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박근혜, ‘트럼프노믹스’는 폭탄인가 빈 수레인가

[워커스 27호] 경제로 보는 세상

‘하우스 오브 카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미국 정치드라마다. 드라마 주인공은 대통령 세우기에 일등공신이었지만 인수위 시절 요직에서 밀려나자 복수를 위한 거대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마침내 당내 여러 세력을 온갖 술수로 주무르면서 대통령의 막강한 비선실세마저 제치고, 대통령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린다. 마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처럼 공식적인 권력체계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과정이 매우 닮았다. 다만 몇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대통령 비선실세를 쟁취했다는 점이다.

이런 드라마 속 이야기가 어쩌면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 도 벌어질지 모른다. 트럼프 정부 초대 국무장관 인선을 둘러싼 측근들 간의 잡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두 파벌로 나뉘어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정권 출범도 전에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 직후, 장녀와 사위가 숨은 실세로 주목받으면서 잠깐 이들이 언론을 도배했는데, 이제는 내부인선 및 공화당 내 정치세력들과의 동맹을 둘러싼 진통이 벌어지고 있다. 이 숨은 실세들도 복잡한 갈등을 쉽게 다스리지는 못한 것 같다. 그 이유는 공화당 내 주류진영과의 연대가 절실한 만큼, 근본도 뿌리도 없는 트럼프로서 은밀한 거래를 해서라도 그들을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비주류인 개국공신들이 대놓고 트럼프의 내각인선에 반기를 들고 있다.

아마도 이 모습은 트럼프 집권 내내 벌어질 모습의 데자뷔일지도 모른다. 미국은 대통령제이긴 하지만, 의회 권력의 협조 없이 행정부 독단으로 무엇을 하기 힘들다. 특히 국가 예산에 대한 권한은 의회에 있으므로, 트럼프 자신이 말한 경제공약들을 실천하기 위해선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주류세력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트럼프가 이번 국무장관 인선에 공화당 내 주류인사이자 정적이었던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끌어들이려 했던 이유다. 그러나 인수위 내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자중지란에 빠진 상황이다.

‘트럼플레이션’ 금리발작의 여진

한편 이런 권력 암투 속에서 금융시장에 일고 있는 ‘트럼플레이션(Trumplation)’ 현상을 두고 몇 가지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플레이션이란 트럼프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서, 트럼프가 공언한 재정확장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하여 시중금리가 치솟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는 힐러리 진영이 제시한 재정의 두 배를 낙후한 인프라(기반시설) 설비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선 직후 밝힌 후보수락 연설에서도 이 부분을 다시 한 번 강조함으로써, 기존 중앙은행 중심의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의 변화를 강력하게 암시했다. 그러자 금융시장에선 이런 재정확대 정책이 기대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리하여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 효과가 미리 금융시장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채권금리와 채권가격은 반비례이기 때문에 채권을 많이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채권가격 하락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으면서 패닉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패닉현상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전 세계가 중앙은행 공조 속에서 오랫동안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경제를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방향(금리하락)으로 오랫동안 눌려있던 채권금리가 예상치 못한 트럼프 효과 때문에 갑자기 튀어 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앞서 설명했듯, 채권시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국채금리를 비롯한 시중금리의 동요는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급격히 뛰고 있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런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하긴 힘들다고 지적한다. 아직 트럼프노믹스(Trumponomics)의 실체가 아무것도 없으므로, 말뿐인 그의 공약으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금리발작 현상은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국가 예산에 보수적인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트럼프가 자신과 적대적이었던 이들을 무시하고 인프라 재정을 확보하긴 불가능하다. 그래서 트럼프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됐던 금융규제법(도트-프랭크 법)을 철폐할 것이라 주장한 가장 큰 이유가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월가를 비롯한 민간으로부터 끌어들이려는 의도 때문이라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월가의 투기세력들이 금융규제를 풀어준다고 트럼프 발 투자활성화에 뛰어들까?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비가역적인 변화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그렇게 쉽게 변할 성질의 것인가? 소위 뉴노멀이라 불리는 ‘저금리-저물가-저성장’의 고리는 말 그대로 새로운 정상상태가 된 지 오래다. 1990년대에 장기불황을 겪던 일본이 대대적인 건설 투자로 몇 년 반짝하다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던 사례를 보면, 총량적 수준의 확대보다도 질적인 측면의 변화가 더 중요해 보인다. 하물며 일본처럼 실탄(돈)마저도 확보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트럼프노믹스엔 넘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이 널려 있다. 당선만을 위해 이것저것 내질렀던 트럼프 공약은 빈 수레에 불과할 수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미국판 박근혜

