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전선의 일반화, 그러나 계속되는 동요와 부침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사회의 민주화가 대세로 인정되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는 노동조합운동을 포함하여 사회운동·정치운동의 당면 정치적 과제로 충분히 인식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다보니 신자유주의 반대는 정치적·계급적 차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문제로 잘못 비화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심지어 DJ정부 내에서조차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이른바 '질서자유주의'라고 언명하듯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사회적 저항과 불만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은 충분히 확장되거나 대중투쟁과 동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요인과 내부적 동요에 의해 끊임없이 은폐되거나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의 교란, 그 원인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을 교란하거나 운동진영 내부의 동요하는 정치적 경향은 크게 세가지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가 신자유주의 반대를 '미국 반대'로 상승(?)시키거나 대체하려는 경향이고, '사회적 합의'와 '현실적·실현가능한 요구 쟁취'라는 명목하에 지속적으로 신자유주의로 투항하거나 수렴되는 경향이 두 번째다. 나머지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총체적 반대와 전선의 확대를 당장의 대중의 경제적 요구투쟁의 '진화적 성장'과 '전투성'으로 대체하려는 노동자주의적 경향이다.
이들 경향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지금 시기 핵심투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합법정당을 지향하든, 전선운동을 핵심과제로 생각하든, 비합노선을 취하든, 어떠한 조직노선을 취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오히려 현시기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조직적 과제'로 대체하고 있는 경향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동요와 교란은 이들 각각의 경향이 서로의 존재와 정치적 의도를 전제로 이에 대한 과도한 견제 속에 단일한 전선으로의 연대와 결집을 주저하는 데에서도 야기되고 있다. 누구나 '종파주의'와 '패권주의'를 척결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무릇 정치운동진영(조직) 스스로 이를 직접 주장하거나, 인정한 적은 없다. 우리가 노동해방을 위한 지난한 역사적 과정에서 머리와 몸으로 깨닫고 있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치운동,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민중 투쟁을 열어가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그 자체로 현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낳고 있는 위기와 그것이 갖는 파괴적 양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그러한 저항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건설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른바 '체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것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갈 때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힘과 투쟁에 의한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은 현실 속에서 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임무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상승시켜내고 결집시켜내는 것이 곧 '조직' 혹은 '정당'의 건설로는 대체될 수 없는 것이며, 단지 그것은 그러한 임무를 가능케 하기 위한 하나의 경로로서 위치지워질 때만이 유의미하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조차도 그러할 때만이 가능하고 운동적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제반 편향과 교란 요인에 대한 비판에 앞서,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공고화와 확장이라는 의미에서 제반 연대가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입장에 대해 정치적 언명이나 수사 혹은 입장의 차이나 분리를 천명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적·실천적으로 검증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운동에서 이러한 계획을 주도적으로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정치적 입장'에 근거한 '분리 전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지는 않는지, '현장'(더욱 명료하게는 작업장과 노동조합운동)에 갇혀 '정치'와 '전선'에 소심함과 소극적 경향을 보이는 이른바 '노동자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는지, '정치적 임무'를 '조직노선'으로 치환하여 우리 운동의 전망과 요구, 정치적 임무를 확장하는 풍부한 계획보다 그것을 우선하고 있지는 않는지,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적으로 성찰해 볼 일이다.
잘못된 편향을 압도할 정치적 프로그램과 기획이 요구되는 때
지금 시기는 제반 경향과의 '다름'을 증명하면서 운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제반 잘못된 편향을 극복하고 압도할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과 기획 속에서 운동전선을 확장하는 '실천'이 긴요한 때이다. 노동조합운동 수준에서는 전국적·계급적 단결과 투쟁의 모범을 만들어 내는 것, 사회운동 수준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야기하고 있는 삶의 위기와 제반 사회구성 요소의 '시장과 경쟁'으로의 편입을 제어해내기 위한 저항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이를 묶어 '민중연대운동'의 질적인 상승과 발전을 꾀해내는 것에 정치운동의 일차적 임무가 존재한다.
그러한 임무의 수행 수준만큼 우리 운동의 '정치적·조직적 발전'은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