국은 쿠데타를 사주해 이 좌파민족주의 정권을 전복하게 된다. 그 뒤를 이은 것이 26년 후 민중봉기를 통해 전복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왕정이다. 다른 사례로는 19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군수물자를 지원한 정도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동은 아니지만 1979년부터 CIA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내전(1979-1988년)에 개입하게 된다.

미국의 중동 군사개입이 적극성을 띠게 된 것은 80년대부터였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발발한 1979년 이란에서 왕정이 전복되는 혁명이 일어난 이후인 것이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에서 이라크 지원을 시작으로 1991년에는 유엔과 다국적군의 지원을 안고 걸프전을 일으켰고 1992년에는 소말리아에 개입한다. 특히 2001년 9·11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대테러전쟁을 선포하면서 중동은 미국의 주된 군사개입 지역이 된다. 2001년 UN의 승인 하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군사개입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고, 2003년 UN의 승인 없이 영국 등 우방국들이 동참한 이라크 전쟁은 2011년까지 지속됐다. 2011년에는 리비아 내전에 개입했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같은 시기 아프리카 등 세계의 주요 분쟁지역의 상황이 호전되면서 상대적으로 중동이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된 측면이 있다. 이제 팔레스타인 문제에 국한됐던 중동 분쟁이 중동지역 전체로 확산된 명실상부한 중동전쟁이 됐다. 게다가 중동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중동의 현실은 전쟁은 세계의 자연 상태이며 평화는 노력하지 않으면 이룩될 수 없다는 칸트의 테제를 입증해주는 듯하다. 국가 간의 고전적인 전쟁이나 내전에 해당하는 사례 이외에도 최근 미국이 친이란계 무장조직인 카타이브 헤즈볼라에 가한 것과 같은 간헐적인 공격이나, 이제는 흔해진 테러 사건, 그리고 이번에 경험한 전쟁 위기의 상황 등 중동은 항구적인 전쟁상태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란 시위 장면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2019%E2%80%9320_Iranian_protests]

혁명과 전쟁

혁명과 전쟁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매우 드물게 일어나고 매우 극단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최근 중동지역에서 이런 드문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여러 지역이 항구적인 전쟁 상태에 있으며 또한 항구적인 불안정과 저항운동을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이 지역이 겪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문제(trouble)’, ‘무질서(disorder)’를 의미하는 독일어 고어 ‘베라(werra)’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중동과 전쟁의 긴밀한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

중동에서 동시대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전쟁과 혁명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혁명이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연관성을 보여준 사례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이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지고 러시아 혁명이 러시아 내전으로 이어진 것처럼 혁명이 전쟁이나 쿠데타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러시아 혁명은 또한 1차 대전이라는 전쟁의 부산물인 측면이 있으며 중국의 경우처럼 전쟁을 통해 혁명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중동의 경우에도 이란의 모사데크나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이 시도한 혁명은 미국, 영국 등 외세의 군사개입으로 이어졌으며, 이란은 이라크와의 오랜 전쟁이 끝난 직후 혁명이 일어났다. 세계적으로도 예외적인 경우지만 알제리는 전쟁을 통해 독립혁명을 달성했다. 보다 최근에는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주의 혁명이 리비아와 시리아 등지에서 내전으로 이어졌다. 전쟁의 성격에 따라 구분해보면, 전쟁을 통해 혁명을 달성하거나 확산시키는 혁명전쟁과, 국내외적인 기존질서를 유지하고 혁명적인 변화를 저지하는 반혁명적 성격의 전쟁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혁명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과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전쟁의 반혁명적 측면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전쟁의 반혁명적 기능

전쟁은 어떻게 혁명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가? 이 점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중동에서 혁명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살펴보자. 2011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저항운동이 제기하는 과제에서 혁명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시위대의 구호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것은 사회경제적인 문제의 해결, 권력구조 등 사회체제의 근본적인 변화, 외세의 배격 등이다. 레바논이나 이라크와 같이 역사적인 이유에서 또는 최근의 외세 개입 등으로 집단 간 갈등이 심한 사회는 사회통합의 과제가 강조된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 중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은 불가피하게 또는 의도적으로 이 과제의 실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의 민주화는 내전으로 좌초됐고 이란의 신정체제 종식 역시 미국과의 군사적인 갈등이 가로막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라는 외세에 대한 거부가 중요한 축이었던 이라크 저항운동이 격렬하게 진행된 이후, 바로 이 두 나라가 이라크를 무대로 전쟁 분위기를 만들면서 변화를 저지하고 있다. 이미 오래된 것이지만 이스라엘이 지속시키고 있는 전쟁 상황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국민국가 건설의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이라크와 리비아의 내전은 사회통합을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은 또한 퇴행적인 세력에 면죄부를 주거나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지에서 다국적군이나 미군의 군사개입이 이슬람 무장세력의 명분과 기반을 강화시켰다. 외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동의 전쟁은 내부의 반혁명세력과 함께 갈라진 중동, 무질서한 중동을 현재의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이 반혁명적 성격을 띤다고 말할 수 있다.

반혁명 전쟁

과거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전쟁을 ‘혁명의 나라’ 프랑스를 거부하는 반혁명세력의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반혁명전쟁’이라고 불렀다. 역으로 자신들이 수행하는 전쟁은 혁명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혁명전쟁은 마오쩌뚱이 주창한 혁명전쟁을 모방해 피식민지인들의 마음을 사는 새로운 방식의 정복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혁명이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됐던 시대가 있었다. 용어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외세는 자신들의 개입은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저항세력의 행위는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소위 ‘대반란전(counter-insurgency, COIN)’을 수행한다.

반란을 진압하는 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형식적이고 많은 경우 거짓이지만 다양한 가치들이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체제에 대한 반란을 진압하는 군사개입의 명분으로 제시됐다. 특히 우아하게 민주주의, 인권, 자유를 내세우며 서구의 책임론이 거론됐다. 자유와 민주주의만이 ‘자신들로부터’ 평화와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협박성 담론이었다. 오리엔트 사회가 지닌 전통으로 부족의 연대, 권위주의 문화, 정체 등을 언급하면서 민족, 민주, 진보의 과제를 스스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오리엔탈리즘이 전쟁 담론으로 동원돼 왔다. 사실 이제는 명분이 대단치 않아도 군사개입은 가능해졌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서구는 중동지역에 개입하고 있다. 당사국의 요청도 안보리의 승인도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미국 등 서구의 개입은 매우 놀라운 현상이다.

당연히 군사개입의 명분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그 주된 이유는 일부 주변국을 포함해 외세는 결코 민주주의, 인권, 자유, 안정, 통합, 평화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는 개입의 빌미가 줄어드는 등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미국의 대중동정책 목표가 ‘중동의 무질서’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동이 경험하고 있는 영구적인 혼돈과 전쟁상태를 극복하는 길은 현재 아래로부터 수행되고 있는 혁명의 과제를 달성하고 반혁명을 저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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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산아저씨

    흥미진진한 주제라고 봤더니 미국의 진보성과 러시아의 퇴보성, 중동의 낡은 문화를 간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혁명의 개념은 그 유지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본문을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냥 역사의 장에서 개념만 따온 것 같아 그 긍정성과 부정성에 대한 작위적인 느낌이 듭니다. 예전 국방대학원에선가 나온 부하린에 대한 책은 세계사의 깊이를 느끼게 해줬는데, 그래도 저보다는 잘 썼으니 실망하지는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