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180이 넘는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 순수하기 그지없는 대한 민국의 20대 초반의 청년. 대한민국에서 권력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면, 신체적으로 별 이상이 없는 한 국방의 의무를 질 수 밖에 없는 그들 역시 노동자, 농민, 빈민의 자식일 수밖에 없다.
이런 1001-3 중대원에게 "방패와 진압봉으로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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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 대우차 노동자들을 향해 피튀기는 진압에도 1001과 1002란 번호가 방패에 있었다. |
싸움의 대리자로써 또 다른 희생자. 1001-3중대 : 잘못된 명령과 복종만 있을 뿐
우리는 익히 민중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80년 광주에서부터 내내 보아왔다. 저 유명한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의협(?)검사 박상원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던 80년 광주 민중들에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방아쇠를 당기고 괴로워해야 했다. 80년 계엄군과는 다르지만 경찰이라는 신분 역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가의 명령에 복종 해야한다. 의경 역시 그들 스스로 개인의 결정권은 가질 수 없는 국가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경의 의무는 얼마나 상관에 지시에 충실하게 따를 것이며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는다. 결국 국가 권력의 충실한 대리자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라는 명분을 가지고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 서민과의 싸움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싸우는 도중 동료가 다치는 것을 보는 순간, 그들의 전우애는 마주한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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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노동자 대회당시 방송차량을 방패로 찍고 있다.*방어용 무기 방패는 이들에게 공격용 무기이다. |
무 최루탄 시대 : 필요한 것은 공격형 진압부대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 하고자 한다. 전 이무영 경찰청장 스스로 오마이 뉴스에서 밝혔던 자신의 최대 치적중 하나인 무 최루탄 원칙과 2001년 초반을 뜨겁게 달구었던 화염병제조 싸이트, 화염병 진압 부대로 이어지면서 강조되었던 강력한 경찰진압의 형태, 98년 IMF로부터 이어지는 구조조정의 열풍과 신자유주의 질서재편의 한 가운데 벼랑으로 내몰린 민중생존의 위기 심화 그리고 노벨평화상과 남북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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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사회보험 노조 파업 농성장 진압*김대중 정권의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 |
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과 더불어 인권 대통령으로써 자신을 위치 지우기 바빴고 국민의 정부로써 최소한 문민 정부 이상의 가시적인 민주주의 진전의 효과를 보여야 했다. 이전 문민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일반 육군 부대에서 받던 충정 훈련(소요진압 훈련)을 없애 버렸다. 문민정부가 충정훈련을 보병사단에서 없앤 것은 군사정권과의 차별과 나름의 민주주의 진전을 가시화 하기 위한 조치였다. 문민정부를 넘어 국민정부를 내세운 김대중 정권에게 있어 문민이상의 가시적 민주주의의 성과를 보여 주는 것은 70년 박정희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국가권력 수반으로의 등극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종착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결과물은 향후 노벨 평화상까지 이어지며 민주주의의 전도사로써 김대통령은 세계적인 동의를 얻어낸 것이다.
98년 9월3일 만도기계 파업 농성장 강제진압이후 최루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지난 99년 4 월 이무영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무 최루탄 원칙을 세우고 난 후 1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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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효성 파업 당시 1기동대는 울산에 파견 되었다.근거리 공격형 진압 부대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 준다. |
99년 4월19일 서울지하철 파업투쟁은 서울대를 거점으로 파업대오를 지키려는 노동자들과 파업해산을 목적으로 하는 공권력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었고 집결지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은 화염병과 파이프로 무장한 채 경찰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무 최루탄 원칙은 지켜졌지만 공권력은 최루탄 없이 시위대의 화염병과 파이프에 맞서 근거리 공격형 진압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지하철 노동자들 역시 구조조정에 맞선 파업대오를 지키기 위해서는 맨몸으로 공권력에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조조정은 지속되었고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 해고의 여파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김대중 정권 퇴진까지 외치는 국면으로 갔다. 대우자동차를 비롯해, 레미콘, 한국통신 계약직, 농민들의 반WTO 시위까지 노동자, 서민들의 생존의 위기가 도래했고 살아남기 위한 민중의 몸부림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투쟁을 민중대회를 통해 만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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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효성 투쟁 당시 시청앞 |
그러나 정권과 언론은 신종 화염병 제조 등을 이슈화 시켜 냄과 동시에 민중들의 시위를 일종의 테러리즘으로 몰아가고 화염병 전문 진압 부대 창설, 고무총 사용 등으로 대응하려 하였다. 그 와중에도 김대중 정권의 민주주의의 가치인 무 최루탄 정책은 고수되었던 것이다.
올 초 부평에서 시작된 화염병 시위는 민생파탄, 해고실업대란, 월세전세대란, 농가부채대란, 건강보험대란 등 잘못된 정책을 무력으로 밀어 붙여온 정부가 자초한 것임에도 정책의 변화보다 최루탄 없는 효율적인 진압을 택한 정부의 판단이 공격형 진압부대를 더욱 유효한 부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의경만으로도 계엄상태 재현할 수 있다.
"그들이 부평에 깔리는 순간 부평은 계엄 상태 였습니다." 대우차 정리해고 투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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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1001-2라는 번호가 찍힌 방패에 맞은 노동자* 그날 폭행을 당한 노동자들은 평생 불구가 되거나 그때의 휴유증으로 실종 되기도 하였다. |
1기동대를 제외한 나머지 기동대 역시 같은 의경임에도 1기동대가 풍기는 이미지가 전혀 다른 것이라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미 여러 증언과 게시판에서 밝혀졌듯이 이들이 풍기는 이미지는 선봉 부대로서 가지는 프라이드로부터 나온다. 어떤 형태의 시위와 파업도 해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에 걸 맞는 훈련은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진압부대를 만들고 유지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보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진압을 통해 몇 명의 피를 흘리는 부상자를 낸 후에 시위대를 무력화시키는 데서 그들의 프라이드는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이다.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격돌은 피할 수 없어
1001-3이라는 방패의 번호는 대단한 프라이드이다. "어떤 시위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미 몇 차례의 큰 집회에서 밝혀진 사실이며 앞으로도 그들이 막을 수 없는 시위는 없어 보인다. 이런 그들의 프라이드는 관련 기사에서 밝혔다시피 폭력 행위를 한 부대원에 대한 무 처벌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그들의 임무는 공격형 강경 진압이어야 하고 모든 부대원들은 임무에 충실하게 시위대를 방패와 진압봉으로 때려야만 한다.
경찰은 항상 시위대의 과격한 폭력이 자신들의 폭력을 유발했다고 하지만 4월10일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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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10일의 대우차 노동자들*생존의 위기에 있는 민중들은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 |
생존의 벼랑에 밀려 경찰에 맞아서 다치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인 민중과 정권의 명령에 밀려 민중들에게 방패와 진압봉을 겨눠야 하는 기동대는 그런 의미에서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희생자이면서도 구조조정이 끝나지 않는 한 서로간에 격렬한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사이이다.