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보복과 응징이 아닌 정의를

'또다시 시작'하는 아침을 맞아 분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아침을 맞았. '한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배워왔고 가르쳐온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까맣게 타서 무너지고 있다.

지난 화요일 미국을 강타한 무차별 테러는 전 인류를 실의와 공포에 빠뜨렸다. 그 충격에서 눈을 뜨기 무섭게 '보복과 응징'의 전쟁선포에 귀가 멍하다. 미국 정부는 분노와 슬픔을 보복과 응징의 출격 원료로 쓰려하고 있다. 그러나 '분노'는 테러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요, '슬픔'은 무고한 이들을 애도하는 슬픔이다. 그 어떤 것도 가난하고 힘없는 민족에게 저질러온 미국정부의 만행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다.

미국 정부가 직시해야 할 것은 인류의 애도 속에 어린 비난이다. 미국 정부는 오늘날 비극을 잉태한 폭력의 발원지였고, 버팀대였다. 그리고 오늘은 21세기 첫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피의 보복인가? 이미 붐비고 있을 저 세상으로 더 많은 무고한 목숨을 보낼 터인가? 미국의 군사정책과 패권주의에 대한 반성 없이 그것을 확대 강화하려는 보복은 테러리스트를 향했던 화살을 자신에게로 되돌릴 것이다. 우리는 보복과 응징이 아닌 '정의'를 원한다. 미국의 힘에 의한 응징은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

아울러 우리 내부로도 경계의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공안부는 '유언비어 날조·유포, 사회·경제질서 혼란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적발, 엄단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경찰들의 불심검문에 머뭇거림이 사라지고, 야당 의원의 입에서는 '이래서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말이 천연덕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의 공포와 우려에 편승하여 반민주적 반인권적 기류를 조성하려는 시도야말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테러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신체의 안전과 기본적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우리 정부는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미국의 전쟁책동에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테러범과 주변의 무고한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는 미국 정부의 장단에 놀아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피의 보복은 미국의 자멸일뿐더러 인류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멸의 길이다. 1·2차 세계대전의 학살과 폐허 속에서 배운 것이 평화와 인권의 보장이 아니었던가? 무역센터의 폐허 아래 묻힌 무고한 생명들의 절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도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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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전쟁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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