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정국의 정치경제학

[이종회 칼럼] 다가오는 공황, 우리는 어떠한 역사를 써내려갈 것인가


공황의 처방이 또다시 ‘뉴 노멀’ 밖에 없는가

공황은 예상됐고 선제적 조치도 있었다. 이미 작년 7월과 9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가 금리를 두 차례나 인하했다. 올해 연말 대선을 앞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경기침체의 시작을 지연하고자 연준을 압박한 결과였다. 하지만 트럼프뿐만 아니라 누구도 코로나19를 예상하지 못했다. 4월 27일 기준, 확진자 297만 명, 사망자 20만 명을 넘어섰다. 국경은 가로막히고 거리에는 인적이 끊겼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물류가 끊겼으며 사재기로 상점 진열대가 텅텅 비었다. 금융을 포함해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주가가 폭락했다.

다급해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지난 3월 3일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지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통상적인 0.25%의 두 배인 0.5%를 인하했고,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부실기업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쓰레기 수준의 회사채(정크본드)까지 사들이겠다는 것이었다. 2008년 양적완화 이후 더욱 곪아버린 기업들의 회사채를 사들여 이들을 연명시키겠다는 고육지책이었다.

2008년 공황 당시에도 이미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대안적 전망이 없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비전통적 재정정책인 양적완화와 금융화 기법으로 자본주의는 수명을 연장했다. 이른바 ‘뉴 노멀’의 효과로 자본주의는 목숨을 연명했지만, 자본과 상품의 과잉은 해소되지 못했다. 이에 따른 왜곡된 자본순환 사이클로 이번 경기침체는 배증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처방이 또다시 ‘뉴 노멀’ 밖에 없다는 것은 큰 한계다.

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체제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지구적 수준의 착취체제인 WTO체제가 구축된 이후, 보편화된 신자유주의 체제는 코로나19에 무력했다. 공장은 값싼 임금과 시장을 찾아 중국을 비롯한 제3세계로 옮겨갔다. 때문에 미국, 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조차 그 흔한 마스크부터 의료장비 하나 만들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물류와 금융의 이동만큼이나 바이러스는 빠르게 옮겨 다녔다. 민영화 공세로 무너진 공적 의료체계는 바이러스 확산에 무력했고, 결국 의료체계가 붕괴되면서 감염자와 사상자를 확산시켰다. 의료체제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의 희생이 늘어나면서, 계급별, 인종별, 대륙별 차이는 확연해졌다.

아울러 극단화된 노동유연화는 불안정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불안정노동 사이클에 올라탄 노동자들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08년 소리만 무성하던 ‘헬리콥터 벤’의 현금살포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 당장의 생계 연명을 위한 그것은 자본가들에게 현재 멈춰버린 소비와 수요를 진작시키는 마중물이자 산소호흡기다. 그동안 포퓰리즘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하던 자본조차도 이제는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네 번째 경기부양책이 의회를 통과해 총 3조 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EU와 중국, 일본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한국도 기업 도산을 막겠다며 ‘기업구호긴급자금’ 100조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고, 그 액수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초로 한국판 양적완화 조치를 실행하기로 했고, 무제한으로 환매조건부채권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한국판 뉴딜’ 정책을 실시해 일자리 50만 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보호무역으로 회귀한 시점에서의 경제위기, 정글의 시대

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체제의 핵심은 브레튼우즈체제로 표현되는 고정환율제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즉 GATT로 관장되는 자유무역체제다. 변동환율제와 보호무역체제가 불러일으킨 경제전쟁을 경험한 이후의 대안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말 공황으로 1971년 달러의 금태환이 중지되면서 고정환율제는 붕괴됐고 변동환율제로 바뀌었다. 전후체제의 한 축이 무너지자 이를 배경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하려는 운동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는 석유 등의 자원을 바탕으로 비동맹운동그룹이 주도한 신국제경제질서(NIEO)이며, 다른 하나는 유럽꼬뮤니즘의 흐름과 함께한 구조개혁운동이다. 전자는 공황 시기 불안정한 자원으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국가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후자인 구조개혁운동은 영국의 대안경제전략AES과 프랑스의 완전고용과 복지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 확장 정책이었는데, 이 또한 미국과 독일의 금융 패권에 주저앉았다. 그 운동의 잔해 위에서 신자유주의체제 구축을 위한 레이건과 대처의 드라이브는 거칠 것이 없었다.

2008년 세계공황은 세계의 정치경제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당시 마침 러시아와 중국에 가뭄이 들고 갈 곳을 잃은 투기자본이 석유와 식량부문으로 몰리면서 밀 값이 폭등했다. 그러자 이집트, 인도네시아, 아이티 등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났다. 밀의 60% 이상을 수입하는 이집트뿐 아니라 아랍 전역에서 밀 가격 상승으로 생존권투쟁이 촉발됐고, 이것은 ‘아랍의 봄’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미국과 EU 등 제국주의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개입으로 노동자민중의 반독재 생존권투쟁은 무참히 진압됐다. 특히 이슬람국가 IS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난민이 늘었고, 이들은 유럽으로 흘러 들어갔다. 경제 위기로 막바지에 몰린 EU 국가들은 국경을 가로막았다.


