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특집] 테러 행위, 텔레비젼, 그리고 복수의 광기

테러 행위, 텔레비젼, 그리고 복수의 광기

Z넷(www.zmag.org) 9/13 노먼 솔로먼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면서 테러리즘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고통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끔찍하고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소름끼치는 고통과 비애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여론 조작의 맹습을 목격하고 있다. "프로파간다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달성되어왔다"라고 알더스 헉스리는 오래 전에 깨달았다. "진실의 힘은 위대하지만, 실용적인 면에서 본다면 진실에 대한 침묵의 힘이 그보다 더 위대하다.”
엄격하게 선별적인 침묵이 최근의 언론 보도 내에 널리 퍼져 있다.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에게 그 침묵의 실용성은 실로 엄청나다. 비행기 납치범들의 대규모 살인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서 미국의 군사 행동이 갖는 정당성은 명백하다. 그들의 이중적 기준이 언급되지 않는 한 말이다.

구조대원들이 자욱한 연기와 무시무시한 콘크리트 더미와 싸우는 동안, ABC 뉴스의 빈센트 카니스트라로는 수 만 명의 시청자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도록 한 몫하고 있었다. 카니스트라로가 CIA 고위 관료였던 시절 1984년에 국가안보회의로 옮겨갔고, 이후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게릴라 조직들을 은밀히 돕는 감독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카니스트라로는 처음에는 니카라과 민간인을 학살한 반군 그리고 이후에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반군 등, 테러리스트들을 오랜 기간 동안 도와 왔다.

어떻게 그토록 장기간 동안 테러리즘에 연루되었던 인물이 이제는 테러리즘을 신뢰성 있게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쉬운 일이다. 언론 보도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특정 국면에서 일종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지대'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된다. 죠지 오웰은 그의 책 [1984]에서 이와 관련된 정신적 역학 관계를 설명한다. "이 과정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정밀성이 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위적이라는 느낌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죄의식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거짓을 믿으면서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사실을 잊는 것, 그리고 그 이후 그것이 다시금 필요할 경우, 기억을 망각으로부터 필요한 기간 동안만 끌어 내오는 것, 객관적인 현실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내내 부정하고 있는 현실을 참작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무장관 콜린 파웰은 "건물을 파괴하고 양민을 학살할 정도의 생각을 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조만간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비난했다. 그는 몇 시간 전에 자기 나라를 공격한 테러리스트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웰은 또한 미국 고위 관료들의 방침을 장황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위선에 대한 보도를 미국의 거대 방송사에서 다룬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바그다드나 베오그라드에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건물 파괴나 양민 학살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국가의 주요 언론들은 1998년 8월 수단 하르툼에 있는 알 시파 제약공장에 대한 13방의 크루즈 미사일 발포와 같은, 반 테러 보복이라는 명목 하에 행해진 미국의 공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 공격은 한 가난한 나라로부터 절실히 필요한 의약품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낳았는데, (정치 분석가인 노암 촘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 나라의 의약품 공급의 절반을 파괴했고, 결과적으로 수 만 명으로 추정되는 양민들을 살해한 잔학 행위가 되었다".
"미국이 유엔 조사를 가로막았고 어느 누구도 조사를 지속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단의 미약한 의약품 공급을 중단시킨 그토록 심각한 파괴행위가 정확히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촘스키는 덧붙였다.
미국 정부의 잔학 행위들에 대해 언론이 보도한 적은 드물다. 단지 몇 개에 불과한 잔학 행위만이 주목을 받는 영광을 얻는다. 몇몇 희생자만이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 행위 중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해서만 우리가 눈물 흘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악에 맞서는, 선의 역사적인 투쟁이 될 것이다"라고 부시는 선언했다. 이와 같은 수사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일방적으로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목소리들 역시, 현재 미국 방송을 타고 있는 그 가슴 찢는 목소리들만큼이나 중요하다. 오늘날 테러에 희생된 미국인들은 우리의 깊은 애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고 떠나간 사람들, 즉 저 먼 곳에서 미국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또한 우리의 애도를 받아야 한다.
언론과 정부가 이렇게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타임]지 9월 10일 판이 "미국은 세계 구도를 짤 수 있는, 역사상 흔치 않은 행운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선언했을 때, 놀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태도는 우리에게 재앙의 연속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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