그런데 이런 빈 수레에는 어디로 튈지 모를 폭탄이 달려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장 많이 회자하는 말이 ‘불확실성’이다. 트럼프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 것도 이유지만, 사실 그가 내뱉은 말이 서로 모순되는 정책이 많기 때문이다. 재정확대와 감세를 동시에 얘기하고 있는데,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살포하지 않는 이상 막대한 재정적자를 동원해야 한다. 물론 그는 자신을 부채의 왕이라 칭하면서 사업가적 기질에 어울리는 차입경영을 강조했다. 그러나 혼자 이것저것 다 해보고 책임지는 기업 CEO와 달리 국정운영은 혼자서 막무가내로 할 수 없다. 상대세력들에 대한 정치적 타협과 설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타협과 설득은 기업가적 거래로 사용될 뿐, 정치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수위 내 갈등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갈등과 충돌은 계속될 것이다. 아마도 선거참모진들을 가족 중심으로 꾸렸던 이유도 주변에 쓸 만한 인재가 없었던 점도 있지만, 정치적 갈등을 다스릴 능력이 트럼프에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이런 그에게 국제질서를 논한다는 건 애초부터 머릿속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익이 나지 않는 골치 아픈 사업들을 외주시키듯, 몇몇 전문가들에게 이를 맡길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 외교라인과 국방라인에 골수 강경보수 인맥들 이름이 올라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념이나 가치지향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트럼프에게는 그저 선거캠프에서 가까이 있었던 인물로 자리만 채우면 되기 때문이다. 인기몰이할 수 있는 정책, 특히 이민자 정책에서 선명성 논란을 일으키면서 다른 쟁점들은 사장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가 자신의 공약을 후퇴시키거나 폐기했던 것을 생각해 보라.

2008년 체제에 대한 대중적 거부와 변화의 시작

그렇다면 우리는 트럼프의 등장을 통해 달라질 미래를 어떻게 짚어야 할까? 일단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를 지탱했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대중적 거부가 확인되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유럽 극우파의 부상에서 발견되는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인 반세계화 정서는 서구 선진국들 내에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음을 주류언론들마저 인정하고 있다.

한편 이런 흐름을 타고 위기관리를 지탱했던 중앙은행 간 공조 시스템이 공격당하고 있다. 이것이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말뿐인 비판일지라도, 선출된 권력을 자신의 뒷배로 삼아야 하는 중앙은행 관료들에겐 운신의 폭을 제한한다. 실제 트럼프는 유세 기간 동안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준의 현 의장 옐런을 끌어내리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기관리체제의 양축은 G20과 연준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은행 공조시스템이다. G20은 정기적으로 만나 건배 한잔하고 헤어지는 연례행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나머지 한축은 반세계화 정서와 금융자본에 대한 반감 속에서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공격의 선봉엔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극우파들이 서 있다. 심지어 프랑스 극우파 르펜은 은행 국유화를 이야기한다. 이런 선동들이 프랑스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전 세계 좌파들은 어디서부터 공격의 스탠스를 다시 잡아야 할 것인가?

분명 트럼프노믹스는 박근혜의 창조경제처럼,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말의 성찬 속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트럼프에겐 그런 약속 따윈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선동으로 화제의 공백을 메워나갈 것이다. 그것이 빈 수레일지라도 말이다. 원래 빈 수레는 요란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빈 수레 소리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은 마지 수레 밑 폭탄이 터진 것처럼 진동한다는 점이다. 가령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중금리의 가파른 상승세는 가계부채 뇌관을 안고 있는 한국경제에 매우 치명적이다.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우스갯소리를 실감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 휘몰아치는 퇴진 정국 속에서, 가계 희생적이고 재벌 의존적인 한국경제의 체제를 제대로 뒤집어야 할 필요가 있다. (워커스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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