한편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국가들에서는 이른바 트로이카(EU, ECB, IMF)가 금융지원을 대가로 긴축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민중투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EU 탈퇴가 최대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경제위기에 따른 EU 국가별 담장이 높아지고, 우익이 발호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전면화 됐다. 이는 ‘America First’를 내건 트럼프효과의 상승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은 영국이 EU를 탈퇴함으로써 EU의 우익적 분해의 첫발을 떼게 됐다.

이렇듯 지난 2008년 세계공황을 계기로 자유무역체제, GATT체제마저 무력화되고 있다. 보호무역체제로의 전환으로 전후체제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는 다양하게 표출된다. 특히 소련을 포함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무너진 세계정치지형에서 미국의 역할이 재편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군사비 부담을 둘러싼 NATO와 미국의 갈등, 북한과의 핵협상 등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의 대안적 축적체제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보호무역체제로의 회귀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코로나19를 매개로 한 경제위기가 현실화됐다. 여기서 관건은 이번 경제위기를 거치며 우리는 어떠한 세상으로 나가가게 될 것인가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정세를 거치면서 보호무역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자본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으로 내몰렸던 전전(戰前)체제, 변동환율제와 보호무역체제 등 이른바 정글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본과 권력은 지구적 수준에서 노동자민중에게 야만적 삶을 강제할 것이다.

저물어가는 반세계화 투쟁 속에 새로운 정치운동

우루과이라운드는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재편을 위해 농업 같은 필수 분야를 포함해 서비스, 지적소유권, 무역관련투자 등 새로운 의제들의 규범을 만들기 위한 GATT의 여덟 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이었다. 1994년 미완의 합의로 WTO가 출범하면서 반세계화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고, 이는 세계사회 포럼으로 남미의 핑크타이드와 만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세계공황을 거치면서 그간 반세계화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해오던 남미의 핑크타이드가 무너졌다. 대안적 전망으로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었지만 새로운 주체 형성에 실패한 탓이 컸다. 무엇보다 석유와 같은 자원을 기반으로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대안적 사회를 기획하고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컸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질서에 연동된 상태에서 자원을 기반으로 한 대안적 사회 기획은 공황을 넘지 못했다. 남미에서 1930년대 공황 이후 거세게 몰아붙였던 수입대체전략이나 1970년대의 칠레혁명, 그리고 신국제경제질서 구축의 실패는 이를 방증하는 것이었다. 공황에 따른 자원 가격의 하락은 치명적이었고, 핑크타이드 역시 같은 결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렇듯 2008년을 기점으로 거셌던 반세계화 투쟁이 저물었고 정치운동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강제된 불안정노동체제의 남유럽은, 노란조끼 투쟁을 비롯한 스페인의 포데모스, 프랑스의 라 마르쉐 같은 투쟁을 통해 정치조직이 형성되는 경로를 보여줬다. 아직 대안적 전망으로서의 전형적 형식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극단적인 불안정노동체제에서 정치기획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어찌됐든 노조에 기반한 투쟁과 정당·정치체제라는 노동자정치 100년 역사의 균열을 경험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모기지로 길거리에 쫓겨난 이들이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를 점거했다. 여기에 불안정노동, 여성, 인종, 이주, 그리고 기후위기와 같은 생태문제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이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형성된 주체들이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의회, 시장, 하원 등에 정치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리고 의미의 면밀함은 차치하더라도 사회주의는 대중적 구호로 자리 잡았다.

전후체제가 실질적으로 붕괴하고 자본간, 국가간 긴장이 더 강화될 것은 자명하다. 코로나19 정세는 이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이즈음 새롭게 다가오는 공황에서 어떠한 역사를 써나갈 것인가. 2008년 세계공황을 거치며 국가가 중앙은행을 앞세워 ‘부채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를 주도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그 결과 국유화, 민중적 양적완화, 그린 뉴딜, 사회주의는 우리의 일상에서 보편적인 언어가 됐다.

생산력은 빈곤 해방의 필요를 충족하고도 남을 수준이며, 자본은 신자유주의 자본축적 경쟁을 거치며 고도로 집중·사회화 돼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은 고도로 편중돼 있고, 생산력은 자연환경을 위협하고 훼손하며, 그 대가는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코로나19를 거치며 더욱 자명해졌다. 이제 ‘인간의 자유로운 연대세계’는 멀리 있는 일이 아닌, 눈앞의 시급한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